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 장애 엄마가 불효녀 딸에게 보내는 상상 편지
홍아야.
난 어릴 적 너를 이렇게 불렀지. 그리고 나의 젊은 시절 불리던 이름도 '홍아야 엄마'였어. 너를 40이라는 늦은 나이에 낳고 천방지축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그 시절 제법 살던 아이들이 가졌던 2단 자석 필통이나, '프로스펙스' 신발을 사달라고 했을 때 나는 부담되었지만 두말하지 않고 사 주었어. 그렇게 철없는 소리를 하는 나를 왜 따끔하게 나무라지 않았냐고 지금의 너는 화를 내지만, 나는 네가 항상 안쓰럽고 네게 미안했단다. 늙은 엄마를 둔 네가, 그리고 항상 일에 치여 엄마 없이 동생과 단 둘이 집을 지키고 있던 네가 말이다.
지금 90을 앞둔 나는 더 이상 '홍아야 엄마'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할머니'라 불리지. 섭섭하게도 너도 가끔 그렇게 부르더구나.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하긴 더 이상 네 엄마 노릇을 못하고 있긴 하지. 나도 너를 부르던 이름, '홍아야'는 네가 커버린 이후 부르지 않는 이름이 되었지. 너는 이제 나에게 '찬이 엄마', 또는 그냥 '엄마'로 불리지. 이젠 나의 엄마 노릇까지 하고 있으니.
요 며칠은 내가 연속으로 밥을 질게 해서 너를 화나게 했지. 나는 너를 도와주고 싶기도 하고, 밥솥에 밥이 없으면 식구들이 집에 왔을 때 배가 고플까봐 한 것인데, 너는 '왜 밥을 했냐'고 엄청 화를 냈지. 예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밥을 했는데, 왜 내가 밥을 하면 자꾸 죽밥이 되는 걸까? 왜 지금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을까? 네가 얼마 전 새로 들여온 전기레인지라는 것도 나는 왜 작동법을 몰라서 네가 국을 데워줄 때까지 바보처럼 기다려야 하는 걸까? 네가 사준 '크로버'라는 음악 나오는 기계도 다른 사람 말은 기가 막히게 알아듣고 반응하는데, 왜 내 말에는 잘 대답하지 않는 걸까? 세상이 다 나를 바보로 보는 것 같고 식구끼리 나누는 말도 나는 이해가 안 되어 계속 물어보게 되고, 성의 없이 대답하는 네게 화를 내고는 그런 네게 또 미안해 이 집을 나가겠다고 속에 없는 말을 하며 네 마음을 확인하다 보면 너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또 화를 내게 되고.
홍아야.
'홍아야'로 네가 불리던 시절, 나는 살기 힘들었지만 참 좋았단다. 모두가 내게 대단하다 말해주고, 너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항상 나를 따라 움직이며 빛났거든.
또 편지 하마. 사랑하는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