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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Dec 06. 2020

그 때,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감정일기 쓰는방법

A  하아… 정말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어요.
 B  그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A  화가 났어요.
 B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A  그놈이 그따위로 나오는데 화가 안 날 수가 있어야죠!



실제 대화에서는 여기에 몇 마디가 더 보태지기도 하지만 감정을 묻고 답하는 대화의 패턴은 거의 이와 비슷하게 시작된다. A가 생각을 묻는 말에 B는‘화’라는 감정 단어로 대답하고, A가 다시 생각을 묻자 B는 ‘그놈의 그따위 행동’ 이라는 사건으로 돌아갔다. 생각과 감정, 행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경험이 구성되는데 이 때 우리 뇌는 매번 생각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생각의 틀'을 만든다. 일종의 예측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모든 상황을 거기에 대입하여 편리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자동적 사고’라고 부른다. 


덕분에 복잡한 ‘생각’은 건너뛰고 바로 ‘감정’반응으로 넘어가더라도 자신은 합리적으로 판단했다고 믿게 된다. 겉보기에 꽤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예측 시스템은 부정적인 상황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편견과 인지 왜곡을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이것을 수정하면 이 예측 시스템이 오작동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지 치료'의 기본원리다. 그러나 기본원리를 아는 것만으로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번 단락에서는 이제껏 하나로 뭉쳐져있던 ‘감정’과 ‘생각’을 의식적으로 분해하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사실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앞서 감정을 털어놓았던 과정만큼이나 어렵다.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괜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이 생기면 쓸데없이 괴로운 일이 확실히 줄어든다. 감정과 생각을 분리하는 연습이 반복되면 생각 습관을 재구성할 수 있다. 코치나 상담사의 도움을 받아 이 과정을 구체화하거나 ‘감정일기’를 쓰는 것도 좋은 연습이 된다. 다음 단락에는 간단한 사례와 함께 ‘감정일기’를 쓰는 방법을 함께 적었다. 먼저 다음의 두 사건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의 변화를 살펴보자.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S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약속 시간에 늦는 법이 없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이 신뢰의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거래처 K부장은 제대로 시간을 지키는 일이 없다. 미팅 직전에 전화로 약속 시간을 늦춘 것이 이번으로 벌써 세 번째다. 수화기 너머로 정신없이 울리는 깜빡이 경고음과 함께 통보하듯 약속 시간을 30분이나 미뤘다. K는 도착하자마자 머쓱하게 한 번 웃고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S는 이렇게 무시당하면서까지 이 업체와 계속 거래를 해야 할지를 고민하느라 꽤 괜찮은 그의 제안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예상보다 늦게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했지만, S는 다음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금 손해 보는 선에서 타협하기로 했다.


아쉬운 거래를 뒤로하고 헐레벌떡 약속장소에 도착한 시각이 5시 55분. 다행히 여자친구와의 약속시간 5분 전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신호음이 몇번 울리더니 그대로 전화가 끊겼다. S의 여자친구는 프리랜서 작가다. 항상 밤샘 작업을 하다 보니 밤낮이 바뀌어 이른 시간에 약속을 잡으면 종종 늦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자느라 알람을 못 들었다는 것을 보면 역시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걸려온 전화의 수화기 너머로 우당탕 물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S는 자기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허둥지둥 머리손질을 하고 있을 귀여운 여자친구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30분쯤 지나서 약속장소에 도착한 여자친구는 미안해서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그 모습을 보니 안쓰러워 앞으로는 더 잘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S에게 같은 날 두 가지 사건이 벌어졌다. 비슷한 상황이지만 그의 감정과 행동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K와의 미팅에서 객관적인 사실은 ‘그가 늦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S는 이러한 사실에 생각을 더한다. 실제로 갑의 위치에 있는 K가 매번 늦는 것은 그가 자신을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화가 나서 감정적으로 대화를 이어갔고 결국은 만족스러운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이처럼 감정에 영향을 끼쳐 행동하게 만드는 것은 상황 자체가 아닌 상황에 대한 해석이다. 달리 말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어서 부정적인 감정과 행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흔히 말하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조언이 ‘인지치료’의 쉬운 말 버전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건에서 감정으로 가는 기본 통로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앞서 말한 ‘자동적 사고’인데, 매번 다른 일로 화가 나는 것 같지만 그 감정을 들여다보면 같은 생각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무시당할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기본값으로 세팅되어 있다면 그 기본값을 수정하는 것이 먼저다. 잘못된 기본값으로 계속 결과물을 산출하다 보면 생각 시스템이 굳어져 나중에는 정말로 수정하기가 어려워진다. 막연하게 자존감을 키우라고 조언 하려는 것이 아니다. 좋게 좋게 생각하라고 부추기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사건의 해석이 ‘자동적 사고’를 거쳐 부정적인 감정으로 흐르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감정’에서 ‘생각’을 분리해내려는 시도만으로도 화가 나고 억울한 일이 줄어든다. 정리하면, S의 입장에서 K와의 미팅은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진행되었다.

