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아... 오늘 열기구는 못타겠다'는 생각을 하며 룸메이트와 함께 로비로 나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이드님이 이리저리 연락을 취해보시더니 매우 실망스러운 얼굴로 오늘은 기상이 좋지 않아 열기구가 뜰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내일 새벽이 또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하셨다. 터덜터덜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다시 잠을 청했다. 아쉬웠다. 그래도 덕분에 잠을 더 잘 수 있어 그건 좋았다.
잠을 푹 자고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갔다. 요거트와 꿀이 있길래 혹시 어제 먹었던 요거트 맛이 날까 싶어 가져왔는데.... 아니었다. 대신 빵을 맛있게 먹었다.(터키 빵은 다 맛있었다.)
오늘의 첫 방문지는 데린쿠유 지하도시이다.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여 아침부터 기대가 되었다. 이곳은 기독교 박해를 피해 크리스트교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는데 대체 어떤 형태로 살았었는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데린쿠유 지하 도시
지하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 소설책에서나 볼 법한 지하 도시를 볼 수 있다니 갑자기 흥미진진해졌다. 동굴이라 하면 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곳 또는 산에서 잠시 비를 피해 머무는 곳 정도의 생각만 하며 살아온 내게 지하'도시'라는 명칭은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동굴 안은 따뜻했다. 일 년 내내 적정 온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규모가 엄청 크고 깊다. 지하에 이런 곳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대중에 공개가 안 된 부분도 많단다.방은 물론 조리실, 창고, 감옥도 있었고, 지상으로 이어진 환기 구멍도 있었다. 지하'도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매일을 어두운 이곳에서 맘 졸이며 살았을 그 시대의 사람들을 상상해보니 안쓰러우면서도 종교적으로 더욱더 결속력을 다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조금 더 머물고 싶었지만 다음 일정이 계속 있어서 아쉽지만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자유 여행이었다면 한참 더 있고 싶은 곳이었다.)
우치히사르
두 번째 방문지는 '우치히사르'. 수도사들이 살았던 곳이라고 하는데 그 크기가 엄청나다. 무슨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바위 동굴들이 널려 있었는데 이국적인 풍경에 난 연신 감탄사만 내뱉었다. 이전에 거쳐왔던 터키의 도시들과는 완전 다른 모습에 터키라는 나라가 점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고대 시대의 모습을 실컷 보고 왔었는데 여긴 또 다른 세상같이 느껴졌다.
'터키야 너 참 멋있구나! 내가 반해버렸어. 또 오고 싶다!'
항아리 케밥
카파도키아에선 항아리 케밥이 유명하다해서 꼭 먹어보고 싶었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데 정 많으신 어르신들이 고추장과 김을 접시에 조금씩 덜어 나눠주신다.(미리 가이드님께 여쭤보고 양해를 구하셨다.) 다들 환호하며 좋아하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항아리 케밥은 고기와 야채를 소스와 함께 끓인 형태였는데 명성대로 매우 맛있었다.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았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
세 번째 목적지는 괴레메 야외 박물관이었는데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거대한 동굴 바위산에 입이 떡 벌어졌다. 이 곳은 여러 개의 교회가 있는 곳이었는데 동굴 교회에 들어가니 프레스코 벽화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촬영이 금지된 게 아쉬울 정도로 벽화 상태가 좋았다.
파샤바 계곡
마지막 목적지에서도 기이한 암석들의 향연이 계속되었다. 버섯 모양의 암석들이 줄지어 있는 파샤바 계곡. 높은 언덕에 올라 탁 트인전경을 바라보며 숨을 들이마시니매우 상쾌했다.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해 촉촉해진 공기와 하늘 가득 들어찬 구름이 이곳의 기이한 느낌을 더 강화시켜 주는 듯했다.
카파도키아에 대해 미리 알아봤을 때 동굴 호텔, 동굴 식당 같은 것들이 유명했다. 그런데 여기까지 돌아보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도시 전체가 매력이 넘친 이 곳. 이제 다음날 새벽 열기구를 타고 일출만 보면 될 것 같았다. 오늘 일정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가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새벽5시에 일단 호텔 로비에 모이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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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하아.....(다음에 또 오자.....)
레드밸리
투어의 맨 마지막은 레드 밸리다. 오전에 조식을 먹고 짐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우리는 세찬 비바람과 함께 붉은색 암석이 곳곳에 있는 이곳에 내려 꽤 걸었다. 이런 신기한 지형에 둘러싸여 보니 내가 마치 동화책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비에 촉촉이 젖은 암석들이 흐릿한 주변 날씨와 어우러져 더 그렇게 보인 것 같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버스를 타고 달렸다. 비가 제법 많이 왔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해서 더 좋았던 시간들. 전체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터키 지방 투어 종류 중에 5박 6일 후, 버스 or 비행기를 타고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일정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난 고심 끝에 돈을 더 주고서라도 비행기를 선택했었다. 다음 여행지가 계속 연이어 있어서 조금이라도 덜 피곤하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그 선택이 정말 탁월했음을 이때 알았다. 다들 체력적으로 힘들어하셨는데 비교적 젊은 축에 속했던 나도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이것을 끝으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시는 분들이 잠깐 부럽기도 했다. 따뜻한 이불속에서 맛있는 간식 먹으며 편하게 TV 시청하며 피로를 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그나마 다음 여행지가 쉴 수 있는 몰타섬이라는 것이 다행이었다.
무사히 이스탄불에 도착 후, 원래 묵었던 호텔로 돌아왔다. 오래간만에 본 이스탄불이 왜 이렇게 반갑던지... 하지만 내일부턴 다시 혼자가 된다는 심리적 부담감과 섬에서 유유자적하게 쉴 수 있다는 기대감이 교차되어 이런저런 생각에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그렇게 터키에서의 아쉬운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