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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Mar 17. 2021

공감력을 키우는 가장 안전한 방법

https://brunch.co.kr/@jinon/80

이어 씁니다.



문학 소설을 읽는 것이 공감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사이언스지에 발표되어 크게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Reading Literary Fiction Improves Theory of Mind(2013). 실험 참가자를 세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대중소설과 문학 소설, 논픽션을 읽게 하고 인지적 공감 능력을 측정했더니 문학 소설을 읽은 그룹에서 공감 능력이 현저히 높아진 것을 발견한 것이다. 연구진이 밝힌 공감력 향상의 핵심은 ‘인물과 사건의 반전’이었다. 인물의 성격이나 사건의 전개가 예상을 벗어날 때 그것을 유추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인지적 공감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좋은 글을 읽다 보면 독자의 심리를 꿰뚫는 작가의 통찰력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관점을 경험하기도 한다.


다만, 인물을 이해하고 행동을 예측하는 과정이 얼마나 흥미로운가에 따라 효과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수능을 마친 어느 날 나는 언젠가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다 읽고 말겠다던 다짐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처음 고른 책이 괴테의 <파우스트>였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인물 구조도를 그려가며 책장을 넘기던 나를 대견하게 생각하셨지만 정작 나는 마지막 장까지 오기로 버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물의 심리를 알아차리고 반전을 즐기기는커녕 인내심의 한계를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소설을 고를 때는 ‘대체 왜?’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정도가 적당하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주인공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주변 상황을 살펴보고 그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면서 공감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같은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되새기며 이해하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르지만 소설에서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인물과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 소설 <서편제>에는 의붓딸을 ‘한’서린 소리꾼으로 만들기 위해 눈을 멀게 하는 비정한 아버지가 등장한다. 속편 <소리의 빛>에서는 의붓남매가 산골 주막에서 다시 만나지만 둘은 밤새 북 장단에 맞춰 소리판을 벌이고는 그대로 헤어진다. 대체 왜?





고등학교 때 이 소설의 주제가 시험에 출제되었는데 ‘한’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부분점수를 주고, ‘한의 정서’가 들어가면 정답처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서편제=한의 정서’라는 공식을 얼마나 열심히 외웠던지 지금도 <서편제> 하면 ‘한의 정서’가 번뜩 떠오른다. 당시에는 수험생들이 소설을 읽느라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학교 앞 서점에서 소설의 요약본을 팔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인물의 대사와 움직임을 여러 번 곱씹으며 직접 공감하지 않고서는 줄거리를 암기하는 반쪽짜리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주변에는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지만 막상 대화를 나눠보면 벽을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열심히 책을 읽었더라도 새로운 관점에 대한 자극에 무뎌지면 오히려 편향된 생각에 갇혀버리기도 한다. 좋은 책은 깊이 읽고 함께 생각을 나눌수록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소설읽기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연습이 될 것이다. 주변에서 도무지 알 수 없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소설 읽기'로 다져진 '인지적 공감 능력'을 발휘해 보자. 무조건 참고 이해하는 대신 상대방의 생각을 읽고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능력은 문제에 휩쓸리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은 나도 누군가에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한 사람일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 나를 공감하고 이해했듯이 나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행운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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