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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Jul 10. 2022

자본주의 세상을 사는 법

 여름 저녁, 남편과 집 근처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쭉 뻗은 차도와 깨끗한 보도, 보기 좋게 우거진 가로수 나무들이 싱그러웠다.

"이렇게 좋은 환경이 어디 있냐?"

"그렇지."

남편의 말에 나는 호응해 주었다.


 "그런데 왜 우리 아파트 값은 안 오르는 거야? "

역시, 남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이거였다.

"쉿! 우리 동네가 좋은 동네라는 거, 우리만 알아야지. 비밀이야. "

나의 너스레에 남편이 뭐라고 몇 마디 더 투덜거렸는데,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 동네 사람들의 바람이던 <하단-녹산 지하철 예비타당성 조사>가 통과되었다는 뉴스가 들렸다. 남편이 가끔 들어가는 부동산 카페 사람들의 분위기가 갑자기 궁금해져 나는 카페에 슬쩍 들어가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축하의 글 1~2개, 비아냥의 글 3~4개가 떠 있었다. 이 카페는 무척 재미있다.  주로 부동산 재테크의 큰 꿈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대개 자기 동네 자랑 30%, 남의 동네 깎아내리기 60%, 부동산 정보 10% 비율의 글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이슈가 뜨거나 심심하면 이곳의 재미있는 사람들 군상을 보는 재미로 슬쩍 들어가 본다. 이번 뉴스에 대한 비아냥의 글로는, '이제 지하철 생기면 직장 가까워서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는 이 동네 떠나는 사람 많겠다. 지하철 타고 다니면 되니까.', ' 개통하려면 2040년이다. 쯧쯔' 등등이다. 역시 재미있다. 모두들 우리 동네의 매력을 아직 모르니 정말 다행이다. 우리 동네에 처음 들어와 살 때는 사실 부산 중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긴가민가하지만, 일단 들어오면 계속 살게 되는 마의 동네인데 말이다. 그래서, 쉽게 들어오는 사람이 많은 건 아니지만, 붙박이 하는 사람은 대다수라는 점은 비밀이다. 물론 이런 글을 내가 그 부동산 카페에 올리면 나 역시 그들 중 또 하나의 군상으로 비웃음 당하는 정신 승리하는 모모씨가 되고, 최소한 10개의 악플은 각오해야 할 테지만, 여기 나만의 일기장 <브런치>에 몰래 올리는 것이니, 여기 계신 모든 분들 우리 동네의 매력에 대한 비밀을 지켜주시길.


  사실 그동안 나 스스로 물욕이 없는 양, 재테크에 무관심한 척했지만 나 또한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물욕을 가진 자본주의적 인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엄마, 우리는 금수저예요, 은수저예요?"

아이가 예전에 했던 말이다. 그때 별생각 없이 '한.., 동 수저쯤?'이라고 했다.

그 말에 아이는 '응? 우리 그거밖에 안돼? 엄마, 아빠 합치면 월급 많잖아!'라고 했고, 나는 '엄마, 아빠가 당장이라도 실직을 하게 되고 1년 안에 비슷한 직장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바로 흙수저니까.'라고 말했다.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중요한 스펙으로 자리 잡은 요즘에 사회에 발을 내딛는 2030 세대들은 태어나는 순간 정해져 버린 본인들의 신분에 실망하며, 그나마 입시와 취업의 관문만이라도 공정하여 덜 억울하기를 꿈꾼다. 하지만 그 또한 공정의 결과가 아님을 우리는 안다. 이런 세태에 공중에 떠 있는 아파트 한 채가 자산의 전부인 나와 같은 부모가 느끼는 묘한 불안감을 나도 역시 피할 수 없다. 만약 남편과 나 중 누구 하나 중병에 걸리거나 실직을 한다면 우리 가족의 경제적 상황은 그대로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그런 내가 갖는 자본주의자로서의 욕심은 땅 한 덩이 내지는 건물 한 채이다. 지인들 중 사는 게 힘들다고 불평하던 이들이 나중에 보니 외가 또는 본가로부터 땅, 내지 산을 물려받았다는 말을 건너 들으면서 묘한 부러움이 살짝 일렁였었다. 가난한 양가 부모 아래서 태어났지만, 감사하게도 나쁘지 않은 머리 하나 물려받아 이렇게 안정된 밥벌이를 하는 것만도 분명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경제 상황에 뭔가 단단한 동아줄 하나 있었으면 하는 욕심이 가끔 울컥 일기도 한다. 내가 이럴진대, 더 힘든 분들이야 말할 필요 있을까. 어차피 우리 모두 공정하게 얻은 건 거의 없으니, 모든 사람, 모든 직업, 모든 공간에 대한 존중과 고마움을 가졌으면 한다.


-<사족> 자본주의 세상을 사는 동수저 부부의 정신 승리 이야기-  

  어제 아는 지인이 말하길 그분의 지인은 너무 돈이 많아 거래은행이 마음에 안 들면, 당장 돈을 빼겠다고 지점장에게 엄포를 놓아 사과를 받는다는데, 나도 내 거래 은행에 전화해서 내 대출금 당장 다 갚아버리기 전에 더 잘해라고 말을 해 볼까 싶다니까, 남편은 '오, 그거 진짜 타격감 있다. 우리가 내는 대출 이자가 얼만데.'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 해 볼까 한다.

'이제 갚을 대출금만 모으면 00 은행 너희는 아주 큰일 난 거니까, 기다려. 곧 전화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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