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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Feb 17. 2023

매일 그린다

혼자 그리려면 뭐부터 해야 하지?


혼자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엄마가 미술학원을 끊어버렸던 중학생 시절, 화가가 될 유일한 줄이 같이 잘렸다고 믿었다. 가장 잘 그리는 사람이 되려면 대학에서 전공한 사람에게 가장 가까워져야 했다. 되도록이면 홍대에서 그림 전공을 하고 대학원을 가고 유학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인받은 사람과 최대한 가까워지는 것이 그림으로 갈 수 있는 최고의 목적지였다. 그림이 좋았고 매일 그렸고 잘 그린다는 소리를 꽤 들었다. 당연히 미술 전공을 할 줄 알았다. 갑자기 그림을 그만두게 되자, 내 인생도 뚝 잘린 기분이었다. 상실감이 너무 커, 공허하고 무력했다.


입시미술이 전진이라면, 그만두는 것은 후퇴였다. 다른 길이 있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전진도 후퇴도 아닌, 전혀 다른 길을 가려고 출발점에 서 있었다. 서른일곱에 처음 만난 '뭘 그리지?'라는 질문이 나를 흔들었다.


그즈음 혜영언니가 "내가 쓰다 남은 건데, 진희 씨 써볼래?" 하며 둘둘 말린 종이 하나를 건네었다. '아르쉬'라는 수채화 전용지였다.(나중에 알고 보니 요만큼이 수십만 원짜리였다.) 종이 한 귀퉁이를 잘라 조심스럽게 붓을 올렸다. 종이는 물이 닿자마자 물감을 쭉 빨아 당겼고 색의 흔적이 진하게 남았다. 호오, 신기해라. 물의 양을 잘 조절하지 않으면 너무 진하거나 너무 번져버리는 이 민감한 종이가, 나는 좋았다. 


작은 꽃잎 하나를 그리는 것도 온 마음을 집중해서 그려야 예쁘게 완성되었다. 색이 너무 퍼져 나가지 않도록 재빠르게 왼쪽 손에 쥔 휴지에 붓의 물을 흡수시키며 종이의 물기를 조절해야 했고 다 마르기를 기다린 후 세필붓으로 세밀한 잎맥을 하나씩 그려 나갔다. 수채화 책을 펴놓고 손바닥만 한 그림 한쪽을 따라 그리는 데 몇 시간이 걸렸다. 


이 작은 것 하나도 물어볼 선생님이 없이 혼자 해야 할 때의 막막함을 안다.

그렇지만 한 번 해보는 거다. 꽃잎의 시작 부분에 노란색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붓으로 그릴 때 더 조절이 쉬운 지도 알게 되었고 물감의 양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언제 닦아내야 하는지, 어떤 색깔을 조합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 안에 내가 알아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이 한 페이지를 그리며 알았다. 그 앎은 오롯이 나로 시작해 내가 실행하며 알고 내가 마무리한 것이었다. 이 과정이 일주일에 한 번 말고 매일매일 쌓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공부 하나만 하면 되는데 그 하나를 안 하는 걸 부모님은 견딜 수 없어 하셨다. 난, 내 소중한 걸 뺏어버린 엄마가 원하는 그 하나를, 절대 주지 않겠다고 생각했더랬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아빠가, 고등학생이었던 내게 책 하나를 선물했었던 것이 기억났다. 안경 쓴 사람, 우산 쓴 사람, 앉아있는 사람, 옆모습의 사람, 걸어가는 사람...... 온갖 각도의 아이부터 노인까지의 사람이 그려진 도안 책이었다. 그 책은 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책꽂이 어딘가에 꽂혔다. 

서로가 서로를 할퀴던 그 시기, 아빠는 어쩌다 그 책을 내게 건넸을까. 평소 회사에서 책 선물을 많이 하셨으니까, 서점에 갔겠다. 지나가다 그 책을 발견하고는 잠시 서서 그 책을 이리저리 넘겨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할 것 같아, 혼자라도 펴놓고 끄적끄적 따라 그려보길 바라며 그 책을 들고 집에 왔을 것이다. 내가 환하게 웃으며 그 책을 받는 얼굴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책이 반갑지 않았다. 대학 갈 때 하등 필요도 없는 그 책을 왜 사 왔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책은 곧장 책장에 꽂힌 채 잊혔다. 그런데 갑자기 만화처럼, 그 기억이 몇십 년 만에 떠올랐다. 마흔이 훌쩍 넘어, 나는 그때의 아빠 마음을 헤아리며 먹먹해진다. 책은 없어졌어도, 기억이 남아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 그 응원을 머금고 힘을 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혼자서도 얼마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무용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도 유용함이 숨어 있다는 것을. 실은 누구보다 부모님이 나를 미대에 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정답처럼 보이는 도로 옆으로 수많은 길이 나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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