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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은 늘 목숨을 건다.

그래야 하는 자리입니다.

“이봐 정실장, 어떻게 되었어? 빨리 보고해 봐”

“네, 각하. 그게..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


대통령 비서실 정민석 실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통령 앞에서 말하고 있었다. 그는 국회의원 때부터 대통령 임기 내내 곁을 지켜온 대통령의 심복이었다. 야당의 공격에도 미국 경제위기 때도 보고하며 목소리가 떨린 적은 없던 그였다. 하지만 오늘 보고는 달랐다. 자신을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 10단이라고 생각했지만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보고를 받은 대한민국 24대 대통령 백현승은 한숨을 쉬었다. 2047년 4월, 봄빛 가득한 용와대 앞 정원은 아름다웠다. 대통령의 깊은 한숨과는 어울리지 않는 배경이었다.


“정실장, 난…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자신에게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을. 정실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입밖에 낼 순 없다.


“지금은,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여당 대표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만 아무 말씀 없으셨습니다.”


정실장의 말을 들은 대통령은 눈을 감았다. 지난 5년간 대통령으로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자신의 전임인 23대 대통령이 취임했던 2037년 5월 9일. 이로부터 한 달 전 22대 대통령의 사형 집행식이 있었다. 전직 대통령의 사형 집행이라니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2024년 이후 거세진 인공지능의 발전 때문이었다. AI는 전 세계의 지적 노동자들에게 그야말로 재앙과 같은 충격을 주었다. 수많은 일자리가 AI로 대체되었다.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 인류는 AI를 다방면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정말 여러 가지 분야에 이용되었지만 모두가 원하는 바는 하나였다. ‘인공지능이 인류를 발전시키는 것’

인공지능은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학습하고 최적의 미래를 설계해 나갔다. 인간의 미래를 그리는 것에 있어 ‘정치’ 또한 인공지능의 조언으로부터 피해 갈 수 없었다. 개인의 사리사욕 없이 인간의 정치를 고도화시키기 위해 인공지능은 다양한 조언을 내놓았다.


AI가 생각하는 정치의 문제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정치인 개인의 욕망과 공공의 이익과 충돌은 늘 가장 먼저 언급되는 문제였다. 인공지능은 정치인이라는 직업을 없애고 인공지능 간 논의와 합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로 다른 입장을 반영한 복수의 AI가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면 최고로 합리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은 현직 정치인과 정치학자들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인공지능의 두 번째 주장은 직접 민주주의였다. 복수의 인공지능이 만들고 관리하는 실시간 온라인 투표 시스템을 24시간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가동한다. 그러면 국가의 주요한 의사결정을 전 국민이 즉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논의가 시작된 2024년에도, 백현승 대통령이 집권한 2042년에도 대한민국은 전 세계 최고의 IT인프라를 가진 IT강국이었다. 국민들은 IT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정치 참여에 대한 열망도 높았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에게 이 주장은 첫 번째 주장만큼 끔찍한 것이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빼앗길 수 있었다. 정치인들은 끈질기게 인공지능의 신뢰도를 물고 늘어졌고 이 주장마저 막아낸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들고 나온 세 번째 주장까지 모조리 거부하는 것은 여야 정치인 모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인공지능의 직접 정치’와 ‘국민들의 직접 정치’가 모두 무산되자 인공지능이 내세운 절충안은 대통령제도의 일부 개선이었다. 

인공지능은 현재 대통령제 최대의 문제점으로 ‘먹튀’가 가능한 점을 꼽았다. 대통령 선거까지는 공약을 남발한다. 당선된 뒤 공약을 실행하지 않아도 대통령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사기죄와 유사하나 처벌이 없었다. 반면 당선된 자가 대통령으로서 가지는 권한은 너무나 막강했다.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는 직접적으로 4천여 개, 넓게는 1만 개에 달했다. 정부 주요 보직 전체에 인사권을 행사하여 대한민국 전반을 자신의 의지로 다스릴 수 있었다. 전쟁이나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고 국회의 법률안을 거부할 수 있었다. 재선은 불가능하나 자신의 임기중 성과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지지 않았다. 그 책임은 다음 대통령과 정당이 지는 구조였다.


