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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품여자 Apr 23. 2021

1. 터키 이스탄불(4)

1-4. 진짜 자유 여행 시작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3월 중순인 지금 이스탄불은 우기라 이틀에 비가 한 번꼴로 내려 맑은 하늘을 보기 어렵다고 했는데 진짜 그렇다. 기온도 좀 더 내려간 것 같았다. 3월이라 얇은 패딩 하나만 챙겼는데 더 두꺼운 걸 챙겨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식을 간단히 먹고 오늘은 우산을 들고 길을 나섰다.


고고학 박물관

우선 어제 눈여겨봐 두었던 숙소 근처 고고학 박물관에 갔다. 여행 전부터 전공을 살려 역사 여행을 하기로 했던 터라 박물관에 무조건 많이 가보자고 마음먹었었다. 국의 박물관은 어떨지 궁금한 마음 가득 안고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는 한국 박물관과 별다를 게 없었다. 선사시대 유물은 많이 봤던 거라 오히려 반갑기까지 했다. 약 2시간 정도 돌아봤는데 뭔가 유럽과 이슬람 문화의 분위기가 나는 몇몇의 유물 말고는 특이할만한 게 없었다. 아마도 이건 투어가 없어서 유물의 그 깊이를 알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한국어 팜플렛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후 난 박물관에 가면 돈이 좀 들어도 설명 수신기를 대여하거나 영어 투어 가이드라도 들으려고 노력했다.(개인적으로 고대 시대 박물관은 그리스 크레타 섬의 고고학 박물관, 아테네 시내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가장 좋았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더 많이 내린다. 우산을 들고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어디로 가볼까 하다가 바로 위쪽에 있는 톱카프 궁전 앞 기념품 샵에 들어갔다. 각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기념이 되는 걸 사보고 싶었는데 여러 고민 끝에  엽서를 선택했다.(이건 장기 여행이라 짐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많은 엽서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성 소피아 성당과 소박하지만 화려한 모자이크 타일 벽이 매력인 톱카프 궁전을 골랐다. 그리고선 가까운 귤하네 공원으로 걸어갔다.

귤하네 공원

비 오는 공원에서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여행의 기쁨을 온몸으로 계속 만끽하려고 했었는데, 세찬 비바람 덕분에 젖어버린 옷과 신발은 날 그대로 숙소로 안내했다. 원래 공원 안쪽에 있는 노천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셔보려고 시도했지만 그냥 가까운 숙소  케밥집에케밥과 아메리카노를 사서 숙소로 왔다. 


고고학 박물관 티켓, 케밥, 커피, 엽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케밥을 먹었다. 고기 냄새가 너무 났지만 먹다 보니 익숙해진 데다 배고파서 그냥 다 먹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이번엔 어딜 가볼까 하고 검색도 하고 여행책도 넘겨보았다.


'성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 야경을 보러 가 볼까? 추우니까 실내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없을까?'


열심히 검색한 끝에 테라에서 야경이 한눈에 보인다는 카페를 찾았다. 오랜 시간 그곳에 있고 싶은 데다 그 순간을 기록해 놓고 싶어 일기장을 챙겨 나왔다. 숙소에서 나오니 비가 그쳤다.

추위가 조금 누그러져 천천히 걸으며 트램과 술탄 아흐멧 광장도 멀리서 한참 바라보았다. 내가 외국에 혼자 와 있다니... 그냥 내 자신이 대견서 자꾸 웃음이 났다. 한편  길에서 터키 남자들(2명 이상의 무리들)앞을 지나갈 때마다 'Korean?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통에 소리 나는 쪽으로 계속 고개를 돌렸는데, 나중에는 그냥 시크하게 한번 쳐다보거나 아님 듣고도 모른척하며 지나가게 되었다.


카페에 도착해서 테라스에 가고 싶다고 하니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며 5층으로 가라고 했다. 레는 맘을 안고 엘리베이터로 갔는데 이탈리아에서 온 것 같은 느낌의 아주머니도 있었다. 곧 우리는 5층에 도착했.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이 안 열리는 게 아닌가! 난 무척 당황했다. 그 아주머니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갇힌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1층을 눌렀는데 다행히도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1층에 다시 와서 카운터에 물어보니 수동이라 손으로 힘껏 열어야 한단다. 이상하다... 아까 다시 내려왔을 때 1층에선 그냥 열렸는데..(나중에 생각하니 1층에선 타는 사람들이 있어 그 사람들이 열어준 것 같다.) 암튼 그 아주머니는 그냥 카페 밖으로 나가버렸고, 난 혼자 용감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올라가 손으로 문을 열고 라스석에 도착했다. 오 마이갓! 흡연석이다... 오래 있진 못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있어보자 싶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홍차와 딸기 타르트를 주문했다. 홍차 잔에 손잡이가 없는 것은 뜨거울 때는 손을 데일 수 있으니 먹지 말라는 일종의 배려라고 들었는데 약간 추웠던 나는 아랑곳없이 뜨거운 홍차를 연신 홀짝였다. 창밖으로는 블루 모스크가 한눈에 들어왔고, 흐린 구름 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카페 테라스에서 찍은 야경

해가 지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유럽 와서 해보고 싶었던 카페에서 차마시며 창밖 풍경 바라보기를 하고 있어 참 행복했다. 그냥 그 순간의 모든 것이 좋았다.(담배 냄새만 없었다면 더 좋을뻔했겠지만) 내가 이 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한국에 잘 돌아갈 수 있을까? 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큰 맘먹고 온 이 여행을 후회 없이 잘 보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 문득 내일은 성 소피아 성당 내부를 한번 더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스탄불 구시가지 이곳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우리나라의 명동과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탁심 시내를 둘러보는 건 포기했다.


성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 야경

성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카페에서 내려왔다. 어둠에 휩싸인 두 건물은 적당한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공원의 한적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참 아름다웠다. 이 모든 것을 휴대폰 사진기로는 다 담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숙소로 돌아와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투어에서 들었던 성 소피아 성당에 대한 내용들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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