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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Feb 14. 2023

삽화

취미를 권하는 글을 쓰며 그림 이야기를 하려니 다시 어릴 적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내 어릴 적은 온통 그림으로 지탱되고 있었다. 그 기쁨을 쓰다가 이내, 그만두게 한 엄마에 대한 원망, 그림에 대한 미련을 글로 뱉어내고 있었다. 그 글은 차콜색의 진득한 껌 같았다. 그런 글을 일곱 꼭지째 쓰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지겨워서 던져버릴 그런 이야기를. 

그런 이야기만 하려던 건 아니었다. 계속 그림을 그릴 거고, 나를 잠식한 껌이 떼어져 나가고 구겨진 내가 펴질 것을 알았다. 그 과정을 쓰고 싶었다.


글이 좀 모이자, 글쓰기 선생님을 만났다. 이런 글을 쓰고 있다고 하니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삽화를 그려보지 그래요?"

"삽화... 제가 그리고 있는 게 책에 넣을 수 있는 그림은 아니에요..."

"그러면 책에 넣을 그림을 그리면 되죠."

자기가 그릴 거 아니라고 이렇게 말이 쉽다. 하긴, 나도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림을 그리니까 언젠가 내 책에 내 그림을 넣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미래의 꿈같은 일이었다. 지금이 아니고.

"...... 몇 장이나 필요할까요?"

"글쎄요, 열 장에서 열다섯 장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당시의 내 그림 : 화실 3달째.



















그림 한 장 그리는데 한 달에서 한 달 반정도 걸리는데 열 장 이상을 그리라니. 불가능했다. 화실은 일주일에 한 번만 성인 수업이 개설되어 있었고 나는 지금 이 정도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삽화는 꼭 이번책이 아니라도 글을 쓰기만 하면 다음에 쓸 책 어딘가에 넣을 수 있었다. 이번 책은 그림 없이 가자.


마음을 딱 정리하고 돌아서는데 문제가 생겼다. 내 안에서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삽화를 넣으라는 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의식의 흐름대로 나는 내게 물었다.

'뭘 그리지?'




숙련된 미술 선생님은 초보자에게 아무 그림이나 들이밀지 않는다. 샘플이 서른 개 정도 있다면 학생의 수준에 맞는 그림 두세 개를 제시한다. 학생은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그린다. 샘플은 그림이기도 하고 사진이기도 하다. 초보자일수록 사진보다 그림을 보고 그리는 것이 좋다. '사과는 빨갛다'는 생각으로 사과 사진을 고른 사람은 그 사과에 있는 초록빛과 보랏빛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그려놓은 그림을 보며 눈으로 보면서도 찾을 수 없었던 초록빛을 볼 수 있게 된다. 많은 빛을 읽어낼수록 실제와 같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내가 다닌 화실도 샘플을 갖고 있었다. 그 샘플에 파뿌리와 유리병은 있었지만 책의 삽화로 쓸법한 그림은 아니었다. 입시 미술학원이니 입시 시험에 나오는 샘플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내가 그릴 그림은 내가 찾아야 했다. 뭘 그려야 할까? 뭘 그릴 지를 찾으려면 뭘 봐야 하지?

인스타그램에서 하루종일 남의 그림을 보며 감탄했고, 핀터레스트에서 예쁜 그림과 사진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좋은 사이트가 있다니! 주위 사람들이 일상을 올린 사진들도 예쁜 건 죄다 캡처해서 담아놓았다.

언젠가 그림을 잘 그리게 되면 이런 것도 그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수백 장의 사진과 그림들이 내 휴대폰에 저장되었다.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림 #화가 #작가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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