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막 뒤로 알록달록 색깔 있는 실루엣이 움직인다. 사람과 같은 모양을 한 그 실루엣이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고 팔까지 저어가며 제법 섬세한 몸짓을 하면 거기에 사람의 목소리가 따라온다. 악사들은 분위기에 맞춰 음악을 연주한다.
하얀 막을 사이에 두고 앞쪽에는 관객이, 뒤쪽에는 인형이 놓이고 인형의 뒤로는 불빛이 놓인다. 그러면 인형은 빛을 받아 또 다른 세계에서 살아 움직이게 된다. 밤이 깊어가면 잠을 이기지 못하는 아이들은 먼저 가서 잠을 자고 어른들은 밤에 펼쳐진 놀라운 세계에 환호한다. 인형들이 사람의 입을 빌어 들려주는 맛갈진 대사에 울고 웃는다. 무대 뒤로는 인생사 희로애락이 펼쳐진다.
먼 옛날, 밤이 지금처럼 밝지 않았던 그때는 표현 그대로 '새카만' 밤이었을 터.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는 꽤 오랫동안 그 깜깜한 밤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그림자 인형극을 보며 울고 웃었다.
유럽 쪽에서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를 거치며 인형이 다양한 재료와 모양으로 발전해 온 반면 아시아에서는 유독 이 그림자 인형이 꾸준히 발달해 오면서 오히려 유럽으로 전파되는 모양새다.
그림자 인형을 유럽에서 발달해 온 인형들과 비교해 보면 인형 발달의 역사가 동, 서양의 차이를 그대로 품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럽의 인형들이 사람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옮겨온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모양이라면 이 그림자 인형은 추상적이고 은유적이다.
동양에서도 중국의 그림자 인형이 유명하다. 중국에서는 피영희(皮影戱)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무제(韓武帝, B.C. 141~B.C.87)는 자신이 유난히 아끼던 애첩 이부인(李夫人)을 병으로 잃는다. 사랑이 컸던지라 상심도 커서 이부인이 떠난 뒤에도 가슴앓이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제나라에서 온 방사(方士:고대 중국에서 '방술'이라고 하는 기예, 기술을 부리는 사람. 귀신과 통하는 기술을 다루었다고 한다.) 소옹(少翁)이라는 이가 자신이 죽은 이를 불러올 수 있다며 한무제를 찾아온다. 소옹은 장막 뒤에 이부인의 모양을 흉내 낸 인형을 움직여서 보여주었고 이것이 피영의 기원으로 회자된다.
천하의 권력을 가진 황제도 어쩌지 못한 지독한 그리움의 사연을 안고 시작된 그림자 인형은 당나라(618~907)와 북송(960~1127) 시기를 거치면서 널리 전파되다가 청나라(1616~1912) 시대 활짝 꽃을 피웠다. 청대에는 궁정에 그림자극을 관리하는 관원이 있을 정도였다. 주로 소나 양, 나귀 가죽으로 만들어지는 피영은 '가죽'이라는 까다로운 재료가 무색하게 섬세하게 만들어진다. 인형의 몸 부분을 머리, 상반신과 하반신, 팔 윗부분과 아랫부분, 다리 윗부분과 아랫부분, 손과 발 등 무려 11개 조각을 따로 만들어 연결시킨다. 이렇게 몸이 섬세하게 나뉜 까닭에 인형의 동작이 꽤 자연스러워진다.
피영희의 소재는 다양했다. 역사적인 사건과 전해 내려오는 왕의 무용담에서부터 남녀 간의 연애, 혹은 괴담 등을 두루 다루었다. 항일전쟁 중에는 '항일피영희선전대'라는 극단이 조직되어 항일을 주제로 한 작품을 쓰며 장저우 일대에서 순회공연을 펼치기도 했지만 문화대혁명 기간에 타파되어야 할 오래된 것으로 여겨져 타격을 입기도 했다.