 

사실  :  그가 늦었다.

생각  :  그가 나를 무시했다고 생각했다. (사실에 대한 자의적 '해석')

감정  :  화가 났다.

행동  :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결과  :  거래가 잘 성사되지 않았다.



이 기본 뼈대에 살을 붙여서 쓰면 '감정일기'가 된다. 마지막에 행동과 결과를 함께 적으면 다음번에 비슷한 경우를 만났을 때 결과를 예측하고 훨씬 이성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만일 같은 행동을 반복하더라도 실망할 것은 없다. 이렇게 생각을 짚어보는 이유는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아니다. 다음번에는 자동사고에 조종당하지 않고 일단 생각을 멈추는 것으로 충분하다. 일단 멈추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고 부정적인 생각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감정의 흐름을 바로잡아 자신이 원래 가려던 방향대로 움직일 수 있다


감정은 자신이 원하는 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대가 충족되었을 때와 기대가 무너졌을 때 우리는 정반대의 감정을 느낀다. 


<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느낌 >

벅찬, 편안한, 당당한, 열정적인, 활기찬, 충만한, 기쁜, 기대에 부푼, 생기가 도는, 짜릿한, 즐거운 , 뭉클한, 낙천적인, 자랑스러운, 홀가분한, 흥분되는, 놀라운, 감사한, 정겨운, 안심이 되는


<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의 느낌>

짜증 나는, 염려스러운, 혼란스러운, 실망스러운, 낙담한,  당황한, 창피한, 좌절스러운, 막막한, 당황한, 창피한, 좌절스러운, 막막한, 무기력한, 초조한, 성가신, 외로운, 긴장한, 숨 막히는, 어쩔 줄 모르는, 떨떠름한, 슬픈, 불편한

출처 : 마셜 로젠버그의 ‘NVC,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마셜 로젠버그 Marshall B. Rosenburg는 그의 저서 ‘NVC,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에서 감정을 일으키는 서로의 욕구를 알아차림으로써 진정한 유대감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무너진 기대감이나 욕구를 알아차리면 신기하게도 분노가 사그라든다. 화가 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면 이내 누그러들기도 하는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면 욕구불만으로 터져나오려던 화가 잠잠해지기도 한다. 비폭력 대화에서는 내면의 욕구를 살피기 전에 상황을 평가하거나 분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술하도록 하는데, 이 과정이 감정과 생각을 분리하는 연습에 매우 도움이 된다. 위의 사례를 여기에 대입해보면 다음과 같다.


(판단)X “(한참 늦어놓고 전화로 통보하다니 나를 완전히 무시하는군.) 아..괜찮아요..”

(상황)O “약속시각 10분이 지났어요.“ 


여기 화가 났을 때 단호하게 말하는 기술이 숨어있다. 무시했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서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렵고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다보니 ‘괜찮아요’ 를 남발하게 된다. 반면 판단을 빼고 객관적인 상황을 설명하면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도 단호하게 문제상황을 지적할 수 있다. 상황을 설명할 때는 마치 비디오 판독을 하듯 눈으로 확인이 가능한 사실인지를 생각해보면 도움이 된다. 화 내는 기술은 자신이 겪은 불편함을 상대방에게 감정적으로 퍼붓거나 비아냥거리며 상대의 속을 뒤집는 기술이 아니다. 소위 ‘할말 다 하는 사람’은 무턱대고 큰소리 치지 않는다.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 문제상황을 먼저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설명하여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쐐기를 박는다. 


비폭력대화(NVC, Nonviolent Communication) 4단계 

관찰 :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

느낌 : 관찰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표현

욕구 : 느낌을 만드는 내면의 욕구 표현

부탁 : 원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부탁


‘비폭력 대화’에서 자신의 감정을 생각과 분리하는 것만큼 어려운 부분이 4단계 ‘부탁’이다. 항상 남을 배려하는 데 익숙한 사람은 무엇인가를 요청하는 것이 특히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먼저 말을 꺼내기가 불편해서 마지막 ‘부탁’단계에 오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먼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영영 모른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일방적으로 맞춰주다가 혼자 실망하기보다는 원하는 것을 제대로 표현하며 상대방과 서로 의견을 나누는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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