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 두 번째 날이다. 그래도 어제 한번 투어 받아봤다고 여유롭게 집합 장소에 나가 수신기를 능숙하게 체크하고 가이드님께 혼자 여행 왔다며 말을 걸어 보기도 했다.(대부분 일행과 함께 오는데 혼자 오니 중간중간 자유 시간에 좀 외롭기도 해서 가이드님과 대화하고 싶었다.) 다행히 가이드님은 어제와 같이 열정이 넘치시고 매우 친절하신 분이었다.(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온 나를 잘 챙겨주셨다. 참 고마웠어요.) 오늘은 투어인원이 열댓 명이었기에 어제와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으나 또 새로운 기대감이 생겼다.
아침부터 비가 올 것 같이 흐렸다. 난 조그마한 우산이라도 준비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이미 투어가 시작되었기에 그냥 가기로 했다. 비가 많이 오면 우산 하나 사자라는 생각과 함께.
오늘은 크게 궁전 2개를 관람 예정이다. 오스만 제국 건국 시기부터 약 400여 년간 술탄의 거주지였던 톱카프 궁전. 또 하나는 오스만 제국 후기에 지어진 돌마바흐체 궁전. 술탄의 거주지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나라 왕의 거주지와는 또 완전히 다를 모습에 시작부터 기대감에 가득 찼다.
톱카프 궁전 입구
동화책에서나 봤던 톱카프 궁전의 입구. 티켓을 저렇게 놓고 함께 사진을 찍으면 혹시 나중에 티켓을 잃어버려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는 가이드님 말에 얼른 찍어 보았다. 왕의 궁전이라 아침부터 관광객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줄을 서서 관람을 할 정도였다.
톱카프 궁전은 가이드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궁전과는 다르게 소박한 편이라고 한다. 오스만 제국 초기 술탄은 선정을 펼치며 백성들을 위해 궁전을 소박하게 지었다고 한다. 궁전내부는 값비싼 그림이나 가구가 아닌 온통 모자이크로 뒤덮여 있었는데 난 그 화려함에 넋을 잃고 말았다. 기하학적 문양이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개성과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는데 이것이 궁전의 품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사실은 술탄 방 앞에는 수도 시설이 되어 있었는데 술탄이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내용을 듣지 못하게 물을 틀어놓았다고 한다.(이 수도시설을 관리하는 사람은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이었다.)
궁전 곳곳을 둘러본 후, 다음 코스로 가는길에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터키 사람들 중에는 우산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가이드님이 이 곳 비는 부슬비처럼 내리다 말 다를 반복하는 게 잦아서 그렇다고 하셨다. 우산 쓰기에도 뭔가 애매한(?) 그런 비였다. 가이드님은 비 내리는 이스탄불도 너무 좋다며 음악을 한 곡 틀어주셨는데 그걸 들으며 걷는 길이 참 낭만적이었다. 비 오는 날 밖에 나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였는데 이곳에 여행자로 오니 그냥 모든 것이 좋았다.
우리는 오리엔트 특급열차 종착역, 유라시아 해저터널을 지나 아시아로 넘어가서 점심을 먹었다. 후식으로는 터키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한 돈두르마를 맛봤다. 유명한 피스타치오 맛을 먹었는데 그냥 맛은 보통이었다. 뭔가 상큼한 맛을 고를걸하는 생각이 들었다.(로마에서도 유명하다는 아이스크림을 먹어봤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맛이었다. 그냥 더울 때 먹는 아이스크림이 제일 맛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지.) 그 후 미흐리마 술탄 사원을 잠시 들렀는데 약간 얼었던 몸이 녹으면서 나른함이 몰려왔다. 점심 후라 배가 불러서 살짝 졸리기도 했는데 열정적으로 설명하시는 가이드님께 약간 죄송했다. 하지만 피곤한 일정 중에 약간이나마 쉴 수 있어서 다음 일정이 훨씬 가뿐해졌다. 드디어 돌마바흐체 궁전을 보러 갈 시간. 우리는 보스포루스 페리에 탑승했다.
돌마바흐체 궁전
바닷바람을 맞으며 도착한 돌마바흐체 궁전. 오스만 제국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화려함의 극치이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본 따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정원부터가 참 아름답고 예뻤다. 내부에 들어서니 값비싸 보이는 카펫, 거대한 샹들리에, 그림, 동양의 도자기 등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볼거리가 가득했다. 이 모든 것들을 마련하기 위해 그 시대 백성들은 얼마나 또 힘들었을까? 화려함 뒤에 감춰진 어두운 면이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론 씁쓸했다. 외척의 세력을 방지하기 위해 술탄의 아내는 대부분 노예였다는 것과 술탄의 안위를 위해 바닥을 나무로 만들어 누가 밟으면 삐그덕거리는 소리를 나게 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저녁무렵이 되어 투어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오늘 이틀 동안 하루 종일 걸으면서 투어 했더니 온몸이 피곤했다. 빨리 자고 싶어서 저녁은 마트에서 사다 놓은 과일로 대체했다.
내일부턴 진정한 자유 여행 기간이다. 이스탄불에 오래 머물고 싶어 일정을 일주일 정도 넉넉히 잡아놨었다. 투어에서 얻은 정보 덕분에 이제는 혼자서도 이스탄불 시내를 돌아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른 나라에 오니 배워야 할 게 많았다. 트램 탈 때 교통비를 어떻게 지불하는지, (교통카드인 카르트를 보증금 내고 사서 충전하면 된다.) 공중 화장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건지, (대부분 유럽에선 돈을 받았다. 물가 비싼 스위스에선 2500원 내고 화장실을 이용했다.) 식당에서 팁은 내는 건지(대부분 팁을 내더라. 한국은 팁 문화가 없어서 괜히 돈을 이중으로 내는 기분이 들었으나 차차 적응해나갔다.) 등 나라가 달라질 때마다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했다. 특히 돈은 단위부터가 달라 이게 큰돈인지 아닌지 감이 안 잡혀서 쉽사리 뭘 사는 게 망설여졌다. 그래도 터키는 다른 유럽 국가보다 물가가 비교적 싼 편이라 맛있는 건 다 사 먹어보기로 했다.(이 당시 1리라가 약 500원 정도였다.)
가족들에게 그간의 사진들을 보내 놓고 내일의 일정을 대충 검색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내일부턴 발길 닿는 대로 가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