그렇다면 아시아에 널리 전파된 그림자 인형의 기원은 중국일까? 여기에 대해 뚜렷한 정의는 없지만 그림자 인형의 시초는 인도가 유력하다는 설이 많다. 인도 하라파 문명(Harappa Civilizatin)에서 발견된 인장(seal) 중 일부가 몇 개의 장면을 연결해 고대 인도의 민화를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된 인도 전통의 그림자 인형극 톨로 봄말라타(Tholu Bommalata:Thoulu는 가죽, Bommalata는 인형의 춤)가 그 시초라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지금도 그림자 인형극이 인기가 있다. 지역별로 그 이름과 형식이 조금씩 다르다. 남동부 안드라프라데시 주(Andra Pradesh)에서는 톨로 봄말라타, 남부 카르나타카주(Karnataka)에서는 토갈루 곰베야타(Togalu Gombeyaata:Togalu는 그림자, Gombeyaata는 인형극), 동부 오디샤주(Odisha) 주에서는 라바나 크하야(Ravana Chhaya:Ravana는 라마야나의 등장인물. 라마(Rama) 왕의 아내 시타(Sita)를 납치했으나 라바에 의해 응징되는 마왕. Chhaya는 그림자)라는 이름으로 그림자 인형극을 펼친다.
인도의 그림자극은 고대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와 라마야나(Ramayana)의 내용들을 주로 공연한다. 변화무쌍하고 흥미진진한 신들의 전쟁과 사랑이야기가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이 공연에 쓰이는 인형의 크기는 꽤 크기도 해서 어떤 경우에는 실제 사람의 키 만한 그림자 인형이 등장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캐릭터의 비중에 따라 인형의 크기도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같은 그림자 극에서도 공연 중 신의 그림자 인형이 제일 크고 하인으로 나오는 그림자 인형은 제일 작은 식이다. 인도에서는 그림자 인형만으로도 다양한 변화를 그려내는데 같은 캐릭터의 표정에 따라 다른 인형을 제작하기도 한다.
인도 그림자 인형극에서는 인형극만큼이나 음악을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 노래하는 사람이 있고 북이나 심벌즈, 하모늄, 벨 등이 함께 연주된다. 가장 중요한 악기는 현악기 탐부라(tambua). 그림자 인형극 전반에 걸쳐 음악이 연주된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그림자 인형극도 유명하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는 그림자 인형을 '와양 쿨리트(Wayang Kulit:Wayang은 그림자, Kulit는 가죽 )'이라고 한다. 특히 자바(Java)나 발리(Bali)에서 발전했다. 와양 쿨리트는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의 그림자 인형극은 꽤 오랜 시간을 하는 특징이 있다. 발리의 경우 원래 6시간, 혹은 동트기 전까지 계속 공연을 했다고 한다. 와양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이는 달랑(Dalang). 달랑은 스크린 뒤에서 인형을 조종하고 목소리를 바꿔가며 인형의 대사를 한다. 인형이 맡은 배역에 맞추어 적절한 목소리와 대사를 구사해야 했고 여기에 인형극의 재미가 달린 만큼 달랑의 역할은 중요했다. 인도네시아 와양극에 동반되는 악기는 가믈란(gamelan)이다.
인도네시아에는 와양 웡(Wayang Wong)이라는 형태의 그림자극도 있다. 그림자극이라기보다 일종의 가면극에 가까운데 인형을 조종해서 공연을 하는 대신 사람이 가면을 써서 인형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공연 내용도 와양 쿨리트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다. 와양 웡 공연은 다른 그림자 인형극처럼 막 뒤에서 움직이는 형태가 아니다. 나무로 만든 그림자 인형 와양 클리틱(Wayang Klitik)도 스크린 없이 관객들 앞에서 공연된다.
