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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o Jan 11. 2018

진실을 마주하고 의인이 되다

어쩌다 보니 요즘은 화제가 되는 영화를 한참 늦게 보며 뒷북을 치고 있다.

<라라랜드>가 그랬고 <택시운전사>가 그랬다. <1987>도 너무너무 보고 싶은데 영화 한 번 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1987>역시 다른 사람들이 다 보고 난 뒤 이렇게 뒷북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택시운전사>는 어쩌다 두 번이나 보게 됐지만 정작 극장에서는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요즘은 TV로 쉽게 영화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TV가 꽤 큰 화면이라 해도 극장에서 보는 맛을 따라잡지 못한다.

경쾌한 음악의 예고편이 귀엽게 느껴졌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주제는 1980년 광주였다는 점에서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예전에 봤던 <화려한 휴가>와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기도 했다.


1980년 5월에 대한 어렴풋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도덕 수업시간 때였다. 선생님이 광주 이야기를 지나가듯 하면서 '무장 폭도'란 표현을 썼다. 아마 당시 신문에도 그렇게 나왔던 것 같다. 그런데 왜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선생님의 말에 약간의 의구심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1980년 광주는 몇 년 동안 잊혔다.


1982년 부산에서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나면서 광주항쟁에 대한 미국의 책임이 언급됐지만 고작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내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광주항쟁은 내 성장기에  뭐라 콕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는 짙은 의구심과 함께 아련하고 희미한 기억만을 남겼다.

광주의 진실을 외부로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힌츠페터 기자와 김사복 씨 이야기.


광주항쟁의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한 것은 1988년,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광주항쟁에 관한 비디오는 차마 화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고 끔찍했다. 그런데 지금 되돌이켜 보면 정말로 끔찍한 것은 그 학살극이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택시운전사>를 보기도 전에 광주항쟁에 대한 내 기억이 이렇게 스쳐갔다. 벌써 30년이 넘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 어쩌면 나는 아직도 광주항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화려한 휴가>가 1980년 광주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택시운전사>는 광주의 참혹한 소식을 외부에 알리려는 독일의 기자와 아무 생각 없이 기자를 따라갔다가 기자와 함께 하게 되는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의 이야기다.

딸을 홀로 키우는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는 처음엔 돈을 벌 생각으로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를 택시에 태워 광주로 간다. 그러나 광주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느덧 김사복 씨는 힌츠페터 기자와 한마음이 되어 광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송강호의 가벼운 분위기도 잠시, 두 사람이 광주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어느새 관객이 아니라 그때의 광주를 따라 들어가는 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화려한 휴가>가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에 집중했다면 <택시운전사>는 그때 광주 사람들의 심정이 어땠을지를 더 말해주는 듯했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자식의 생사를 걱정해야 했고 눈앞에서 친구와 가족이 국가가 휘두르는 몽둥이와 칼, 총에 맞아 죽임을 당하고 병원을 다니며 가족의 시신을 찾아 헤매야 했던 광주 사람들을...

힌츠페터 기자를 반기는 광주 시민들. 류준열은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그 시절에서 방금 온 사람 같았다. 


넋 놓고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광주 시민들은 서로를 보듬고 함께 싸웠다. 김사복 씨가 택시운전사였기에 알게 된 광주의 택시운전사들은 자신들의 차를 무기로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해냈다. 개인적으로는 광주 택시운전사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신들이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다. 하루하루 택시를 몰며 가족들과 동료들과 행복하게 살았을 택시기사들이 마치 전장의 군인처럼 자신들의 택시로 싸웠다.


상황에 따라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김사복 씨의 역할을 배우 송강호는 훌륭하게 해냈다. 상식을 믿고 인정 많은 평범한 택시운전사가 광주의 참상을 알리려는 외신 기자의 훌륭한 파트너가 되어 임무를 완수해 내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어쩔 수 없이 한국 현대사의 가장 참혹했던 장면을 가슴 아프게 마주한다.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제대로 기자 역할을 한 힌츠페터 기자, 광주의 진실을 마주하고 용감하게 기자와 한 몸이 되어 나서 준 김사복 씨. 

그때 광주 시민들은 하루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김사복 같은 이가 한 명 두 명 늘어나면서 그나마 지금 우리는 조금은 나아진 세상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김사복 씨와 힌츠페터 기자가 생전 다시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영화를 한 번 보곤 몰랐는데 두 번째 보니 김사복 씨가 1980년 이후를 살아가는 것도 개인적으로 꽤 불안한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군사정권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고 힌츠페터 기자가 독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과 달리 김사복 씨는 그 군사정권 아래에서 계속 살아야 했다. 게다가 광주에서 김사복 씨는 그 군사정권의 정체를 생생히 목격하지 않았는가.

이 영화는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광주 택시운전사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광주 택시운전사들의 이야기를 따로 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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