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암?
처음 암이란 진단과 함께 수술을 하기 위한 검사 입원을 하라고 했을 때 ‘입원’이란 단어만으로도 나는 걱정이 앞섰다.
지금까지 한번도 입원을 한 경험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과연 낯선 공간에서 타인과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다.
결국 이런 저런 염려와 두려움을 간직한 채 입원 날짜는 다가왔고 보호자 역할을 해주리라 생각했던 남편은 코로나 때문에 2주 이내에 P시를 방문한 이력 이 있어서 안되고, 제2 후보자였던 사촌동생은 I시 K구 거주자라서 병실에 함께 올라갈 수 없었다.
원래 입원 예약을 할 때는 2인실을 예약했으나 현재 6인실밖에 자리가 없다고 해서 6인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병원 생활은 아주 괴로웠다.
괴로운 이유는 간단했다.
정말 비좁은 공간에 환자+보호자 12명(내가 보호자가 없으니 11명)이 생활한다는 건 나에게 많은 인내를 요구했다.
모두들 타인을 배려하느라 조용조용 말하고 조심스레 움직였지만 어쩔 수 없이 내게 들리는 소리는 각종 소음으로 느껴질 뿐이었고 낮과 밤 상관 없이 간호사들이 2시간 간격으로 방문하는 스케줄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처음으로 이렇게 예민한 사람이구나.....생각했고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이란 결과가 나와서 시촌동생이 병실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을 때 ‘안대’와 ‘블루투스이어폰’을 가져다 달라 했다.
어떻게든 조용히 혼자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간단한 도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2인실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1인실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비용이 부담이 되어서 2인실만 가도 살 것 같으리라 생각했다.
결국 간호사한테 얘기해서 2인실에 대기를 걸어놓고 3일만에 옮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괴롭히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검사 입원이 끝나고 다시 수술을 위해 입원했을 때 다행히 2인실에 입원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비좁은 공간에서 커텐 하나로 나란히 누워 있는 상대방에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유를 들자면 ‘대화하고 싶지 않은데 말을 건다는 것’, ‘너무 떠든다는 것’ 등이었는데 상대방이 잘잘못을 떠나 내가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1인실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시 1인실로 옮긴 후에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난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하루 40만원 넘게 지불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내가 살고봐야 해서....
그리고 요양병원에 와서도 나의 민감함은 끝나지 않았다.
요양병원에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커튼 하나 옆으로 누군가 입원을 했다
그 옴싹달싹할 수 없는 거리감에 또 한번 스트레스가 시작되고 말았다.
그래서 또 나는 방을 옮기기로 생각하고 오히려 4명이 묵는 방을 선택했다.
4명이 묵지만 각자의 거리가 적당히 있을 수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덕분인지 타인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았던 내가 여기서는 잘 지내고 있다.
모두들 조용하고 타인에 대해 배려를 하고 무엇보다 물리적으로 적정한 자신의 공간이 확보된다
내가 이번에 깨달은 건 사람마다 ‘몸소리’가 있다는 것이다. 말은 안하고 움직일 뿐인데 어떤 사람의 소리는 크게 들리고 어떤 사람의 소리를 작게 들린다.
나는 ‘몸소리’가 큰 사람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병실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병실을 옮기는 것이다
병실만이 아니다.
나름 한달 보름의 병원생활에서 불편한 점은 참지 말고 바로바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로불만러가 되는 게 좋다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내가 힘들고 스트레스 받고 하는 문제들을 그냥 참을 것이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뜻이다.
옮기고 싶은 병실에 자리가 나서 옮기는 건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다.
이렇게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은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나의 요구를 정확히 표현하는 것은 꼭 필요한 생존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