중국이나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서의 인형극은 종교와 더불어 발전한 측면도 크다. 인형극들에서 신들의 이야기를 즐겨 다루었고 절이나 사원에서 널리 공연됐다. 스크린 저 너머 실재가 아니지만 실재를 넘은 다른 세상이, 다른 존재가 있다는 점이 신비스럽게 신의 이야기를 전하기에 좋았을 것이다.
아마도 활발한 국제교역 과정에서 그림자 인형극이 전달되어졌을 것으로 여겨지는 터키에서는 과거 오스만 제국(1299~1922) 시절부터 '카라괴즈(Karagöz)'라는 이름의 그림자 인형극이 전해져 온다.
카라괴즈는 다른 나라의 그림자 인형극과 달리 실제 사람들을 투영한 캐릭터 간의 대화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림자극의 이름이기도 한 카라괴즈와 하지와트(Hacivat)라는 두 사람이 주요 등장인물이 되어 이야기를 펼쳐 나가면서 그림자극을 진행해 희극적 요소가 강조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현대의 만담과도 비슷한데 극의 시작은 하지와트가 친구 카라괴즈를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중국이나 인도, 인도네시아에서 신화나 전설, 영웅담 등이 주된 극의 내용인데 비해 카라괴즈와 하지와트는 말장난을 즐기며 세태를 풍자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는 수수께끼를 내기도 하며 두 사람의 빌어 세상의 요지경 같은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카라괴즈와 하지와트는 사회적 계급이 뚜렷이 다른 것으로 그려지는데 카라괴즈는 지식이 짧고 거친 말을 즐겨 쓰며 반면 하지와트는 지체가 높으며 교양이 넘치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와트는 번번이 카라괴즈를 가르치려고 하고 교화시키려고 하지만 때로는 카라괴즈는 거침없는 입담으로 관객의 마음을 얻고 가끔은 하지와트가 생각지도 못한 정곡을 찌르며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터키에서는 라마단 기간에 그림자 인형극을 즐긴다. 특히 터키에서 시작돼 발달한 카페에서도 카라괴즈를 공연하며 여흥을 즐겼다.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영향으로 19세기부터 카라기오지스(Karagiozis)라는 이름의 그림자 인형극을 공연하고 있다.
카라괴즈에서는 낙타나 황소 가죽으로 만든 그림자 인형을 타스비르(tasvirs)라고 하고 타스비르를 조종하는 사람을 하얄리(Hayali)라고 한다. 하얄리는 인형 제작에서부터 공연의 전 과정을 책임진다.
태국에서는 낭 양이(Nang yai)라는 이름으로 그림자 인형극이 발달했고 캄보디아에서도 발달했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영회극(影繪劇)이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고 석가탄신일에 만석중놀이라는 이름의 그림자 인형극을 공연해 오다 1920년대를 전후해 맥이 끊겼다.
그림자 인형은 아시아에서 이렇듯 오랜 기간 아시아 전역에 골고루 공유되어 오다가 18세기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많은 유럽인들을 매료시켰다.
18세기 중반 그림자 인형극이 선교사에 의해 프랑스에 전해지며 눈길을 끌었다. 1776년 파리에서, 1781년 베르사유에서 '중국 그림자'(les ombres chinoises)라는 이름으로 초연이 되었고 19세기에는 파리의 많은 극장에서 그림자 인형을 공연했다. 인형과 음악과 대사가 어우러져 만드는 장면 장면은 그대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림자 인형은 그 신비로움으로 유럽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독일에서도 그림자 인형이 많은 곳에서 공연되었는데 독일의 로테 라이니거(Lotte Reiniger) 감독은 중국 그림자를 활용한 실루엣 애니메이션 <아흐메드 왕자의 모험>라는 영화를 발표하며 영화계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뤼미에르 형제는 그림자 인형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를 발명하기에 이르렀다.
인형을 조종하는 장인이 그다음 장면을 생각하며 그림자 인형에 달린 막대를 하나씩 하나씩 움직이던 그 조심스러움이 현대의 영화 속 프레임으로 되살아났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