주문하신 커피와 천사가 나왔습니다
“주문하신 ‘커피와 천사’가 나왔습니다.”
뭔 천사? 예진이 삐딱한 표정으로 콩매니저를 쳐다보았다. “저희 이거 안 시켰는데요?” 예진의 살벌한 눈빛에 콩매니저는 또 한번 당황하지 않고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천사라 불리는 VR은 커피와 같이 나오는 세트 같은 겁니다. 일회 재생이고요. 시간은 5분도 되지 않습니다. 아직 개발 중이라 가격은 따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커피도 마신 뒤 값을 결정하셔서 후지불 해주시면 됩니다.”
“이 VR을 쓰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VR은 한 분만 쓰실 수 있는...”
예진이 한 손을 들어 콩매니저의 말을 가로막았다.
“전 됐어요. 나은아 네가 VR체험하고 있을래? 나 잠깐 통화 좀 하고 올게.”
예진이 밖으로 나갔다. 홀에 덩그러니 남겨진 나은과 콩매니저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나은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VR기기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콩매니저가 VR기기 체험 도와드리겠다며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VR기기를 나은의 머리에 직접 씌워주며 설명했다.
“VR 속의 사람을 보면 진짜 사람처럼 보여도 대화를 하거나 만질 수는 없어요. 버튼 하나 누르면 바로 재생됩니다. 여기 오른쪽 버튼을 누르세요.”
버튼을 누르자마자 나은은 순식간에 과거로 돌아갔다.
“나은아! 너 스타벅스 알아?”
고등학교 교실, 예진과 나은은 교복 치마 아래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다.
예진은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나은에게 물어봤다. 물어볼 때는 모르는 것을 알려주겠다는 친절함이 아니라 네가 모르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는 묘한 느낌이 있었다.
“몰라.”
“미국에서 이번에 새로 들어왔는데 드디어 대구에 처음 생겼대. 같이 가자.”
예진의 표정은 친절했다. 그때는 몰랐다. 예진은 나은이와 함께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스타벅스에 가고 싶어서 동행이 필요했다는 것을.
나은은 망설인다. 학원이 끝나고 식당에 와서 도와주길 바라는 엄마에게 뭐라고 말하며, 단 돈 천원도 허투루 쓰지 말라는 엄마 때문에 커피값으로 쓸 수 있는 여윳돈도 없었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예진이는 스타벅스에 가자고 나은을 재촉했다.
나은은 어쩔 수 없이 오케이를 한다.
그리고 예진과 나은은 교실에서 함께 팔짱을 끼고 일어선다.
VR은 거기서 멈추었다.
나은은 방금까지는 못느꼈는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자 VR이 아니라 쇳덩어리를 머리에 얹은 것만 같았다. 나은이 VR을 벗으려고 손으로 VR을 잡아 올렸지만 잘 벗겨지지 않자 콩매니저는 희고 긴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VR을 벗기며 말했다.
“친구분과 같이 오셨는데 커피도 같이 안 마시네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예진이 어느 새 자리에 와서 앉았다.
카라멜 라떼가 든 머그 잔을 손에 쥐더니
“벌써 식었나?”
라고 말했다. 나은은 네가 빨리 마시지 않으니 식은 거라고 말해 주려다가 그저 침묵으로 답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