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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품여자 May 05. 2021

2. 몰타

2-1. 섬나라 몰타로 날아가다

한적한 섬에서 한 달 동안 쉬기.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직장 생활을 하며 정신없이 삶을 살아가다 보니 마음 저편에서 쉼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는데 섬에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몰타에서 한 달 살기'를 계획했다. 여러 일정과 나라별 거리를 고려하여 터키 여행이 끝나면 바로 가기로 했다.


몰타가 영어권 나라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학생들이 어학연수를 많이 오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지극히 평범한 영어교육을 받은 나로선(요즘 젊은 학생들은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 세대엔 중학교에 가서야 알파벳과 Hi~와 같은 인사말을 배웠다.) 영어 듣기는 약간 되나 영어 말하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말 한마디 내뱉기가 참 망설여졌다. 그래서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보다 더 당당히 여행을 하기 위해 초반에 몰타를 방문하기로 했다.(한 달이라 애초에 영어 실력이 느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다.)


유럽 타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와 비교적 안전한 치안, 따뜻한 기후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 달 동안 살아보기에 적절했다. 한국에서 유학원을 통해 어학연수 신청한 후, 학원 숙소에서 한 달 동안 지내기로 했다. 영어도 배우며 즐겁게 놀다 오고 싶었다.




터키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로비로 나가니 워킹투어를 하려는 사람들 속에서 룸메이트를 만났다. 내가 추천해 준 투어를 들으려고 온 것이다. 좋은 시간 보내라고 서에게 인사한 후 우리는 헤어졌다. 난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한 후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탔다. 이스탄불을 떠나다니... 아쉽고 또 아쉬웠다. 그런 만큼 다음에 또 와보리라 다짐했다.


터키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몰타에 간다는 설렘을 느낄 겨를도 없이 나는 당황부터 했다. 내가 탈 비행기가 전광판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예약한 건 에어 몰타 14시 20분 비행기였는데 터키항공 14시 20분으로 떴다. 비행기 편명도 달랐다. '앗! 내가 예약을 잘못했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영어로 된 컨펌 메일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보았다. 한 줄 한 줄 읽어보니 체크인은 터키항공에서 한다고 아주 작게 쓰여 있었다. 순간 얼마나 감사하던지. 난 당당하게 터키항공 체크인하는 곳으로 갔다. 사람이 많아 40분 정도 기다려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직원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직원이 터키어로 내게 계속 뭐라 뭐라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아.. 내가 터키어를 어찌 아나요...) 대충 추리해보니 몰타항공 체크인은 여기가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았다. 옆 직원한테도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난 패닉 상태가 되었다. 아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이제 몰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 데도 물어볼 곳이 없었다.


난 그래도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컨펌 메일을 그 직원에게 보여주며 터키 항공에서 에어 몰타 체크인을 한다고 쓰여 있다며 다시 한번 전산을 조회해보라고 했다.(짧은 영어로 이해시키느라 힘들었다.) 직원은 내 비장한 표정을 보더니 이내 컴퓨터를 이래저래 두드려본다. 한참을 찾아보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여기가 맞단다. 하... 순간 화가 났다. 직원이 이것도 모르다니! 머릿속에선 온갖 상스러운 말들이 둥둥 떠다녔으나 차마 입밖엔 내지 못하고 그냥 몰타로 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자 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곳에서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부족해 보였기에 더 그랬던 같다. 그러게 진작부터 영어 회화 좀 공부해둘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런데 비행기에 탄 후 얼굴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작은 비행기였는데 내 자리는 맨 뒤였고, 화장실과 승무원 쉬는 공간 바로 앞이었다. 의자를 뒤로 젖힐 수도 없었고, 내 머리 위 짐칸은 비행기 비품으로 가득 차 있어 짐을 넣을 수도 없었다. 혹시 그 직원이 자신의 실수가 부끄러워서 날 맨 뒤쪽 자리에 넣어준 것 같은 억측도 들었다. 난 공항에 3시간 전부터 와서 체크인도 비교적 빨리 했는데... 몰타로 가는 길이 이리 험난할 줄이야. 래도 맛있는 기내식과 미소를 띠며 화장실 문 열어준 친절한 승무원 덕분에 마음이 많이 풀렸다.


우여곡절 끝에 몰타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내리니 더운 바람이 쓱 불어온다. 공항은 작았고, 숙소에 픽업 차량을 예약해 둔 터라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사람을 찾아갔다. 를 포함한 2명의 학원생을 픽업한 그는 차에 친히 캐리어를 넣어주고 타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 달 동안 있을 기숙사로 씽씽 달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이국적인 풍경을 보니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우와... 너 단단히 미쳤구나. 미쳤어. 이런 작은 섬에 혼자 올 생각을 했다니. 말도 안 통하는 이곳에서 혼자 한 달 동안이나 있겠다고? 정말 간도 크다. '


내겐 너무나도 낯선 이곳. 몰타에서 한 달 살기.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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