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노 Dec 19. 2022

아무래도 편하게 살기는 그른 것 같다

빡세게 구르는 신입사원

  어제부로 올해의 바쁜 일정들이 모두 끝났습니다. 몇 번의 실험을 거치다 보면 마지막 즈음에는 조금 여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어림도 없었어요. 월요일에는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했고, 화요일에는 하루를 걸러 수요일 새벽에야 퇴근할 수 있었습니다. 장비가 조금씩 개선될 때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을 마주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크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해탈 직전에 이른 것인지, 대학원부터 몇 년째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에 익숙해진 것인지, 멘탈이 정말 강해진 것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요. 실험 당일날마저도 문제가 생겨 점심도 못 먹는 강행군을 해야 했지만, 다행히 몸도 심하게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연말의 선물인지 큰 문제없이 실험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짐을 다 정리하고 팀원분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점심을 못 먹어서 그런지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어요. 식사를 마치고 실장님께서 고생 많았다며 저에게 신입사원인데 너무 빡세게 굴러서 다른 친구들을 보면 억울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워라벨이 좋은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에 비하면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불구덩이와 다름없긴 하죠. 그럼에도 비슷하거나 더 많은 돈을 받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지만, 사실 억울할 것 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만큼 더 많은 걸 빠르게 배울 수 있고, 무엇보다 제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까요. 오히려 신입이라고 하루 종일 널널한 일과가 반복되었다면 제 성격에는 더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돈만 벌려고 회사에 다니는 거라면 억울할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아서 괜찮다는 모범적인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그토록 피곤한 상황에서도 그렇게 얘기한 제 자신이 참 기특하네요.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제가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꽤 자주 하십니다. 아무래도 새로운 경험과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발발거리는 것도 모자라, 욕심마저 넘쳐 어떻게든 아득바득 이겨내려 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시니 그런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지만 요즘은 거의 포기상태입니다. 좋은 의미로요. 사람은 결국 생긴 대로 사는 게 가장 행복하고, 저는 바쁘게 일하는 것과 그 후에 주어지는 휴식 시간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몸과 마음이 편안하진 않더라도, 활기찬 몸과 충만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팔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신입사원인데 1년도 안된 기간 동안 이렇게 빡세게 구르는 것 보면 말 다했죠. 그냥 마음 편히 받아들이고, 오랜만에 찾아온 바쁜 일과 후의 작은 여유를 즐겨봐야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또 구르러 가야죠.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더 잘해야 했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