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품여자 May 10. 2021

2. 몰타 적응기(1)

2-2. 몰타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다.

드디어 내가 한 달 동안 묵을 숙소에 도착했다. 리셉션에 내 이름을 말하며 여권을 보여줬더니 안내문을 보여주며 이것저것 설명해준다. 말이 너무 빨라 반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이런 내 표정을 살피더니 매니저 할아버지가 묻는다.


" 다 알아들었어요?"

" 아.. 조금요..."

" 잠깐만요. 한국인 친구들이 여기 있으니까 내가 소개해 줄게요."


그가 나를 리셉션 뒤쪽 라운지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한국인 학생들이 몇 명 모여 있었다. 나를 소개해주더니 이 곳 생활에 대해 잘 설명을 해주라 하신다. 그러자 학생들 중 한 명이 내게 묻는다.


" 혹시 궁금한 게 있으세요?"

" 아.. 아니에요."


나는 아직 크게 궁금한 것이 없기도 하고, 내가 매니저 할아버지의 설명을 잘 못 알아들었다는 부끄러움과 그것도 알아듣지 못했냐는 그들의 눈빛에(그냥 나의 추측이다. 나의 열등감 때문이겠지...) 그냥 그 자리를 피해 4층 내 방으로 올라갔다.


모든 방은 2인실이었는데 난 돈을 조금 더 내고 방 하나를 다 쓰겠다고 했다. 이곳에 온 목적이 온전한 휴식이었기에 아무한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방 컨디션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간단한 방청소를 매일 해준다고 하니 더 좋았다. 방에 들어오니 긴장이 확 풀리면서 침대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내가 정말 몰타에 온 거 맞겠지? 히히 신난다.'


이제 한 달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다는 사실에 참 행복했다. 그간 갖지 못했던 '삶의 여유'를 지겹도록 누리고 또 누리리라. 부족한 영어 회화는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틀려도 용감하게 말해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저녁이 훌쩍 넘어 배가 고파 밖으로 나가 뭘 좀 사 먹을까 돌아보니 저 멀리 익숙한 간판이 보인다. 바로 '버거왕'.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햄버거 세트를 구입해 먹었다. 역시 익숙한 그 맛. 그냥 신이 났다. 내일은 학원 영어 수업을 들으러 가야지.






아침 일찍 조식을 먹으러 1층으로 내려갔다. 아침은 매일 챙겨 먹고 싶어서 조식을 신청했었다. 그런데 식당에 간 나는 매우 당황했다. 가격에 비해 조식이 매우 간단기 때문이다.


음... 대략 난감했지만 그래도 이왕 돈을 냈기에 최대한 많이  즐겨보자라는 마음으로 토스트와 커피, 사과를 먹었다. 맛은 그냥 보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얼른 먹고, 학원으로 향했다.



내가 있는 이곳 몰타의 '슬리에마'라는 도시는 관광지답게 번화가였다. 각종 상점, 식당, 카페, 호텔들이 있고, 바다엔 유람선들이 수시로 떠다닌다. 이른 아침이라 거리는 조금 한산했고 바다도 조용했다. 짙은 청색의 바다가 보이는 도시의 아침 풍경이 싱그럽고, 산뜻했다. 우리나라 초여름 정도의 날씨는 산책을 즐기기에도 훌륭했다.


학원 프런트에 가서 이름을 말하니 이미 짜인 시간표를 건넨다. 원래 주 5일 수업인데 이번 주에 국경일이 이틀이나 있어 3일만 수업이 있다고 했다. 교재를 받아 교실로 걸어가는 동안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니 언뜻 봐도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교실에는 나 포함 10명남짓 모였고, 연령대는 다양했다. 수업은 대학 교양 영어 수업 정도의 난이도로 진행되었고, 개별 대화 시간도 주어졌다. 난 리비아에서 온 학생과 대화하게 되었는데 낯선 상황에 약간 긴장한 나와 달리 그는 얼굴과 말투에 여유로움이 넘쳐났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영어 구사 수준이 나보다 아주 약간만 더 나은 정도라 그가 하는 말을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 나도 갑자기 자신감이 붙어 아는 단어를 총동원하여 대화를 이어갔는데 참 재미있었다. 일본에서 온 여고생은 바른 자세로 맨 앞자리에 앉아 연신 미소를 띠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했는데 학창 시절 반에 한 명쯤 있다는 엄친딸 모범생 같은 모습이라 괜히 흐뭇했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샌드위치로 간단한 점심을 먹은 후 오후 수업까지 하고 나니 오후 3시다. 내내 긴장하며 머리로 영어를 해석하고, 잘 생각나지 않는 영어 단어를 쥐어짜생각해서 말하느라 진이 빠졌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시원한 바다는 그런 스트레스를 싹 씻어줄 만큼 예뻤다.



기숙사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봤다. 트가 꽤 컸는데도 살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방에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용 주방 냉장고를 이용하면 되었지만 이름도 써놔야 하고 무엇보다 왔다 갔다 하기가 번거로웠다. 그래서 쌀, 식빵, 잼, 주스, 요거트, 포도, 물만 조금 사 왔다. 방울토마토도 샀는데 열어보니 곰팡이가 있어서 그냥 버렸다. 환불하러 가려고 했지만 영어로 말해야 하니 내가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 포기했다.(그냥 용감하게 가볼걸...)


저녁을 뭘 먹을까 하다 밥을 지어먹자니 큰 주방에서 어떤 식기를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누가 말 걸까 봐 조금 두렵기도 하고 다들 같이 먹는 분위긴데 중간에 앉아 혼자서 우두커니 밥 먹기도 뭐해서 방에서 빵을 먹기로 했다. 몰타 식빵은 어떠려나 하고 잼을 발라 먹는데 터키 빵보다 맛이 없다. 그래도 주스는 맛있어서 배만 채우기로 했다. 보아하니 먹는 것이 일이었다. 매끼를 사 먹자니 부담이고, 만들어먹는 것도 일이었다. 이걸 잘 조화를 시켜야 할 텐데... 그런데 이틀 내내 빵으로만 먹으니 얼큰한 것이 간절해졌다. 하얀 쌀밥도 먹고 싶어 졌다. '에휴.. 벌써 이러면 어떡하지?' 앞으로의 일이 깜깜했지만, 일단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밥을 지어먹겠다고 다짐했다.

작가의 이전글 2. 몰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