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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Mar 08. 2021

가스라이팅

나르시시스트의 가스라이팅 ( 팬트하우스 하은별, 천서진의 가스라이팅 )

오래전 나르시시스트의 '가스라이팅'에 관해 쓴 글에 사례와 근거를 더했습니다.
이전의 글에 이어지는 내용이어서 이전 글을 앞부분에 짤막하게 붙여넣었습니다. 이미 들러서 읽어주신 작가님들께는 미리 양해 말씀을 드려요~ 항상 감사합니다.


가스라이팅, Gas-lighting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의 우월감을 충족시키려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만들기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당신을 위해서’라는 말로 상대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거나 상대방의 사소한 실수를 과장해서 피해자 역할을 자청하기도 한다. 상대방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서 상대방을 자신의 의도대로 조종하려는 행동을 ‘가스라이팅gas-lighting’ 이라고 한다.



이 용어는 가스등(gaslight, 1938)이라는 연극에서 유래했다.

지금은 집집마다 전기가 들어오지만 연극이 제작되던 당시에는 가스를 사용하여 전등을 켰다. 가스공급이 불안정하면 한쪽에서 가스등을 켤때 다른 쪽 불빛이 어두워지는데, 연극에서 남편이 아내를 속여 재산을 가로채려고할 때 깜박거리는 가스등이 중요한 소재로 쓰인다.

남편이 집안의 귀중품을 뒤지느라 다른 방에서 전등을 켜면 집안이 어두워지는데, 이 때 아내가 남편에게 방이 갑자기 어두워진 것 같다고 말하면 남편은 아내가 예민해졌다며 아내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세운다. 이후로도 보석을 잃어버리거나 집안의 귀한 물건이 없어지는 등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지만 아내는 그때마다 남편이 아닌 자신을 의심하며 오히려 남편에게 더욱 의존하게 된다.



일련의 사건들은 천천히 진행되어 아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남편에게 길들여진다. 연극을 보는 사람은 쉽게 알아차릴만큼 뻔한 상황이지만 정작 주인공은 남편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한다. 그런데 연극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누군가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어머, 내가 그럴 리 없잖아. 당신이 오해했겠지.”
“당신도 알지? 당신 성격이 좀 예민해.”



이런 말을 들으면 한두 번은 그냥 넘어갈 수 있어도 자꾸 반복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때로는 아무런 의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때, 친밀한 관계에 있는 상대방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불합리한 말에도 일단 수긍하게 되고 이런 식으로 잘못을 떠안는 상황에 서서히 익숙해지는 것이다.



A :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무슨 소리야?

B : 어? 잘못 들었나? 아닌데…분명히 들었는데…

A : ...

B : 미안해.


A : 어머, 내가 그럴 리 없잖아. 당신이 오해했겠지. 요즘 왜 그래?

B : 그래, 우리 사이에 그럴 리 없지…내가 이상한 건가?

A : ...

B : 미안해.


A : 당신 요즘 좀 예민해. 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아! 나 정말 힘들어.

B : 그렇지… 내가 좀 예민한 편이지...

A : ...

B : 미안해.



이처럼  매번 어느 한 쪽에서 불편한 상황을 책임져야 하는 관계는 옆에서 부추기지 않아도 언젠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남아서 결국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가스라이팅의 대상은 사랑하는 배우자일 수도 있고 자녀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식스센스급의 반전이 있다. 영화<식스센스>에서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등장하는데 초반에 이들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지내면서 자신이 죽은 줄 모르고 오히려 사람들을 두려워 한다. 마찬가지로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들도 의존적인 자녀와 집착하는 배우자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하지만 정작 상대방을 그렇게 만든 것은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쪽에서는 상대방의 죄책감을 이용하고 다른 한 쪽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감정을 억지로 참아내면서 서로가 정서적인 폭력을 버티는 동안 잘못된 방법으로 서로에게 길들여진다. 그리고 습관적인 관계는 몸에 배어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당신이 그렇게 행동하면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예민한 나르시시스트는 누구나 조금씩은 그렇다는 것을 안다. 남들의 시선을 이용하면 상대방의 불안을 자극해서 원하는 행동을 빠르게 유도할 수 있지만 상대방이 느낀 불편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타인의 시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기를 반복하다보면 평소에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반대로 자신을 방어하기위해 사람들을 공격적으로 대하게된다. 이런 결과를 의도했건 아니건 가스라이팅이 위험한 진짜 이유는 상대방이 자기 자신을 불신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이런 관계에서는 상대방에게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지만 이 때 상대방과 자신을 동시에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원인을 찾고 문제점을 개선하기가 어렵다.  