인공지능은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공약을 남발하여 대통령이 된 후 자신의 마음대로 국정을 운영한다, 불법적 부분은 임기 후 기소를 당할 수 있지만 대통령으로서 업무수행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지 않는다. 이런 구조라면 어떤 대통령도 책임감을 가지고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 인공지능의 진단이었다. 지난 여러 선거기간 동안 수많은 공약에 속아온 대중들은 인공지능의 진단에 환호했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을 존속시키되 대한민국 정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인공지능이 제시한 것은 바로 ‘대통령이 임기말 국정에 대한 평가를 국민들에게 받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절차는 다음과 같다. 대통령 임기종료를 2달 앞둔 시점에 전 국민은 ‘대통령 성과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투표용지에는 0점부터 100점까지 자유롭게 점수를 적게 되어 있다. 100점은 탁월하다는 의미였고 0점은 매우 부진을 뜻했다. 투표가 끝나면 점수를 합산, 투표인원수로 나누어 평균을 산출한다. 평균 점수가 80점 이상인 경우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가 가능하다. 전 국민이 80점 이상을 준 대통령이라면 재선에 나서면 필승이다. 60점 이상인 경우 퇴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온건히 다 받을 수 있었다. 40점 이상인 경우 퇴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중 상당 부분을 받지 못했다. 20점 미만인 경우 대통령은 차기 대선 전 사형이 집행된다.

인공지능의 이 같은 제안은 격렬한 논쟁을 불렀다. 대한민국은 헌법으로 대통령의 중임을 막고 있었다. 따라서 국민들의 높은 평가를 등에 업고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할 수 있다는 것은 현직 대통령에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될 수 있었다. 반면 ‘매우 부진’ 평가를 받으면 사형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은 대통령 개인의 천부인권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것과 개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전혀 다른 이슈라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거셌다. 대통령에게 재선은 큰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는 점, 대통령이 폭정과 실정을 거듭했을 경우 현재 견제장치가 없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방법이라는 주장이었다. 전 국민에게 평균 20점 미만을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설사 실제로 받았다면 이는 믿고 맡긴 국민들에 믿음을 완벽하게 저 버린 것이었다. 대통령이 가지는 막강한 권한을 생각하면 이 정도 견제장치가 있어야 열심히 할 것이다. 대통령은 전쟁을 선포할 수 있다. 잘못된 지시로 수많은 국민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참사를 막을 최종 책임도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게 있었다. 이러니 자신의 목숨을 걸고 수행해야 하는 직무가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하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하는 자리가 아닌, 스스로 나서는 자리인 만큼 왕관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고 찬성론자들은 주장했다.


한동안 대한민국은 이 이슈로 떠들썩했다. 전 세계에서도 한국의 이 독특한 실험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성난 대중들의 압박에 정치권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여기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공약이행률이 큰 영향을 미쳤다. 역대 대통령들의 공약이행률은 해를 거듭할수록 떨어지고 있었다. 낮은 공약이행률은 인공지능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사실 제도를 잘 이용하면 대통령을 계속할 수도 있었고 이는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제도를 도입할 때만 해도 실제 사형이 집행되리라 생각한 정치인은 없었다. 그러나 22대 대통령의 국민 평가는 차가웠다. 투표결과가 공개되자 22대 대통령 서도희는 18점을 받았다. 출구조사 예상은 30점이었기에 충격은 매우 컸다. 임기중 서도희 대통령은 친인척 비리, 부동산 투기로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경제는 갈수록 망가졌고 외교는 참사 수준이었다. 대통령의 공약이행률은 역대 최저였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이는 평가투표에 결과로 반영되었다. 최악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서도희 대통령은 결과를 받고 눈물로 호소했다. 또한 납득할 수 없다며 재심을 요구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주관하는 투표에 실수는 없었다. 서도희 대통령의 사형은 고통이 전혀 없고 편안히 죽는 것으로 알려진 질소 캡슐을 사용해 이루어졌다. 모든 과정은 전 국민이 보는 앞에 생중계되었다.


