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좋은 나무와 흙이 풍부했던 독일은 이 천혜의 조건을 갖춘 데다 인형에 대한 애정과 뛰어난 기술이 더해져 18세기 이후 명실상부한 유럽 최고의 인형 국가가 된다.
18세기까지만 해도 독일을 대표하던 인형은 목각 인형이었다. 나무는 오래전부터 간단한 사람 모양의 인형으로 만들기 좋은 재료였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페그 우든(Peg Wooden:나무를 서로 연결해 만듦) 인형이 등장했다. 유럽에서의 많은 목각 인형들은 전문적인 인형 제작가보다 농사를 짓거나 다른 일을 가진 사람들이 추운 겨울 동안 소일 삼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았다. 초기의 페그 우든 인형은 팔과 몸체가 연결되어 구부릴 수 있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팔이 몸을 통해 일렬로 연결돼 한쪽 팔이 움직이면 다른 쪽 팔도 같이 움직였지만 점차 팔이 각각 따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1800년대에 들어서는 파피에 마세(Papier Marché:종이 펄프에 아교, 석회 등 다른 재료를 섞어 형틀에 눌러 열을 가해 모양을 만드는 방법) 기법의 인형이 각광받았다. 적은 비용으로 꽤 섬세한 모양을 만들 수 있었다. 파피에 마세 기법은 처음에는 나무 몸체 인형에 얼굴을 표현하는 용도로만 쓰였지만 점차 인형의 몸체로도 쓰였다.
나무에 비해 쉽게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었고 그렇게 모양을 만든 뒤 물감을 이용해 색을 칠해주고 마감을 하면 깔끔한 모양이 되었기에 많은 인형 제작자들이 선호했다. 파피에 마세를 이용한 인형을 만들 때에 이미
어깨까지 있는 인형머리가 나와 헝겊이나 나무 몸체와 연결하기도 했다.
파피에 마세 기법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발달했지만 특히 독일 인형의 발달이 두드러졌다. 독일에서도 튀링겐( Thüringen) 주의 존네베르크(Sonneberg)와 바이에른(Bayern) 주의 뉘른베르크(Nuremberg)에서 오랫동안 인형이 발달했다.
초기의 파피에 마세 인형은 머리카락도 파피에 마세로 모양을 낸 뒤 색을 칠해 구분했지만 점차 머리카락을 따로 만들어 붙였다. 19세기 존네베르크에서 많은 파피에 마세 인형을 만들어 냈고 독일의 쿠노 운트 오토 드레젤(Cuno & Otto Dressel)이라는 회사에서는 1875년 '목재 펄프'라는 뜻을 지닌 독일어 '홀츠 마세(Holz Masse)'를 파피에 마세 인형의 상표로 등록했다.
독일에서는 파피에 마세 이후 다양한 복합 재료를 이용해 인형을 만들어 낸다. 복합 재료로 만든 인형 위에 밀랍을 부어 외적인 완성도를 높이면서도 비용이 많이 들지 않도록 하는데 주력한다. 옷이나 머리카락의 표현에도 더 섬세하게 공을 기울인다.
18세기는 인형사적으로 중요한 재료가 등장한다. 바로 자기, 포슬린(porcelain)이다. 중국의 도자기에 매료되었던 유럽인들은 그 비밀을 좇던 중 18세기 초 마이센(Meissen)에서 자기를 만들기에 적당한 점토를 발견해 유럽 최초의 자기 공장을 세운다. 자기는 원래 식기류의 주 재료였다. 하지만 19세기가 시작되면서 바로 이 포슬린으로 인형 머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1830년대 독일에서 최초의 포슬린 인형이 등장한다. 머리카락까지 틀에 넣어서 만들어진 초기의 포슬린 인형은 유약을 많이 발라서 광택이 났다. 고급스러운 포슬린 재질에 머리카락과 얼굴은 채색되었고 포슬린은 어깨가 있는 머리로 만들어 천으로 만들어진 몸체와 결합시켰다. 유럽 최초의 포슬린 인형은 패션의 표현에 신경 썼다. 당대 유행하는 트렌드를 반영해 만들어졌다.
