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도슨트 임리나 May 11. 2020

더 살아봐야 아는 것들-만남과 이별....그리고 재회

늙기밖에 더하겠어

진정한 인연은 두번째 만남에서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처음 만나서 헤어지고 다시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반가우면 진짜 좋은 사이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은 만남에 기뻐하고 헤어짐에 슬퍼할 뿐 눈앞에 닥친 이별만 생각하느라 앞으로의 재회는 생각하지 못한다.

아니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많은 이별을 겪었지만 연인과의 이별보다도 더 아픈 이별은 친구와의 이별이었다.

같은 지역 출신의 친구로 대학교 4년 내내 똑같은 시간표를 짜고 붙어다녔던 친구가 대학을 졸업하고 1년만에 출가를 해버렸다  


나는 그때 너무 슬펐고 그 친구를 영영 만나지 못한다는 생각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때부터 '여자친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남들이 이성을 찾아 온라인 채팅을 할 때 나는 여자 친구를 찾아 채팅을 했다.

대학교까지 졸업한 후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날 확률은 적어지지만 온라인을 통해서는 많은 여자친구를 만들 수 있었다. 꼭 동갑만이 아니라 언니와 동생들도 만날 수 있었다.

아마 그 덕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온라인에서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온라인에서 사람 만나는 거 위험하다고 하지만 나는 온라인이 있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 친구를 그리워했고 어떤 때는 원망을 하기도 했다.

빛나던 청춘의 4년을 공유했던 가장 친한 친구가 사라짐으로 나의 청춘마저 사라진 것만 같았다. 그 시절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고 또 그 이후에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그런 삶을 공유할 친구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몇년의 세월이 흘러 내가 29살이 되어 결혼을 해서 대전에 살게 되었을 때 그녀가 대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찾아가 한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 우리는 각자의 길로 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나는 또 찾아가겠다고 했지만 나는 대전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고 다시 그녀를 찾아가지 못했다  


그렇게 다시 이십년이 흘렀다.

나는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 일을 했고 다시 한국에 와서는 아이를 키우느라 대전으로 그녀를 찾아가기는 참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불교 신자이기도 해서 그녀에게 부탁을 할까 생각했지만 대전은 거리가 너무 머니까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몇 달 전 그녀가 강화도로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당장 달려가서 만나고 싶었지만 코로나로 집콕의 기간이었다.


그러다 아버지의 다섯번째 기일이 다가오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연락을 했고 아버지 제사를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일요일에 그녀를 만나러 다녀왔다.


청춘에서 중년의 재회였다. 그리고 이제는 같은 학교 같은 캠퍼스가 아닌 각자의 길에서의 만남이었다.

그녀가 제사를 모시며 나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며 우리가 참 다른 인생을 보냈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 각자 다른 삶을 살아서 나는 아버지의 상실을 그녀의 도움으로 애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십대 아름다고 빛나던 대학생 친구의 인연이 이제는 아버지의 상실을 위로해주는 인연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그녀와의 이별을 슬퍼하고 원망했던 내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삼십년이 지나 이렇게 날 위로해주는 또 다른 인연이 되어 있는데  그걸 생각할 수 없었던 나는 참 많이도 날 떠났다고 원망했었다.


스님도 나에게 '내가 네 아버지 제사를 지낼 줄을 몰랐다'고 했다.


짧았던 만남, 그리고 긴 이별, 예상치 못한 재회는 인생이 결코 짧지 않음을, 살면 살수록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스님은 모르겠지만 내가 그동안 품었던 원망을 이십년만에야 이렇게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인생은 참 '더 살아봐야 아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그녀와 재회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조금 덜 슬퍼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터넷쇼핑을 할 수 있다고 늙은 게 아니라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