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인형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인형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의례와 상징의 의미가 가득 한, 인류 최초 인형의 역할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서부 아프리카에는 아쿠아바(Akuaba)라는 이름의 목각 인형이 있다.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아산테(Asante) 부족이 만들어 온 이 인형은 크고 동그라면서 편평한 머리에 가는 눈, 짧은 팔과 다리. 마치 토르소처럼 팔과 다리의 일부로 만들어진 이 목각 인형은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옮겼다기보다 과장되고 추상적인 느낌을 준다.
크고 작은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아쿠아바는 아이를 낳기 원하는 다산인형으로 인형 자체에 상징이 그득하다. 인형의 기원부터 특별하다. 옛날 아쿠아란 여성이 결혼을 하고도 한참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동네의 사제를 찾아갔다. 그랬더니 사제가 아이 모양의 나무 인형을 주면서 그 인형을 진짜 아이처럼 대해 주라고 했다.
아쿠아는 사제의 말대로 이 인형을 소중히 다루어 끼니마다 진짜 음식을 먹이듯 먹이는 시늉을 하고 밤이면 잠자리에 뉘어주었다. 외출할 때도 업고 다녔다. 동네 사람들은 이런 아쿠아를 놀리며 인형에게 '아쿠아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쿠아의 아이'라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이 인형을 소중히 다룬 아쿠아에게 진짜 아이가 찾아왔다. 아쿠아는 딸이 태어난 뒤에도 나무 인형이 아이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했다.
납작하고 둥근 아쿠아바의 얼굴에는 흉터 자국 같은 것들이 있다. 나중에 태어날 아기에게 상처가 생기지 말라는 일종의 '액땜'인 것이다. 서부 아프리카의 아쿠아바는 아이에 준한다. 아쿠아바의 기원이 닿아 태어난 아이는 이 아쿠아바의 친구가 된다.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구슬 인형이 발달했다. 자신들의 의상을 그대로 구슬로 옮긴 줄루족과 줄루족에서 파생된 은데벨레족의 구슬 인형이 많이 알려져 있다. 줄루족에게 구슬은 아름다운 장신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연인을 향한 사랑의 말도, 가족 간의 중요한 행사도 색색의 구슬 배열을 통해 상대방에게 알려준다. 줄루족이 만드는 구슬 인형은 자신들의 구슬 언어를 그대로 재현하며 한껏 멋을 냈다.
은데벨레족의 구슬 인형의 줄루족과 비슷하면서도 보다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아름다운 벽 장식과 뛰어난 색과 무늬의 조화로 유명한 부족답게 인형 표현이 섬세하다. 은데벨레 부족에게 구슬 인형은 여성 일생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해준다. 그래서 생애에서 중요한 순간이 될 때면 가지고 있는 인형의 종류가 달라진다. 은데벨레족의 '링가 코바(Linga Koba, 혹은 Linga Kobe)' 인형은 아들을 둔 엄마의 인형이다. '긴 눈물'이란 뜻의 링가 코바는 원래 은데벨레 여성들의 구슬 장식을 일컫는다. 머리에서 발까지 늘어뜨리는 흰 구슬 장식으로 아들의 성년식 때 쓴다. '긴 눈물'이란 뜻은 아들을 성년식에 보낼 때 흘리는 걱정과 안타까움의 눈물, 아들의 소년을 잃어버린다는 슬픔이자 동시에 건장한 한 남자로 돌아온 아들을 맞을 때 흘리는 기쁨의 눈물 모두를 뜻한다. 흰 구슬 장식이 늘어진 인형이 링가 코바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은데벨레족의 구슬 인형을 이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은데벨레의 구슬 인형은 성년식 인형으로 머리에는 구슬 장식을 하고 망토를 둘렀으며 허리 앞쪽으로는 구슬 앞치마를 하고 있다. 망토와 구슬 앞치마는 결혼한 은데벨레 여성의 상징이다. 은데벨레 여성들은 결혼한 후 생겨나는 많은 상황들, 아이를 낳았다거나 성년식을 할 때가 됐다는 등의 사연을 구슬 앞치마에 무늬에 새겨 넣어 알린다.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들의 구슬 인형에는 앞치마나 망토 장식이 없다. 약혼자가 있는 여성일 경우 허리에 검은 고리를 두른다.
남성이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보내는 인형도 '의례용'으로 따로 있다. 긴 몸통에 구슬 장식이 된 인형으로 남성이 약혼한 여성에게 청혼하고 싶을 때면 이 인형을 상대 여성의 집 앞에 가만히 놓아서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은데벨레족의 신부 인형은 화려하다. 머리에는 알록달록 색을 넣어 꾸민 '인요가(inoga)'라는 특별한 구슬 장식을 하고 얼굴 앞쪽으로는 '시야야(siyaya)'라는 이름의 하얀 구슬 베일을 두른다. 망토도 한껏 화려하게 장식한다.
은데벨레 여성에게도 다산 인형이 있다. 인형 아래쪽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3단의 구슬 링을 따로 감고 머리도 구슬로 장식한 이 인형은 이름 그대로 아이를 잘 낳게 해달라고 만들어졌다. 신부 쪽 어른 중 아이를 잘 낳은 할머니가 비밀리에 만들어 신부가 결혼할 때 새 집에 가지고 간다. 하지만 아이를 세 명 낳고 나면 이 인형은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일부러 없애 버린다. 세 명을 낳고 난 뒤의 다산 인형은 나쁜 기운을 가져온다는 믿음에서다.