포슬린 인형의 얼굴형은 점점 정교해지고 머리카락의 표현도 섬세해졌다. 처음에는 단발처럼 보이는 길이에 약간의 웨이브만 살려주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앞 가르마며 머리 윗부분 장식을 표현해주고 어깨까지 오는 자연스러운 길이에 웨이브나 올림머리 부분을 자세히 표현했다. 1860년대에는 머리에 씌운 망 장식까지 표현해 내는 등 포슬린 인형의 표현 영역이 다양해졌다. 처음에는 천으로 되어 있던 아래팔 부분과 종아리가 있는 다리 부분은 포슬린 재질로 대체되고 인형이 앉을 수 있도록 허리와 엉덩이에 굴곡을 주었다.
1860년대 들어서는 광택이 없는 포슬린, 나중에 '파리안(Parian)'이라고 불리는 포슬린 인형이 등장한다. 이 새 포슬린이 마치 하얀 파리안 대리석 같은 질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고급스러운 느낌을 내는 만큼 가격도 비쌌다.
19세기에는 비스크가 등장한다. 비스크는 포슬린 중에서도 가마에서 2번 이상 구워 피부에 색조를 더한 매트한 느낌의 포슬린을 일컫는다. 비스크 인형은 광택이 있지만 유광 포슬린 인형처럼 번쩍이는 광택이 아니라 은은한 그 자체의 광택이 고급스러움을 한껏 살려줘 20세기까지 가장 사랑받았던 인형이다.
포슬린 재료가 이렇게 다양하게 발달하면서 독일 인형의 발전은 정점을 향해 간다. 포슬린이나 비스크 인형은 고온을 견뎌내는 흙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독일 튀링겐 주에 이 흙이 많아서 독일은 포슬린과 비스크 인형이 발전하는 데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 이 당시 대부분의 비스크 인형의 머리는 튀링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스크 인형이 발달한 프랑스에서도 튀링겐의 인형 머리를 많이 수입했다.
초창기의 비스크 인형은 얼굴 전체가 틀에서 만들어졌고 입은 앙다문 모양이었지만 나중에는 구슬 눈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이도 넣을 수 있도록 만들어 실제 사람에 가깝게 만들어졌다.
독일의 주요 도자기 생산지였던 튀링겐에서 본격적으로 포슬린 인형을 만드는 회사들이 생겨났다. 1869년에 탄생한 시몬 앤 할빅(Simon and Halbig)사는 독일에서도 우수한 품질의 비스크 인형을 만들며 명성을 누렸다. 시몬 앤 할빅사는 깊은 표정의 눈과 때로는 벌리고 때로는 다문 입술, 그리고 귀걸이를 착용할 수 있도록 뚫린 귀에 손톱 모양이 다 드러나는 정교한 손 등을 표현해 내며 인형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1886년에 튀링겐 주에 세워진 카머 운트 라인하르트(Kämmer & Reinhardt)사는 당시 다른 비스크 인형들이 이상적인 아름다움, 혹은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얼굴 모양이었던 것과는 차별화해 1909년 실제 사람의 얼굴을 그대로 만든 '캐릭터 인형'을 상표로 등록했다. 동양 사람과 아프리카 사람, 아메리카 원주민의 캐릭터도 그대로 가져와 실감 나게 만들었다.
러시아에서 독일의 튀링겐 주로 이주해 온 아르망 마르세유(Armand Marseille)는 튀링겐에서 한창 발전하던 인형 산업에 흥미를 느끼고 1885년 한 포슬린 회사를 인수해 1890년부터 비스트 인형 머리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살짝 벌어진 입술에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아름다운 미소를 날리는 아르망 마르세유의 인형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성장했다. 아르망 마르세유는 1920년대 <마이 드림 베이비(My Dream Baby)>라는 인형으로 또 한 번 유명세를 타게 된다.
J.D. 케스트너(Kestner)사는 1805년 설립돼 나무 인형을 만들어 오다가 1890년 비스크 인형을 만들게 된다.
훌륭한 비스크 인형 머리를 만들어 수출해 오던 케스트너사는 한창 유행하는 옷차림을 선보이는 베티(Betty) 인형을 내놓으며 미국 보스턴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베티는 지금까지의 인형들이 선보였던 드레스 차림에 더해 현대식 옷차림과 소품을 그대로 몸에 지녔다. 빗과 지갑, 심지어 트럼프 카드까지 지녔으며 구두나 모자의 디테일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미국 만화가 로즈 오닐(Rose O'Neil)의 만화에 큐피드로 나왔던 큐피도 독일 케스트너 사에서 비스크 인형으로 대량 생산했다.
