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15억대 집에 사는데, 넌 그런 부모가 없으니 이런 일이나 하지"
얼마 전 한 젊은이가 택시 기사에게 난동을 부리며 한 말이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부동산 광풍이 불면서 자신이 사는 집이 몇 달만에 몇 억대로 불어나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모두 이 청년과 같이 오만한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불어난 재산에 감격스러워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 동네 옆 동네는 우리 동네보다 몇 년 뒤에 만들어진 소위 신도시이다. 이곳의 일부 아파트 가격이 10억대를 넘기면서 우리 동네 사람들은 상대적 빈자가 되었다. 그 동네를 지나가다 보면 새 아파트 특유의 커다란 문주와 화려한 조명이 지나가는 이들을 압도한다. 나도 그 앞을 지나가다 보면 그 화려함에 눈을 떼지 못하고 나도 빚을 좀 무리해서 내어 여기서 한 번 살아볼까 싶은 맘도 든다.
나처럼 지방의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정작 몇 천 오른 집값에도 마치 일억 정도는 까먹은 것처럼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진다. 무주택인 사람들은 말해 뭐할까.
대학생인 나의 아이는 자신이 중학생 때 공부보다 주식을 더 열심히 배웠어야 했다며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공부나 진로에 대해 집중하지 못한다. 나같이 고지식한 사람도 이제 노동으로 돈을 버는 시대가 진작 끝났음을 느끼니 말이다. 이처럼 아파트값 폭등으로 부자가 되었다 착각하는 사람들의 열망, 그리고 그 부자의 일원에 끼지 못한 상대적 빈자들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비틀어진 가치관들이 현시대를 지배하는 느낌이다.
현재 우리 집 부동산으로는 부자가 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낀 남편은 며칠 전 가족 투자 회사를 만들 것을 우리에게 제안했다. 10년간 주식 투자를 해 왔으나 결과물에 대해 딱히 인상을 남긴 적이 없는 남편이기에 나는 맘이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은 전국민 모두가 주식을 한다는 주식의 시대가 아닌가? 그러니 나도 말로만 듣던 주식을 이번 기회에 한번 해보아야겠다는 맘도 들었다. 혹시 아는가? 남편보다 내가 더 소질이 있을지. 남편이 이렇게 제안한 이유를 나는 내심 안다. 얼마 전 내 통장에 들어온 목돈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어림도 없다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일단 어리숙한 척 속아주기로 했다. 그리하여 시작된 가족투자 회사 사무실은 우리 집 거실이고 남편은 투자 자문가, 아들은 투자자, 나는 이른바 전주이다.
남편은 저녁마다 거실에 노트북과 텔레비전을 연결하고 유망 주식을 우리에게 설명하는 척하며 우리의 정신을 빼놓고 여기 여기에 투자하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아들에게 돈을 약간 입금하고, 아들은 다음날 오전 그곳에 돈을 넣거나 또는 옮긴다. 남편은 저녁마다 그날의 투자에 대해 리뷰를 한다. 이 재미없는 저녁 회의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나는 책을 읽는 척, 아들은 공부하는 척하지만 결국 끌려 나온다. 남편의 하품 나는 리서치를 들으며 우리는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본다. 남편은 마지막으로 좋은 의견이 있는지 물어본다. 그럼, 나는 뿌듯해하며 요즘 관심이 많은 환경 이야기를 한다. 인간의 똥이 에너지로 쓰인다는 둥, 채식의 시대가 될 거라는 둥 몇 마디 말을 진지하게 던진다. 그럼 남편은 코웃음을 치며 그런 건 아직 돈이 안된다며 바로 잘라버린다. 그럼 나는 이제 드라마 볼 거니까 리모컨 내놓으라는 말로 오늘의 회의를 끝내버린다.
아침부터 밤까지 빠듯한 하루를 보내고 깊은 밤이 되어서야 이불속에서 몸을 푸는 나를 보며 아들은 언제까지 일을 할 것인지 내게 종종 물어본다. 그럼 나는 빠르면 네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는 날, 늦으면 네가 결혼하는 날까지 하겠다고 말한다. 그럼, 아들은 빨리 일을 그만두게 해 주겠다고 말한다.
능력 있는 아들 덕에 정말 그런 날이 와서 말로만 듣던 '경제적 자유'를 이루게 될까?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그렇게 꿈꾸던 제주 한달살이 또는 주말농장과 글쓰기를 하며 유유자적 살아가게 될까? 그럴 가능성은 아마 높지 않을 듯하다. 어쩌면 또다시 기간제 교사 자리를 찾거나 제2의 직업을 꿈꾸며 또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결국 지금은 우리 가족 투자 회사에 투자를 하는 수밖에 없다. 비록 남편의 독단과 나의 강짜로 가족 투자회사는 위태롭게 흘러가지만, 어느 날 우리도 남들처럼 주식 대박을 맞는 날이 오는 것을 기대하는 게 더 빠를지 모르겠다. 그날이 오면 우리도 꿈에도 그리던 이 말을 듣게 되는 걸까?
“어머, 부자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