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존 오브 인터레스트>
영화의 시작은 그닥 예쁘게 찍히지도 않은 평범한 가족의 물놀이 장면이다.
영화라는 사실을 잠시 잊을 정도로 평범한 화면.
영화 전반부의 많은 장면은 루돌프 회스와 부인 헤트비히 가족에게 할애된다.
꽤나 크고 잘 가꾸어진 집에서 몇 명의 하인과 하녀들과 생활하는 이 가족은
잠이 들지 못하는 어린 여자 아이에게 <헨젤과 그레텔>을 읽어주며 재우고
아이들과 단란하게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직장생활에도 가족에게도 충실한 루돌프 회스는 어떻게 하면 자기가 맡은 일을
잘 할 수 있을지에 항상 신경을 쓰고 나홀로 전근을 가는 희생도 마다 않는다.
갓난 아이에게 꽃을 보여주며 꽃이름을 맡게 하고
정원을 정성들여 가꾸며 집안일을 잘 꾸려가는 엄마 헤트비히.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개울에서 수영장에서 또 집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형제.
밤에 잠못들며 집을 헤매지만 아빠 품에서 아빠가 읽어주는 책에 귀기울이다 잠드는 여자 아이.
예쁜 집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 가족의 일상은 참으로 이상적이다.
주인공 루돌프 회스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이며
이 집이 수용소와 같은 담장을 쓰는 관사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이 가족의 행복한 하루하루에도 바로 옆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 희대의 비극이 진행되고 있으며
아이에게 인자한 아버지는 이 학살의 진두지휘자였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화 제목 <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는 나치 독일이 아우슈비츠와 그 주변 지역을
일컫던 용어라고 한다. 폴란드 지주들로부터 이곳을 몰수한 뒤 수용소 포로들에게 일을 시켜 농사를 짓게 하고 농작물을 수확해 자신들의 금전적 이득을 취했던 데서 비롯된 이름.
이 영화는 마틴 에이미스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이들 가족의 터전인 집은 바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옆.
그곳에선 매일 소각로에서 불이 나는 것 같은 소리, 포로들의 비명 소리, 나치의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딸네 집을 방문해 훌륭한 정원과 인테리어에 감탄하던 헤트비히의 엄마는
그 평온한 일상 너머의 진실을 깨닫곤 홀연히 그 집을 떠나고
아기를 돌보는 보모는 끔찍한 상황에 몸서리치며 밤마다 술잔을 들이켠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든 말든 자신이 어릴 때부터 꿈꾸던 생활을 누리는 헤트비히는
이 저택에서의 삶에 너무나 겨운 나머지 전근을 가는 남편에게 혼자 가라고 한다.
후임자는 다른 곳에 살고 자신은 그곳에 살겠다는 억지도 부리는데 또 이 억지가 통한다.
자신의 안온한 생활을 지키기 위해 헤트비히는 수시로 히틀러에게
자신이 가꾼 꽃을 따서 꽃다발을 보내는 정성을 보인다.
자상하고 능력 있는 가장 루돌프 회스, 집안일에 최선을 다하고 아이들에게 인자한 엄마 헤트비히.
하지만 알고보면 루돌프 회스의 능력은 같은 나치도 혀를 내두를 잔인한 능력이다.
루돌프 회스는 유대인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학살할 지를 두고 시설업자를 만나 논의한다.
헤트비히는 유대인 희생자들의 옷을 받아 입으며 멋을 내고
이 옷가지에서 나오는 귀중품들을 자신이 소유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긴다.
이 집의 시중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수용소 사람들이다.
루돌프는 자신이 가는 방향이 무언지도 모르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어찌보면 우직하게까지
돌진함으로써 인류의 가장 끔찍한 범죄 주동자 역할을 하게 된다.
반면 헤트비히는 자신이 얻는 이익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뒤에 무슨 일이 있는지에 전혀 관심이 없다.
오로지 당장 자신이 누릴 이익을 극대화하고 그 이익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평범한 가족의 얼굴을 한 사람들이 끔찍한 전범과 그 전범 옆에서 이익을 챙긴 악마에 다름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고찰 '유대인 말살을 저지른 아이히만은 그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이었으며 악의 근원은 평범한 곳에 있다' 를 너무나도 잘 구현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수용소에서 행해지는 비극적 폭력은 이들의 일상에도 스며든다. 헤트비히는 심기가 불편할 때 괜히 하녀에게 시비를 걸면서 "내 맘에 안들면 아무도 모르게 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고 협박하고 이들의 형제는 놀이 중에 형이 동생을 가두어 버리기도 한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 백 만 명의 유대인을 희생시킨 루돌프 회스는 1947년 전범으로 사형을 당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협력 아래 방대한 자료 조사를 마치고 영화를 만든 감독은 암울한 시대 속 악의 반대축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짧게나마 희망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영화속 독특한 화면으로 나오는 한 폴란드 소녀는 수용소의 유대인들이 먹을 수 있도록 사과를 곳곳에 숨겨 둔다.
밤에 몰래 사과를 놓고 오는 이 소녀를 엄마는 조심히 맞이한다. 수용소에서 주운 쪽지에는 악보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소녀. '햇살'이라는 제목의 곡은 실제 수용소의 시인 조셉 울프의 시이다.
아우슈비츠의 비극적 사건을 다룬 영화치고는 고요한 이 영화가 그렇다고 편하게 보여지진 않는다.
인터뷰에서 "대량 학살범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아우슈비츠를 비추지 않았다는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은 평화로운 일상에 불편함을 느끼게 만드는 사운드를 배치함으로써 영화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 가족의 일상에도 수용소의 것으로 들리는 묘한 소리가 깔리고 특히 영화 후반부를 장식하는 음악은 이세상의 부조리와 비극을 다 끌어안은 듯, 심장을 긁어대는 그로테스크한 소리로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이 영화는 특히 엔딩 음악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마지막 음악이야말로 평범한 악의 그로테스크함, 우리 일상 곳곳에도 스며있는 평범한 악을 '소리로'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