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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Sep 12. 2021

부장님,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으세요...

공유관계와 교환관계 (1)

 A  :  부장님,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으세요... 흑흑흑...
 
 B  :  ... ... .


자, 이제 마음껏 상상해보자. 지금부터 시나리오 작가가 되어보는 거다.


이곳은 어디인가?

등장인물은 누구인가?

누군가 함께 있다면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가?





야! 이 대리! 너랑 내가 무슨 사인데!!!




<꽃책>을 쓰면서 생각했던대로라면 세상의 모든 관계는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원리는 매 순간 상황에 따라 새롭게 구성된다. 이는 관계 맺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내가 생각하는 관계의 기본 원리는 ‘선한 의도’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선한 의도’가 드러나도록 상황에 맞게 생각을 표현하는 과정이 ‘대화’다.


그래서 제대로 된 대화는 ‘관계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관계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논리적인 말도 설득력을 얻기 어렵고 따듯한 말이 오지랖으로 전락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OO 씨


우리말에서 이름 뒤에 붙는 ‘씨’의 사전적 의미는 ‘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나에게 ‘혜진 씨’라는 호칭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학창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는 ‘꼼지락’이라는 별명으로 통했고 부모님은 나를 ‘진아~’하고 부르셨다. 그래서 가까운 누군가가 나에게 ‘혜진’이라는, 이른바 풀네임을 불러주는 경우는 내게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심지어 나지막하게 부르는 ‘혜진 씨’는 첫 직장에서 나를 무지 괴롭히던 거래처 관리자를 상기시키기 까지 하니, 최소한 내게는 ‘혜진 씨’라는 호칭이 수줍은 커플과 함께 떠오르는 달달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편하게 ‘혜진 씨’라고 부르겠다는 상대 앞에서 나는 예외 없이 거래처 이과장을 떠올리곤 한다.



호칭, 말 그대로 ‘상대를 부르는 말’은 대화를 여는 첫 단추다. 여기에 처음 만나는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강사님

코치님

선생님


이와같이 역할에 따라 상대방을 불러주는 것이다. 이는 관계에서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애매한 상황에서는 ‘제가 어떻게 불러드리면 편하시겠어요?'라고 상대의 의견을 묻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작정 편하게 지내자며 깜빡이도 켜지 않고 들어오는 상대보다는 훨씬 사려 깊게 느껴질 것이다. 


가끔 박력 있게(?) 치고 들어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이에 관해서는 이어지는 장에서 다시 이야기 나누려고 한다.


제가 어떻게 불러드리면 편하시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마다 매번 이렇게 번거로운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관계의 맥락은 대부분 암묵적으로 통한다. ‘내 딸 삼자’고 속절없이 치대는 능구렁이가 아니더라도 조직에서 관계의 맥락을 오해해서 생기는 헤프닝을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마주하곤 한다.


흔히 ‘공과 사를 구별하라’는 말로 돌려 말하는 경우다. 부장님은 부장님으로, 과장님은 과장님으로. 관계의 거리를 이미 정해 두었지만 간혹 그 거리를 착각하면 관계는 미궁속으로 빠진다. 회식 자리에서 편하게 오빠라고 부르라던 거래처 직원은 내 일기장 어딘가에 (조금 과격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x친인간으로 남아있다. “술자리에서는” 형이라고 부르랬더니 시도 때도 없이 치대는 구성원에게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사람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 상사라면 아마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음직 한 일이다.


관계의 맥락이 달라질 때, 우리는 같은 사람과도 다양한 역동을 경험하게 된다. 나 역시 얼굴만 맞대면 으르렁거리던 사수와 한 집에서 한 이불 덮고 12년째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사내커플 노하우를 나누는 자리에서 언젠가 소상히 밝힐 때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관계의 맥락을 넘나드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차장님 회식 자리에서는 딴 사람 같아요."가 아니라 "딴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차장님'과 '형'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는가? 이러한 관계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생길 수 있는 불상사가 바로 위와 같은 상황이다.


야!! 이 대리!!
도대체!!
내가 너랑 무슨 사인데에~!!!


인자하신 부장님이라고 해서 구성원의 잘못을 매번 그냥 눈감아 주거나 무조건 좋은 말로 타이르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평소 친절한 부장님은 세상 물정 모르는 신입사원을 어르고 달래느라 매 순간 '참을 인' 자를 뼛속 깊이 새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조직에서의 인간관계는 어떻게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 이전 글 <자발적 아웃사이더의 탄생> 에서는 ‘공유관계’에서의 관계의 맥락을 간단히 이야기 나눈 바 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지면을 할애하여 ‘교환관계’에서의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려고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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