가스라이팅이 항상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불안을 자극하는 것이 통하지 않을 때는 동정심이나 죄책감을 유발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꾸기도 한다. 사소한 일로 다툰 뒤에 대화로 해결하기보다는 피해자인 상태로 남아있으려고 하거나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과장하여 과한 요구를 할 때도 있다. 위 사례들을 얼핏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확실해 보인다. 그래서 누군가 당신에게 이런 사연을 털어놓는다면 당장 불편한 관계를 정리하고 좋은 상대를 찾아 떠나라고 말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불편한 관계에서 빨리 빠져나오라고 조언하고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관계에서 상처’받는’ 쪽이라는 점이다. ‘저는 그런 사람이 절대 아닌데요.’라는 하소연으로 시작하는 이메일과 댓글들을 읽다보면 가끔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고 단정지으며 관계를 포기해 버리거나, ‘그런 부류의 인간과는 관계를 끝내버리라’는 통쾌한 조언으로 대리만족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순간의 통쾌함으로 관계가 개선되거나 불편한 관계를 손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때, 자신도 한 때 누군가에게는 상처주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상대방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불편한 상황에서 무조건 상대방을 탓하는 것은 관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큰 맘 먹고 능동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마음먹을 때 그 관계는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의지를 갖고 노력하는 것, 그게 전부다. 여기서 ‘노력’과 ‘의지’는 일방적으로 참고 버티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어지는 단락에서는 관계를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적었다.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설령 본성은 변하지 않더라도 관계 속에서의 ‘그 사람’은 한 순간에 변하기도 한다.



그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그리고 그사람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하여.



현대 심리역동과 정신분석이론에서 영향력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코헛 Heinz Kohut의 자기심리학 self psychology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감이 발달한다고 본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심각한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사람도 가까운 사람의 정서적 지지를 통해 충분히 회복 될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약점과 직면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나르시시스트에게 변화의 계기를 만드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관계를 더이상 악화시키지 않고 그가 스스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돕는다면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물론 그의 삶이 변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다음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함께 고민한다면 관계를 개선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의견에 무조건 동조하거나, 그가 비난하는 상대를 함께 비난하지 않기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의견에 무조건 따라주면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 자신의 의견에 따르는 상황에 만족하며 관계의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게다가 누군가를 비난하는 말에 맞장구 치다보면 마음이 불편한데다가 함께 험담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약점으로 작용하기 쉽다. 한 번 편을 들어주기 시작하면 벗어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나르시시스트의 의견에 무조건 동조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둘째, 의견에 곧바로 반박하거나, 그가 비난하는 상대를 면전에서 두둔하지 않기


의견에 단호하게 맞서면 그들은 자신이 비난받았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 동안 항상 의견에 동조해 왔다면 그들은 상대방을 다시 자기편으로 만들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단지 관심을 독차지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에 대한 주도권을 갖고싶어한다. 관심이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을 주변으로부터 고립시키기위해 상황을 과장하여 다른 사람을 험담하거나 거짓을 꾸며내기도 한다. 나르시시스트를 인내심있게 지켜보는동안 자신과 자신의 주변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이 함께 필요한 이유다.


셋째, 잘못을 직접적으로 지적하지 않기


피해자의 모습으로 둔갑할 타이밍을 기다리는 나르시시스트에게 자리를 내주기 좋은 행동이다. 그들은 문제점이 드러나면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오히려 자기합리화에 열을 올린다. 이들에게 선의로 조언을 했다가는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늘어놓는 궤변을 듣다가 엉뚱하게 사과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상황이라면 잘못을 곧바로 지적하기 보다는 넌지시 알리거나 사실만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읽고 쓰는 편의를 위해 나르시시스트라고 표현했지만 여기있는 모든 증상이 질병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원하고 우리 삶에는 항상 식스센스급의 반전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돌아볼 충분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갈등을 피하려고 사랑과 돌봄을 핑계로 상대방을 감싸면서 그의 나르시시즘을 부추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로 인해 자신의 마음까지도 병드는 것을 알아차리지못했다면 관계를 개선하기는커녕 자기자신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그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도 스스로를 지키면서 그가 자신을 바로 보도록 돕는 것이다.


단락을 마무리하기 전에 한가지 덧붙이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만일 자신이 나르시시스트는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다면 정말로 안심해도 좋다. 몇 마디 말로 자신을 돌아보았다면 오히려 자아성찰이 뛰어난 쪽에 가까울테니 말이다. 반대로 내내 악성 나르시시스트들만 떠올랐다면 어쩌면 지금이 바로, 당신이 식스센스를 발휘해야 하는 때인지도 모른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주요 임상증상(DSM-5)에 기술된 내용을 참고하여 세가지 키워드를 남기는 것으로 이번 단락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는 상대방을 인정하는 마음에서 시작되고,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수용하여 스스로 변화하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을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부끄럽게 여기면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 자기자신에게만 몰두하는 내 안의 나르시스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인정하고 공감하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고 관계가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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