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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품여자 May 01. 2021

1. 터키 카파도키아(1)

1-9. 콘야를 거쳐 카파도키아로 달리다.

아침부터 분주하다. 짐을 챙겨 카파도키아로 이동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책에서만 보던 멋진 열기구를 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날씨 예보만 몇 번을 들여다보았다. 이틀에 한 번꼴로 비가 오는지라 열기구는 당일 되어봐야 탑승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오전 7시. 카파도키아로 향해 출발했다. 중간 즈음 '콘야'라는 도시를 살짝 둘러보고 간다고 했다. 가이드님은 버스에서 터키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하며 관광객의 소중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시려고 무던히 애를 쓰셨다. 난 가이드님의 열정적인 설명을 들으며 버스를 타고 달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휴게소에 잠시 정차한다고 하셨다. 이 곳 휴게소에서는 모두 내려 요거트를 꼭 맛보기를 권하셨다. 정말 후회 없으실 거라며 강력 추천하는 가이드님.


'요거트가 뭐 별 거 있겠어?'


나와 룸메이트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하나를 사서 나눠먹기로 했다.


꿀 요거트

'엥? 내가 생각했던 비주얼이 아닌데?'


문득 그 맛이 궁금해져 룸메이트와 난 테이블에 앉아 한입을 먹순간... 둘 다 눈이 똥그랗게 되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와아~ 대박! 진짜 너무너무 맛있다!"


아니 무슨 요거트가 이런 맛이 나는 거지? 리코타 치즈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그 중간 어디쯤 나는 맛인데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얹어준 꿀과 함께 먹으니 달콤함은 배가 되었다. 그냥 요거트만 먹어도 너무 맛있어서 룸메이트와 난 하나를 더 사서 먹었다. 다른 사람들도 맛있다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후 난 여행을 하며 이런 맛이 나는 꿀 요거트를 찾아다니기 바빴고, 그리스에서 원 없이 먹었다.


너무나 만족스러운 꿀 요거트로 인해 오늘의 모든 일정이 즐겁고 기쁘게 흘러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행복했다. 꿀 요거트 하나로 투어버스 안의 공기가 화기애애해진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가이드님이 자기소개 시간을 갖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난 금방 고개를 숙였다. 지목당한 사람 순서대로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아마 부담이었을 텐데 막상 자기소개가 시작되니 다들 열심이셨다. 취업에 성공한 딸과 함께 온 엄마, 남해에서 카페를 하신다는 부부, 중년의 친구들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여행에 오셨다. 다들 나처럼 큰돈 들여 큰 맘먹고 오셨겠지? 난 최대한 간단히 소개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함께 하는 사람들을 알고 나니 전보다 더 대화하기가 편해지고, 서로 말할 거리가 생겨 버스 안에 생기가 돌았다.


무심코 본 창밖의 풍경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었다. 맑은 하늘과 넓은 들판, 그리고 나무 한그루.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 하늘과 맞닿으니 창 밖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아서 한참을 바라보았다.(지금 보니 올림픽 공원의 나홀로 나무와도 비슷하다.)


점심때가 되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조금 더 이동해서 '콘야'라는 도시에 드디어 도착했다.

메블라나 박물관

콘야는 오스만 제국 이전, 셀주크 투르크 민족이 터키를 지배했을 때의 수도이다. 이슬람의 개혁 세력인 메블라나 교단이 있는 곳으로 우리는 메블라나 박물관을 방문했다. 내겐 매우 생소한 이슬람 문화가 주는 오묘한 느낌의 여러 유적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가이드님과 박물관을 둘러본 후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도시를 돌아보고 버스로 돌아오면 된다고 하였다. 오랜 시간 버스에 있어 산책하며 다리를 풀어주었다.


짬이 나서 가이드님과 개인적으로 대화 기회가 생겼다. 

그녀는 체력적으로 힘든 투어를 매사에 열정적이고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었는데 문득 걱정이 되어 물어봤다.


"가이드님~ 힘들지 않으세요?"
"체력적으로는 단련이 되어 있어 괜찮아요. 그보다 이번에 투어 오신 분들이 대체적으로 긍정적이고 잘 따라와 주셔서 수월한 편이에요."

"그럼 이렇게 5박 6일을 지방 투어하고 나면 그다음 날 쉬나요?"

"네~근데 하루 쉬고 또 워킹투어가 연속으로 있어요. 아님 연달아 지방 투어를 또 하기도 해요"


우와~ 말만 들어도 고된 가이드의 세계. 하지만 해맑 웃으며 대답하는 그녀를 보며 진정으로 이 일을 사랑하는구나 싶었다. 휴가는 비수기에 한 달이 주어지는데 다들 한국에서 쉬고 온다고 했다. 외동딸로 자란 그녀를 멀리 타국에 보내 놓으시고 부모님께서 걱정이 많으실 것 같다고 했더니 그렇단다.


가이드님은 그냥 이것을 일로만 대충 하는 게 아닌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느껴져 좋았다. 나이는 나보다 어렸지만 생각이 깊고 성숙했다. 그래서 투어 내내 안정감 있고 즐거웠으며 행복했다. 유럽 여행이 모두 끝나고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하려고 투어 회사에 연락을 했다. 덕분에 터키 지방 투어가 의미 있고 너무 좋았다고. 가이드란 직업이 그녀로 인해 더 빛이 나는 것 같고, 매력적으로 보였다고. 하지만 이미 퇴사했다는 소식에 참 아쉬웠다. 이후에도 가이드를 계속할 거냐는 질문에 진로를 고민 중이라고 했었는데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그녀가 무엇을 하든 행복하기를 응원했다.


투어 버스를 타고 오후 내내 카파도키아로 달렸다. 오후엔 버스에서 자꾸만 잠이 와서 가이드님의 설명을 거의 듣지 못했다. 그리고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불편한 쪽잠을 연이어 자다 보니 피곤함이 배가 되었고, 몸도 너무 힘들었다.


저녁 즈음 카파도키아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은 후, 내일 새벽에 있을 열기구 투어 안내를 들었다. 새벽 5시에 호텔 로비에서 모인다고 했는데 내일 기상 상태가 좋아야 한다고 했다. 일기 예보엔 비가 온다고 되어 있으나 기상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며 일단 모인다고 했다. 하루 종일 이동하느라 진이 빠진 룸메이트와 난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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