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들이 지구의 반대편에 있을 때는 유튜브로 그들의 공연을 보며 방구석 1열의 기쁨을 누리는데 만족했었다. 하지만 40분이면 가는 거리에 있는 그들의 공연을 볼 수 없다는 현실에 일주일 전부터 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나는 점점 미쳐가는 중인가 보다.) 내 마음의 요동과 상관없이 공연 첫날 토요일을 평온하게 보낸 우리 가족은 평소와 다름없이 집 근처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우리가 음식을 기다리는 그때, 어떤 모녀가 상기된 표정으로 식당으로 들어왔는데 나는 왠지 그들에게 눈길이 갔다. 그들은 앉자마자 종이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어 보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더욱 고개를 쭉 빼고 그들을 쳐다보았다. 남편은 그제야 나를 보고 말했다.
" 뭘 그렇게 보는데?"
" 저 사람들 거기 갔다 왔나 봐. 좋겠다. 아직 쇼가 끝날 시간은 아닌데, 그냥 근처만 갔다 왔나 봐."
내 말에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일어나 그들에게 가서는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 쪽을 잠깐 쳐다보며 무어라 말을 했다. 나는 부끄러워 얼른 고개를 숙였다. 남편은 자리로 돌아와서 말했다.
"표 없어도 가면 주변에 볼 것도 많고 살 것도 많대. 내일 우리도 가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 누구랑? 당신이랑 엄마랑?"
" 그래. 엄마를 혼자 둘 순 없잖아."
50대 전후의 부부와 90살 할머니가 그곳을 간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내가 바라는 그림이 전혀 아니었다.
결국 나는 고민 끝에 나의 덕후 멘토이신 그녀에게 SOS를 치기로 했다.
" 내일 거기 갈까?"
" 좋아! 가자!"
역시 나의 멘토는 거침이 없으시다. 우리만큼 유별나지는 않으나 조용하면서도 깊은 팬심을 가진 또 다른 그녀에게도 시간을 내라고 설득하는 데 성공한 우리는 또 다른 그녀의 아기를 포함해서 총 네 명의 아미(bts 팬클럽) 원정대가 꾸려지게 되었다. 이름하여 아미 아줌마 셋과 아기 한 명의 설레는 외출이 시작된 것이다.
(혼자 있을 수 없는 엄마는 남편에게 부탁했다. 고마워. 남편. 아니 오빠.)
다음날 아침 우리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강서 체육공원 지하철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차를 가져갈 수도 있었지만 사직 종합운동장 지하철 역 안에 전시된 이른바 [지민 뮤지엄]을 보기 위해 지하철을 타기로 한 것이다.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은 가벼운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나의 덕후 멘토이신 그녀는 4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찢어진 청바지와 반짝이 티셔츠를 입으셨다. (그녀의 외모만 보면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안이긴 하다.) 그녀들은 나를 보더니 못마땅한 듯 한 마디씩 했다.
" 뭐야. 이런 날 원피스에 구두라니."
" 혹시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는 아니지?"
나는 조금 억울했다.
" 나 평소에 이렇게 입고 다니는데? 이게 좀 젊게 보이는 옷이기도 하고. 안 그래?"
" 응. 전혀."
둘은 매우 정직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탄 지하철은 종점에 가까워서 우리 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각 역에 도착할 때마다 점차 많은 사람들이 계속 탔고, 우리는 한눈에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우리와 같은 곳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외형과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낯선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목적지에 내리자 지하도 벽면은 온통 bts 멤버인 지민의 공연 장면이 담긴 사진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모두 황홀하여 말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치 바로 눈앞에 그가 있는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빴지만 나는 차마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사진을 찍는 그녀들은 모두 생기가 넘치는 젊은 여성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녀들의 옆을 비집고 들어가 사진을 찍는다면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함께 온 일행이 있었기에 나는 일행들 속에서 겨우 용기를 내서 몇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그녀들처럼 혼자 셀카를 찍을 용기를 내지 못했고 집에 와서 몇 장 없는 사진들을 보며 바보 같은 나 자신을 책망했다. ( 나는 이후로도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인다고 의식하며 계속 위축됐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이 몸서리쳐지게 싫었다. )
지하철 밖으로 나오자 거리는 더욱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도로의 가로등 기둥에 걸려있는 멤버들의 사진을 보고 너무 안 예쁜 사진을 걸었다고 불평을 했고, bts의 멤버인 정국의 얼굴이 그려진 부채를 나눠 주는 한 팬에게서 부채를 받고 기뻐했다. 그리고 임시로 설치된 매장에서 bts 티셔츠를 하나씩 샀다. 마지막으로 bts 캐릭터 그림이 그려진 폰케이스를 사려했는데 나만 사지를 못했다. 내가 쓰는 핸드폰 기종에 맞는 케이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슬퍼하는 내게 덕후 멘토이신 그녀는 말씀하셨다. "케이스가 필요하면 폰을 바꾸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명쾌한 해결책에 감탄하며 다음엔 꼭 아이폰을 사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그들의 공연이 열리는 경기장 바로 앞에서 우리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와 아기를 제외한 그녀들은 지친 듯 잠이 들었고 나는 bts의 음악을 들으며 허전함과 설렘이 뒤섞인 감정을 곱씹었다. 그녀들과 헤어진 후 집에서 엄마를 돌보고 있을 내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울 오빠인 남편을 위해 그가 좋아하는 햄버거 세트를 사고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후기)
다음날 아침 나는 전날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설레는 마음으로 그들의 음악을 차 안에서 크게 들으며 핸들을 과하게 꺾다 그만 학교 앞 담벼락을 차로 박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밤 지친 어깨를 끌고 밤늦게 들어온 고3 아들을 본체만 체하며 유튜브를 보는 나에게 학교 이야기를 꺼내던 아들은 내가 건성으로 듣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일침을 남기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 엄마, 요즘 말이야. 나는 동생이 생기면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아요."
여러 모로 미쳐가는 나는 아들의 말을 듣고 요즘 깊이 반성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