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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Jan 13. 2019

낙동강 하구 산책 5경

   내가 사는 이 곳은 낙동강 중에서도 하구, 하구 중에서도 바다와 맞닿아 있는 최남단이다. 그래서 왼쪽으로 보면 강이고 오른쪽으로 보면 바다이다. 그러니까 이 바다는 내 기준으로 봤을 때 태평양의 시작점이다.  오랫동안 달려온 강물이 드디어 바다에 도달한 이 감격적인 공간은 과학시간에 배웠던 대로 폭이 넓고 물의 흐름이 느리고 모래가 많이 쌓여있다.  그리고 그 모래 퇴적물이 쌓인 이곳을 매립해서 내가 사는 대단지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내가 이쪽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낙동강에 대해서 관심도 애정도 없었다. 부산의 서쪽을 가로지르는 낙동강은 사실 이름부터 볼품이 없다. 한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처럼 영롱한 발음의 아름다운 이름이면 좋을 텐데, 낙동강은 그 발음이나 의미가 딱히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또 해운대부터 다대포까지 아름다운 바다가 두르고 있는 부산에서 낙동강의 존재감이름처럼 미미하다. 하지만 이 낙동강 하구 하고도 태평양 입구에 살고 있는 나는 이 낙동강 둘레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부산 남단 낙동강 하구 을숙도 주변 3.8km 정도의 산책로이다.) 그 이유를 대략 낙동강 하구 산책 5 경이란 거창한 이름으로 말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낙동강 겨울 산책의 묘미 - 철새 >

   추위 때문에 겨울 산책을 즐기지 않는 내가 요즘처럼 포근한 겨울 날씨가 이어지면 행복한 마음으로 겨울 산책을 나선다.  낙동강 둘레길 산책은 어느 계절이나 다 아름답고 새롭지만 나는 가을과 겨울을 최고로 친다.  그 이유의 9할은 철새이다. 겨울의 낙동강 하구는 철새들의 세상이다. 예전만큼 많이 날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겨울이 되면 부쩍 늘어난 철새들로 산책이 아니라 철새 탐조로 목적이 바뀌기도 한다. 나머지 1할은 찹찹한 공기이다. 춥지 않고 찹찹한 날씨는 다른 계절보다 나의 정신을 더욱 맑게 깨워줘 나의 명상 같은 산책을 도와준다. 또 여기에 도움을 주는 소품이 마스크이다. 무겁고 답답한 모자나 머플러보다는 가벼운 마스크는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지 않아 겨울 산책의 필수품이다. 더구나 삼한사미(3일은 춥고 4일은 미세먼지가 많다.)라는 말처럼 미세먼지가 많은 요즘이니 일석이조라  하겠다.

 <2경. 낙동강 가을 산책의 묘미 - 낙조>

   다른 계절에도 낙동강 낙조는 볼만하지만, 가을의 낙조를 나는 특히 사랑한다. 9월에서 10월 사이에 주로 오후 5시경 해가 지기 시작하는데 이때 산책을 나가면 붉고 노란 저녁노을이 강과 바다의 경계선 위로 끝없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위로 철새가 날아갈 때면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된다. 그러면 나는 산책을 멈추고 우두커니 서서 그 장면을 보게 된다.

 


<3경. 낙동강 여름 산책의 묘미 - 달빛>

  여름이 되면 열대야를 피해 저녁 8시 전후로 많은 사람들이 낙동강변으로 나온다. 그러면 나만의 고요한 명상 같은 산책은 포기해야 하지만,  여름밤은 역시 사람이 붐벼야 제 맛이긴 하다. 사람들 사이를 바쁘게 지나가다 하늘을 문득 쳐다보면 밝은 달 한 조각이 요요한 달빛을 뿜고 있는 걸 보게 된다. 그 달 조각 아래로 시원한 강바람 한 줄기가 내 얼굴을 스치면 여름밤 산책의 멋과 정취가 완성된다.


<4경. 낙동강 봄 산책의 묘미 - 꽃길>

  낙동강변의 봄은 월별로 각양각색의 꽃들이 경쟁하듯이 었다 진다.  3월~4월에는 노란 개나리의 군무를 시작으로, 화려한 왕벚꽃나무가 봄축제 팡파르를 울린다.  벚꽃 아래 쑥 캐는 사람들의 바쁜 손놀림을 보다 보면 나도 어느 순간 쑥 캐는 아낙네가 되어 있다.  그 외에도 무수한 들꽃이 수시로 피었다 지는데, 여름이 시작되는 7월이 되면 부산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 식물인 [부산꼬리풀]의 앙증맞은 보라색 꽃무리를 볼 수 있다.


<5경. 낙동강 방수림 오솔길 산책>

   매일 강변을 보며 걷는 재미가 시들해지면 바로 옆에 나란히 나있는 오솔길로 갈아타면 된다.  해송들과 각종 풀꽃들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흙길을 타박타박 걸으면 어릴 적 소풍 가던 길이 떠오른다.

   혹시 을숙도를 지나갈 일이 있다면 낙동강 하구 산책로에 와 보시길. 하지만 볼거리를 생각한다면 온 길이 멀 수록 실망감이 클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부산 현대미술관과 에코센터를 겸해서 본다면 좋을 것 같다.  부산 현대미술관은 움직임과 소리가 있는 현대적 감각의 작품이 많아 미술을 잘 몰라도 보는 재미가 있다. 에코센터는 을숙도와 철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곳이다.  때마침 배가 고프다면 낙동강에서만 잡힌다는 갈미조개 요리를 근처 식당에서 맛보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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