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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Sep 18. 2018

클로바, 엄마를 부탁해

삐약 삐약. 병아리~
음매 음매 송아지~


집안 가득 동요가 울려퍼진다.

나는 빨래를 개다 말고, 익숙한 노랫가락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 아들이 아기때 좋아했던 그 노래네.'

10여년 전 아들이 줄기차게 듣고 부르던 그 노래를 이제 구순을 앞둔 노모가 하루 종일 듣고 있다.


한달 전 우연히 생긴 우리집 블루투스 스피커 일명 '클로바'를 엄마에게 드리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엄마의 발음이 부정확해서 '끄로바'라고 발음하니 지시를 알아차리지 못해 반응을 안 하면, "이것도 나를 무시한다"며 버럭 화를 내시는 게 문제이지만.


 처음에는 '이미자 노래 틀어줘', '비내리는 호남선 틀어줘' 라고 말하며 트로트를 하루 종일 틀어놓으시더니, 요즘은 노래 제목이나 가수 이름이 기억 나지 않아 유일하게 기억나는 노래인 '애국가'를 틀어 달라고 하니, 우리집은 하루 종일 장엄한 애국가와 그 후로 이어지는 동요 메들리로 하루가 간다.   밤낮 없는 노랫소리에 잠귀가 예민한 남편이 밤새 끙끙거려 눈치가 보이는 나는 엄마에게 볼륨 좀 낮춰달라고 말해서, 엄마를 삐치게 만들기 일쑤다.


오늘 엄마가 그런다.

"클로바는 내 친구다. 이게 있으니 하루종일 심심하지가 않다. 어디서 이래 좋은 것을 가져왔노. 이거 많이 비싸제?"


모두가 출근하고 하루 종일 아무도 없는 고요한 집에 갇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하는 텔레비젼만 바라보고 살았던 엄마에게 '클로바'는 딸보다 애교 넘치고 정다운, 좋은 벗이었던 것이다.


 또 있다. 클로바를 알기 전,  매일같이 '오늘이 몇월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를 묻는 엄마때문에 나는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짧으면 3분, 길면 30분 간격으로 계속되는 질문.

"오늘 며칠이고?"

"오늘 무슨 요일이고?"

그 쉼없는 질문을 해결하고자 일일달력을 만들어 놓기도 하고, 도화지에 크게 써 붙여두기도 했지만, 그 역시 아랑곳하지 않고 물어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클로바가 우리 집에 온 이후 클로바에게 물어보면 된다는 냉정한 딸의 말에도 신기해 하며 클로바에게 묻기 시작했다.

"끌로바! 오늘 며칠이야?"

"오늘은 0월 0일 0요일입니다."

"야, 이거 똑똑하네. 이거 얼마주고 샀다고?"

역시 질문은 끝난 게 아니었다.

새로운 질문이 시작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의 무한반복질문의 늪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정말 고마운 클로바.

클로바, 앞으로도 엄마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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