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도슨트 임리나 Apr 06. 2020

인터넷쇼핑을 할 수 있다고 늙은 게 아니라고요?!

과일트럭의 비밀

나이가 들면 '인터넷 쇼핑'에 능숙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인터넷 쇼핑에 능한 것에 자부심이 있었다.

심지어 쿠* 사이트의 프리미엄 회원이기도 하다.

오히려 중독을 걱정해야 할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얼마 전 <과일트럭>에서 과일을 사게 되었는데 

인터넷 쇼핑 좀 할 줄 안다고 노인네가 아니라고 자부심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일트럭>이란 어쩌면 신도시 문화일지도 모르겠는데 

도매상에서 과일을 떼서 주부들 대상으로 판매를 하는데 

주로 맘카페에 무슨 요일 어디어디에 서는지 글이 올라온다.

딱 일주일에 한번 20분 정도만이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나는 마침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도 길고 먹을 거리도 많이 챙겨야 해서

생전 처음 <과일 트럭>에 가보기로 했다.


그 전에는 <과일 트럭>의 존재는 알았지만 굳이 그 시간에 맞춰 거기서 사온다는 게 귀찮다고만 생각했었다.


우선 맘카페에서 우리 아파트 근처에 1시30분에서 50분까지 머문다는 정보를 보고

그 시간에 과일트럭 쪽에 갔다.

사람들은 이미 줄을 서 있었다.


나도 줄을 서고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줄을 선 분위기가 꽤나 엄숙하게 느껴졌고

또 줄은 선 장점은 일단 자신의 차례가 되면 여유있게 과일들을 고를 수 있다는데 있었다.

사장님은 상당히 친절하게 묻는 것에 잘 대답해주시고 

식구가 적은 나는 조금씩 샀는데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때 몇 명의 할머니들이 줄도 서지 않고 과일을 사려고 말을 걸자

트럭 사장님은 우선 줄을 서라는 말을 먼저 했고

그 할머니들은 그 말에 줄을 서지 않고 화를 내고 그냥 가버리기 일쑤였다.


아마 그렇게 행동을 하는데는

'고작 과일 트럭 주제에 손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기분 나뻐 안 사.'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리를 떠나는 그 할머니에게 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다.


정말 거짓말같이 줄 선 사람들이 다 과일을 사니 예정한 20분이 거의 끝날즘이었고

그 과일트럭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나는 처음 과일트럭에서 과일을 사봤는데 정말 놀랄 정도로 품질이 좋아서

벌써 다음 주가 기다려진다.

이렇게 좋은 품질의 과일을 이렇게 싼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걸 왜 이제 알았나 싶었다.


단순히 인터넷 쇼핑을 할 줄 안다고 노인같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다시 오프라인에서 줄을 서야 하는 이 오프라인 시스템까지 알기에는

노인들에겐 다소 역부족이 아닐까.


나는 과일트럭의 다소 경건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줄을 서는 것, 또 자신의 차례에서 맘껏 과일을 고르고 사장님에게 물어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은 아주 잠깐이라는 것.


아무런 정보도 없이 길거리 과일트럭이라고 생각해 버린 그 할머니들의 행동.

또 그 할머니들에게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 냉랭함

어쩌면 그 냉랭함에는 어차피 설명해줘도 모를 것이라는 '포기'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 상황을 보며 만약에 내가 그 할머니라면 한번쯤은 시키는대로 줄을 서보거나

이 트럭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할머니가 화내고 무시할 과일 트럭이 아니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질좋고 싼 가격의 과일을 사려고
미리 정보도 얻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요.
화내기 전에 줄이라도 서본다면 또 다른 시스템을 알게 될 수도 있을 거에요.

'늙기만 한 거면 좋으련만 새로운 시스템을 이해하려는 노력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나 스스로도 반성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응급실에 실려간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