비스크 인형이 유행하던 1850~1920년대 사이에 독일에서는 전체가 비스크로 된 작은 사이즈의 나체 인형을 만들었는데 이 인형은 특별히 미국에서 '프로즌 샬롯(Frozen Charlotte:얼어 죽은 샬롯)'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새하얀 몸에 무뚝뚝한 표정이 당시 미국의 포크 발라드 '어린 샬롯(Young Charlotte)'의 주인공 샬롯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 발라드 속의 어린 샬롯은 추운 겨울날, 옷을 따뜻하게 입고 나가라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얇게 입고 나갔다가 얼어 죽은 사연이 있다. 샬롯의 남자 친구 이름이 찰리(Charlie)여서 독일의 작은 남자 포슬린 인형에는 '프로즌 찰리'라고 이름 붙였다.
유럽 포슬린, 비스크 인형 역사에서 독일은 그 풍부하고도 질 좋은 흙으로 훌륭한 인형을 만들어 내며 인형 산업의 절정기를 맞았다. 하지만 귀하고 비싼 인형이 많아지자 오히려 값싸고도 친근한 인형을 찾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잇따른 1, 2차 세계 대전으로 독일의 인형 산업은 서서히 저물었다. 전쟁으로 독일에서 비스크 인형이 만들어지지 못하자 다른 나라의 비스크 인형 고객들은 독일 대신 만들어지는 인형들에 눈을 돌렸다.
1,2차 세계 대전 사이에 비싸지 않으면서도 깜찍한 비스크 인형들도 만들어졌다. 비스크 인형 본연의 화려한 옷차림이나 고급스러운 얼굴은 아니지만 귀엽거나 깜찍한 사이즈에 웃음을 띈 얼굴로 사람들에게 어필했다. 독일 대신 일본이나 영국에서 비스크 인형들이 만들어졌고 큐피 인형도 미국에서 직접 만들어졌다.
1860년대 미국에서 셀룰로이드가 등장했다. 뼈나 아이보리, 대리석 등 자연의 많은 단단한 재료들을 대체하던 셀룰로이드는 19세기 말부터 인형의 재료로 쓰였고 20세기 초반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셀룰로이드 인형을 앞다투어 만들었다. 독일의 J.D. 케스트너 사나 프랑스의 프티콜랭 사도 셀룰로이드 인형을 만들었다. 독일의 라인 구미(Rheinische Gummi)사가 많은 셀룰로이드 인형을 만들었다. 라인 구미 사의 셀룰로이드 인형은 품질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됐다. 이후 라인 구미 사는 '쉴트크로트-슈필바렌(Schildkröt-Spielwaren)'으로 이름을 바꿔 플라스틱 소재 인형들을 생산해오고 있다.
가벼운 데다 장식이나 변형을 하기 쉬웠던 셀룰로이드는 그러나 얼굴 잘 지워지는 치명적 단점을 가지고 있었고 뒤이어 발명된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대체됐다.
1877년 만들어진 슈타이프(Steiff)사는 펠트 인형을 만들어 왔으며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연관된 인형
테디 베어(Teddy Bear)로 유명하다. 슈타이프 사의 인형은 테디 베어 외에도 친근하고 푸근한 사람들의
표정을 담고 있다. 특히 인형 들의 왼쪽 귀에 있는 단추는 슈타이프 인형의 독특한 트레이드 마크다.
지금도 독일에서는 훌륭한 품질의 인형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세계 대전 이전만큼의 명성을 얻지는 못한다. 전쟁은 독일 대신 인형을 생산해 줄 나라들에 눈을 돌리게 했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본 인형이 크게 발전했다.
그리고 그전까지는 유럽의 인형을 소비하는데 주력했던 미국에서 인형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비스크 인형의 영화는 전쟁과 함께 사그라들었지만 전쟁 이후 독일의 대표적인 인형이 또 하나 등장했으니 바로 호두까기 인형(Nutcracker Doll)이다. 호두까기 인형은 독일 에르츠 산맥(Erzgebirge)의 자이펜(Seiffen)이라는 지역에서 17세기 말부터 만들어 왔다. 탄광지역이던 이곳 사람들이 부업 삼아 만들다가 탄광이 사양 산업이 되자 디자인을 새로 하고 본격적으로 제작에 나섰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 중 이곳에 들른 미국 군인들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되어 현재는 크리스마스에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형이 되었다. 호두까기 인형 특유의 무서운 표정은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는 믿음이 있다.
비록 지금은 예전같은 전성기를 누리지 못하지만 한때 독일에서 무수히 많이 만들어냈던 포슬린과 비스크 인형은 지금도 인형 수집가들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