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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Oct 14. 2018

저녁 강변의 서정, 그리고

 
상큼한 가을이 지배하던 한낮의 낙동강변이 저녁이 되자 알싸한 겨울 전령의 세상이 되었다. 어슴푸레한 강변 하늘의 구름은 몽환의 세상인양 강변 위에 내려앉았고, 벌써 찾아온 것인지 겨울 철새로 보이는 한 떼의 새무리들이 강변의 한 풍경을 이루었다.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불빛은 다른 세상인 듯 오색으로 깜빡이고 손톱달은 해송 사이로 들뜬 표정이었다.

귓가를 나지막하게 울리는 음악 소리도 나의 이런 서정을 북돋우고. '바다는 역시 겨울바다이고, 강변은 역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가을 저녁이야'라고 생각하며 늦가을의 퇴폐적 서정에 한껏 취해 어두워 가는 산책길을 느리게 걷고 있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시나브로 세상은 암연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내가 아까 보았던 서정의 풍경은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추었다.

 방금 전 껏 깃을 세우고 늦가을의 정취를 뽐내던 해송의 잎들은 이제 검은 그림자를 어두운 하늘에 드리우고  들떠 보이던 손톱달도 하늘 높이 올라 괴괴하게 강변을 비추고 있는 것이다.

어둑한 강물에 그 많던 철새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 강의 생기는 찾을 수 없고, 지나다니던 즐거운 표정의 사람들도 그새 줄어 간혹 중년의 아저씨들이 무표정하게 오고 갔다. 서정은 온데간데 없고 처연한 강변의 무게만이 사위를 감쌀 뿐이었다. 나는 결국 적막한 어둠에 몸서리치며 걸음을 재촉해서 어두운 강물과 숲을 벗어나 네온사인을 뿜어내는 요란한 도시의 도로로 나와버렸다.

도시의 불빛은 따스했다.

역시 가을 산책은 낮에 해야 해.

밤 강변의 서정은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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