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맨발 등산하며 책을 또 쓰려고 하는가

나의 뮤즈

by 찐프로

첫 책이 나오기 2년 전이었다.

“나는 왜 이토록 힘든 길을 맨발로 걷는가?”

그 질문 하나를 안고 북한산에서 가장 험한 길에 나섰다. 등산 안내도에 난이도 최상,

검은색 줄이 선명하게 그어진 길.

의상능선(자명해인대)과 비봉능선 이름만 들어도

숨 막히는 2개의 능선,

9개 봉우리들을 타고 넘어야 끝이 나는 길에 들어섰다.


비도 내렸다. 발가락도 다쳤고, 어둠 속에 혼자 남았다. 절벽 같은 암릉길을 꾸역꾸역 맨발로 걸었다.

마지막 구간, 몇 개의 봉우리 앞에서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두통이 찾아왔었다.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곳이 없었다.

난 해지기 전 보았던 불빛을 떠올리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체력은 남았는데 탈진할 것 같았다. 향로봉에서 날머리까지 1.6km 남았다는 이정표 앞에서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사방에서 어둠과 함께 밀려드는 거친 바람은 나를 휘청이게 했다. 나대는 내 심장 소리만 가득히 들렸다. 내 정신은 강풍 속 나뭇가지처럼 부러질 듯, 말 듯, 끊임없이 요동쳤다.


대체 왜 이렇게 걷는지 그때 깨달았다.

2년 전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만큼 절실했다.

앞으로 새롭게 펼쳐질 수많은 고비를 담대하게 걸어가고 싶었다. 증명하고 싶었고 다행히 무사히 내려왔다.


그렇게 절실한 마음으로

맨발이 되어 걷고 쓴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결국, 해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11223623

(알라딘, 리디북스, Yes24에서도 만나실 수 있어요:)


최근, 두 번째 책을 쓰면서 그때의 절실함을 잠시 잊었다. 글이 안 써진다는 이유로 며칠간 술독에 빠져 살았다.

한 문장도 쓰지 못했고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그러다가 이 말도 안 되는 시(?)를 쓰고

난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왔다.


<죄책감에 밀려 난>


후회는


지 맘가는 데로

글을 세워

짖거리고 싶었지만

이 마저도 서툴다


툭,

그의

잘 빠진 문장을

씹다가 아무것도

삼키지 못한 날


난,

글에게 빌며

또 다른 숙취를

껴안고

후회를 쓴다


숙취가 사라진 다음 날, 내가 자주 찾던 숲으로 향했다.

꼬박 3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맨발로 걷고 달리던 그곳.

나의 뮤즈(Muse)가 숨 쉬는 곳.


늘 이곳에 서면 글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오늘도 역시 뮤즈는 나를 찾아와 주었다.

한동안 게을렀던 몸뚱이를 이끌고 정상까지

힘겹게 달렸다.

터질 것 같은 심장 박동은 땀으로 솟구쳤다.

감사한 마음으로 내려서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자명해인대가 떠올랐다.


두 번째 책, 퇴고 중에 힘들어하는 나에게

다가 온 목소리

“많이 힘들어? 하지만 초고는 다 쓰레기야”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한 말이다.

그의 친구이자 편집자였던 아널드 새뮤얼슨(Arnold Samuelson)이 쓴 회고록에 나오는 말이고, 거기서 헤밍웨이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The first draft of anything is shit.”


직역하면 이렇게 된다.

“어떤 것이든 첫 번째 초안은 똥이다.”


좀 더 자연스럽게 풀자면,

“무엇이든 첫 번째 초고는 형편없다.”


이 말이 나에게 해방감과 용기를 되살려 주었다.

처음부터 완벽한 문장을 쓰려고 애쓰기보다,

일단 쓰고 다듬는 것이 진짜 글쓰기라는 것.


그리고 앞에서 말한

북한산 의상능선(자명해인대)의 추억은

책 쓰기에 관한 나의 진심과 절실함을

떠 올리게 만들었다.


스스로에게 묻고 솔직하게 답해야 한다.

도대체 왜 힘든 과정을 참아내고

책을 쓰려고 하는가


내가 첫 번째 책을 쓸 당시 생각은 이랬다.


1. 어릴 적 나의 꿈이자 내면의 깊은 욕구였다.

IMF로 아버지 사업이 파산하고 집안이 무너졌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와 힘겹게 살던 그때.

나는 1시간 분량의 드라마 대본을 써서 어디론가

제출했던 아이였다.

글을 쓰는 것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열망이었다.


2. 주도적 삶을 추구 :25년간 직장인으로 살아온 나는

이제 주도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남이 짜준 길이 아니라,

내가 한발 한발 만들어 가는 길을 걷고 싶었다.


3.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사람.’

그런 아빠의 모습 말이다.


이제 난 두 번째 책을 쓰며 다시 질문한다.

'나는 왜 이 힘든 과정을 감내하며 또 책을 쓰려고 하는가?' 누구를 위해서인가?


과거의 나처럼

아직은 막막함 속에서 길을 찾는 이들을 위해 쓴다.

어떻게 자기 길을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주고 싶다.


회사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이들,

가정과 일 사이에서 힘겨워하는 이들

나처럼 꿈을 잃었다고 믿었던 이들에게

내 이야기가 닿기를 바란다.

이런 기본적인

글쓰기의 목적이나 당위성 말고도
지극히 개인 적인 소망은 첫 번째 책이
아직 이루지 못한 소망. 종이책으로 출간.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작가로서
의미를 확장해 본다면,

'인생을 잘 살아 내기 위해서 쓴다.'


만일 내가 글을 쓰고자 책상머리에 앉아 있었다면

오늘 이 글을 쓸 수 없었다고 단언한다.

달리기 마치고, "감사합니다."

'기억하자!'

맨발로 깨어난 내면의 나를 이끌어 준 것은 숲이다.

우리의 뮤즈다.




끝까지 쓰겠습니다.

좋아요♡ 구독 응원까지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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