은데벨레 부족의 구슬 인형 중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작고 단순하게 만들어진 인형이 '상고마(sangoma)' 인형이다. 은데벨레 족의 사제이자 의사, 치유자 역할을 하는 상고마는 조상들의 영혼과 교류하며 부족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에 사회적으로 큰 신망을 얻었다.
카메룬 남지(Namji)족의 목각 인형인 남지 인형은 현대적인 조형미가 돋보인다. 목공예 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남지 족은 아프리카산 자단(紫檀:rosewood)으로 인형을 섬세하게 조각한 뒤 비즈로 몸통을 장식하고 개오지 조개껍질이나 가죽, 철사 조각 등 다양한 재료로 장식을 덧붙여 완성한다. 장식된 구슬의 기하학적 배열과 절제된 얼굴 모양과 절제된 색상의 사용이 특징이다.
남지 인형은 아프리카의 다른 많은 인형처럼 다산을 기원하는 부적처럼 쓰였다. 여성들은 이 인형을 진짜 아이처럼 소중히 다루어 등에 업거나 안고 다녔다. 흥미롭게도 어느 때부터인가 남자아이용 인형이 만들어지면서 남성미를 강하게 내뿜는 형태로 발전했다. 남성성의 강조 역시 다산을 기원하게 되어 남녀 공용의 다산인형이 되었다.
요루바 왕국(지금의 나이지리아)에는 '아이리 이베이지(Ere Ibeji-쌍둥이 성상(聖像))'이라는 이름의 쌍둥이 인형이 있다. 요루바에서는 1000명 중 45~50명의 비율로 쌍둥이가 많이 태어났는데 이렇게 태어난 쌍둥이들이 어릴 적에 일찍 죽는 경우가 많아 이들의 넋을 달래고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형이다.
이베이지 인형의 기원은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다. 옛날 쌍둥이를 먹이고 키우기 버거웠던 가난한 부모들이 아이를 유기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부잣집에서 태어난 쌍둥이들이 죽기 시작했고 공동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제에게 물었더니 가난한 집에서 유기해 죽음에 이른 쌍둥이들 때문에 요루바 천둥, 번개, 폭풍의 신 샹고(Shango)가 노여워했다는 것이다. 사제는 공동체 사람들에게 죽은 쌍둥이의 엄마들은 쌍둥이의 혼이 담긴 목각의 이베이지 인형을 진짜 아이처럼 먹이고 입히며 보살필 것은 물론 인형 앞에서 5일에 한 번씩 춤을 춰야 한다는 신탁을 전했다.
이베이지 인형은 죽은 쌍둥이를 기리며 만들기에 죽은 쌍둥이가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인형의 성별이 정해진다. 하지만 죽은 아이의 모습이 아닌 성인의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형상도 요루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만들어진다. 머리는 위로 갈수록 뾰족하며 머리카락은 정교하게 조각되고 눈은 동그랗다. 얼굴 모양도 갸름하게 만든다. 쌍둥이 중 한 명이 죽으면 그 한 명의 인형을 만들고 두 명이 죽으면 두 명의 인형을 모두 만든다.
이베이지 인형을 돌보던 엄마가 죽게 되면 이 인형들은 엄마와 함께 묻히거나 이들을 보살펴줄 다른 사람에게 전해진다. 과거 이 지역에서 돈으로 통용되던 개오지 조개껍질 케이프를 둘러 장식하기도 한다.
브루키나 파소의 모시족은 여자아이들에게 '비가(biiga)'라는 독특한 모양의 인형을 줘서 어릴 때부터 가지고 놀게 한다. '비가'라는 이름은 '어린이'라는 뜻이지만 인형은 여자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비가는 아래쪽이 더 넓고 위로 갈수록 조금씩 좁아지는 긴 형태의 목각인형이다. 긴 몸체는 단순하지만 얼굴과 머리 모양은 꽤 정교하게 표현되고 가슴 부분이 강조된다. 다산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여자 아이들은 이 인형을 가지고 다니면서 진짜 아이를 돌보듯 먹이고 업고 다닌다.
여자 아이가 자신의 비가를 어른들에게 보여주면 "신이 네게 많은 아이들을 보내주실 거야"라는 덕담을 건넨다. 축제기간이면 어른들은 비가를 보여주며 잡아보게 해주는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부는 풍습도 있다. 모시족은 비가를 이용해 태어날 아이의 성별을 점치기도 하고 아이를 임신한 다음에는 초유의 첫 방울을 비가에게 주고 신생아를 업기 전에 비가부터 등에 업는다. 새로 태어날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식인 셈이다.
결혼 후 몇 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을 때는 비가에 개우지 조개껍질을 입혀서 데리고 다니며 아이 갖기를 원하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아프리카의 많은 인형이 다산에 대한 기원을 담고 있는 데 반해 사람들의 죽음을 기리는 경우도 있다. 콩고 민주공화국의 니옴보(niombo)는 장례식을 위한 인형이다. 두꺼운 천으로 만들어진 니옴보는 팔과 다리, 표정 등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상태임을 보여주는데 이는 죽은 이의 마지막 인사, 혹은 자신을 죽게 한 사람을 향한 몸짓을 그대로 옮겨 만든 것이라고 한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나타낼수록 더 두껍고 큰 천을 이용해 만들었다.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며 조상에게 기원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을 다할 때 그의 마지막 모습을 기리며 기억하는 아프리카의 문화는 그대로 인형에 투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