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누가 작을 글씨를 잘 볼까
며칠 전 후배가 나에게
"언니~ 나 노안 왔나 봐요. 안 보여요!!"
라고 말했다.
안다, 안다, 그게 어떤 건지 너무 잘 안다.
몇 년 전 후배들과 신나게 제주도 여행 중이었는데 갑자기 가까운 글씨가 안 보여서 멀리했더니 잘 보이는 거다.
이게 노안인 게 싶어서 너무 놀라서 혼자만 알고 여행을 계속했다.
그리고는 후배들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가까운 게 잘 보여? 먼 게 잘 보여?"
후배들은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 언니 가까운 게 당연히 잘 보이죠."
속으로 그렇지... 하면서도 나는 몇 번이고 내 눈앞에서 핸드폰을 멀리 가까이해보며 테스트틀 해봤지만 가까운 게 더 안보이기만 했다.
아... 나에게 노안이 찾아오다니!!!!
말로만 듣던 가까운 것보다 먼 게 잘 보인다는 걸 몸으로 느끼는 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그렇게 노안이 오고서 깨달은 것은 남들에게 보이는 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모두가 같은 시력을 갖고 사는 게 아니라는 것.
아무리 관리를 잘하고 신경 쓴다 해도 노안은 오고야 만다는 것
빠르면 40대 초반에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갑자기 느껴지는 그동안의 시야와 다른 느낌은 낯설기만 했다
그런데 나는 노안이 오고 나서야 아이를 키우게 되었는데
아이들은 원래 가까운 것만 보이고 멀리 있는 게 보이지 않는 근시로 태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점점 시력이 좋아져 멀리까지 보이게 되는 거라고.
아이 건강검진을 하러 가서 그 설명을 듣고 나서야 자연의 섭리를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이는 가까이 봐야 하고 노인은 멀리 보라는 뜻인가 보다
그 후부터는 나도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의 글자 크기를 조금 키우게 되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수없이 보아왔던 나이 든 사람들이 한 화면에 열 자도 안 되는 큰 크기로 보는 게
너무 노인네 같아서 최대한 내가 볼 수 있는 최대한 작은 크기로 키웠다.
그리고 정 안 보이는 건 핸드폰 화면 캡처를 해서 확대를 해서 본다.
정말 이 기능을 이렇게 잘 쓰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덕분에 내 핸드폰 사진 폴더에는 온갖 작은 글씨들의 캡처 화면이 쌓여 간다
그리고 딸아이가 글자를 읽기 시작할 때부터는 아주 도움이 되었다 어쩌면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노안이 온 부모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외모는 얼마든지 꾸밀 수 있다. 그러나 시력을 꾸밀 수 없기에 핸드폰의 글자 크기만큼 정직한 게 있을까.
그래서 신종 나이 확인 방법은 외모가 아닌 핸드폰 글자 크기라는 말도 있다.
그러다 보니 핸드폰 글자 크기가 내 자존심이 된 것만 같아서 더 키우고 싶다가도 조금만 더 버텨보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작은 글씨의 불편함은 생활의 곳곳에서 찾아온다. 특히 요리법이 적혀 있는 인스턴트 요리 포장의 글씨는 너무 작다. 또 어떤 책의 글씨는 너무 작다. 그래서 오히려 이북을 구매해서 글자를 키워서 읽을 때가 편하기도 하다.
가까운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는 멀리 넓게 보는 때가 되었다는 뜻이라 생각하게 되면 눈 앞의 사사로운 것에 연연해하지 않는 게 일부러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될 수도 있다니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그 핸드폰의 큰 글씨로 나도 모르게 사생활이 다 까발려지는 느낌 때문에 제발 나에게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는 있다. 언젠가는 오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