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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Jun 19. 2022

나만의 공간

 주말에만 찾아가는 나만의 공간이 두 곳 있다. 한 곳은 집에서 자전거로 15분 거리의 국회도서관 2층 코너 의자, 또 한 곳은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차도 옆 벚나무 길이다.


    몇 달 전, 집 앞은 아니지만 멀지 않은 곳에 도서관이 생겼다. 이름하여 국회도서관 부산 분점이다. 나는 오늘 자전거로는 세 번째 그곳을 다녀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처음에 자전거로 갈 때는 길이 참 번잡했었다. 여러 개의 신호등을 조심조심 지나고 울퉁불퉁 보도블록 길을 덜컹덜컹 지나고, 좁은 육교 다리 사이를 겨우 통과했다. 그렇게 한참을 뻘뻘거리며 갔다. 그런데 세 번째인 오늘은 편안하고 빠르게 도착하는 느낌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거리, 경로, 시간 등 절대적인 척도와 기준이 정확하고 객관적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기분, 컨디션, 익숙함과 같은 상대적인 기준이나 가치가 내 몸은 더 크게 느낄 때가 더 많다. 뉴튼의 확실성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의 힘이 사실 우주뿐 아니라 우리의 내면도 지배하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1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려서 국회도서관에 도착하면 나는 먼저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대고 곧장 1층의 신간 코너에 간다. 신간 코너를 돌며 읽고 싶은 책 두어 권 고르고, 바로 옆 잡지 코너에 가서 가벼운 시사나 영화 잡지를 한 권 또 챙긴다. 그렇게 총 3권을 들고 내가 향하는 곳이 나만의 공간인 2층 코너 의자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왼편으로는 넓게 펼쳐진 공간에 높은 책장들이 줄지어 들어차 있고, 책장으로  분리된 공간에 커다란 탁자와 의자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사람들은 그곳을 가득 채우며 대체로 독서가 아닌 공부를 하고 있다. 조금 남은 공간인 벽과 창 주변에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많은 독서실 형태의 일인용 책걸상이 또 줄줄이 놓여 있고 그곳은 당연히 빈자리는 없다. 나는 사람이 북적거리는 이 왼편은 아예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 반대편인 오른쪽으로 걸어간다. 그곳은 따분한 국회 관련 서적들이 띄엄띄엄 꽂혀 있는 키 낮은 서가들이 있고, 서가 앞에는 1층을 내려다보는 형태의 반투명 유리벽이 있는데 그 서가를 뒤로 하고 유리벽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일인용 의자와 테이블이 적당한 거리로 줄줄이 6개쯤 놓여 있다. 여기는 대체로 사람이 없다.  그 이유는 국회 관련 서적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고, 소파처럼 푹 들어간 일인용 의자와 부정형의 사각형 형태의 낮고 작은 탁자는 책이나 노트북을 놓고 공부하기는 적절하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이 적당히 포근하면서도 은밀하지만 답답하지 않은 공간을 오롯이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탁자 위에 책들을 올려놓고 다리를 꼬고 의자에 털썩 앉는다. 그리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빳빳한 신간과 잡지를 번갈아 가며 맛있게 읽다 보면 2시간이 훌쩍 간다. 그렇게 3권의 책을 대략적으로 읽은 다음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유유히 돌아온다.

  두 번째 나만의 공간인 산책로는 여러 길로 되어 있는데 그중 차들이 다니는 가장 바깥 길이 나의 공간이다. 가장 안 쪽의 해안길은 남해 바다와 낙동강이 만나면서 만들어진 부드러운 수평선이 멋있다. 또 종종 철새들의 군무를 보며 울음소리를 듣기도 한다. 또한 길이 반듯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최적의 산책로이다. 중간의 오솔길은 고불고불한 흙길에 아기자기한 풀꽃과 나무들이 좋아서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깥 길은 4차선 대로에 차가 쌩쌩 달리는 소음이 제법 거슬리지만 봄에는 벚꽃이, 여름에는 초록잎이 우거진 벚잎이 아치처럼 가지를 늘어뜨려 개선문을 만들며 나에게 언제나 반가운 손짓을 하는 길이다. 특히 한 여름에도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며 잎 사이 사이에서 반짝이는 햇빛이 눈부셔 사계절 언제든 걷기 좋다. 특히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사르륵 내달리면, 매미 소리와 바람 내음, 벚잎사귀 사이의 햇살 간지럼이 청량한 녹음으로 내 가슴 가득 여름을 채워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공간  개방감과 폐쇄성을 함께 가진 곳이다. 사람이 별로 오가지 않아 온전히 나의 공간이 되어 주면서도, 적당한 노출로  혼자 있어도 외로움 없이 마음이 편안하다. 집에서, 직장에서  미디어에서 사람 가득함 속에 있다 보면 사람의 파장이 없는 곳이 그리워진다. 나만이 사색할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사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사람을 잠시 잊기 위한 동굴이 필요하다.  그런 공간이 내게는 도서관 2 코너 의자이고 벚나무 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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