실행될 리 없다고 생각했던 대통령 사형이 집행되자 정치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취임식에서 23대 박동호 대통령은, 22대 서도희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모두에게 신임받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전임자의 죽음은 그에게도 죽음의 공포를 주었다. 임기 말 투표결과에 따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박동호 대통령은 취임식 직후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저 대통령 박동호는 오늘 이후로 천애 고아가 될 것임을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부모님과 처, 자식과는 당선 직후 이미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 임기 동안 저는 직계존비속을 비롯하여 그 어떤 친인척과도 교류가 없을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와의 관계를 강조하거나 제 친인척과의 관계를 말하며 사적 이익을 취하려는 자가 있다면 분명한 사기이고 거짓입니다. 절대로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조금이라도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자가 있다면 지체 없이 대통령 비서실로 연락해 주십시오. 저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깨끗한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이후 박동호 대통령은 눈부신 행보를 이어갔다. 자기 자신부터 일가친척과 단절을 선언한 대통령을 보며 공무원들도 전례 없는 기강을 보였다. 공무원 비리는 눈에 띄게 줄었다. 불필요한 규제를 해제하고 어려운 외교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장관 채용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우수한 인재를 모으는데 애썼다. 부동산, 경제, 국방, 교육까지 모든 곳에서 역대 최고의 행정부라는 찬사를 받았다. 외신도 연일 극찬을 거듭했다. 대한민국은 박동호 정부 3년 차에 국민소득 15만 불을 넘어서며 세계 5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외신은 대한민국 약진의 원인으로 대통령 평가제도를 꼽았다. 서도희 대통령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각성했다는 것이었다.


박동호 정권 말 국민들의 대통령 지지율은 80%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재선은 확실해 보였다. 실제로 많은 국민들은 박동호 대통령의 연임을 희망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로 재선을 포기했다. 췌장암 2기 판정을 받고 절대 안정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절대적이었던 박동호에 대한 지지는 같은 당에서 경선을 통과한 백현승 후보에게 이어졌다. 어느 조직이든 아무 말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중간은 가는 사람들이 있다. 백현승의 정치인생이 그랬다. 국회의원 선거 때도, 대통령 경선 때도 백현승이 살아남은 것은 자신이 잘해서가 아니었다. 주변의 스캔들, 사건사고로 경쟁자들이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주변 사람들과 적을 만들지 않고 납작 엎드려 있다 보니 대통령 후보까지 온 것이었다.


대통령에 출마하고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은 좋았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어 자리에 앉고 나니 이 자리는 그리 즐거운 자리는 아니었다. 언론은 늘 대통령을 비난했고 결정해야 할 사안들은 무거웠다. 백현승은 최선을 다했지만 박동호가 만든 대한민국의 성장세는 눈에 띄게 꺾이고 있었다. 너무나도 잘했던 선임자와의 비교는 백현승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임기를 한 달 남기고 드디어 ‘대통령 성과에 대한 국민투표’가 시작되었다. 투표 당일 오전, 정민석 실장에게 백현승 대통령은 대통령 지지율 최종보고를 받은 것이었다. 25점. 사형을 집행하는 20점에 근접한 숫자였다. 몇 시간 뒤 투표가 종료되면 자신은 죽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느끼는 박동호와 자신의 격차는 컸던 것이다.

백현승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생각했다. 취임 후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초기에 부동산 상승을 잡지 못한 것? 북한과 적대적 관계를 계속한 것? 박동호 행정부 시절의 유능한 장관들을 내치고 자신의 측근을 기용한 것? 지금 보면 잘못한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보였다. 내 손으로 내 목을 조른 것이었구나. 백현승은 탄식했다. 이미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비서관에게 물티슈를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예전과 달라 보였다. 애도하는 눈빛처럼 느껴졌다.

백현승은 창 밖의 봄 햇살을 바라보며 제발 그때 잘못한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권력의 곁에 꼬이는 간신들을 내치고, 국민을 생각해야 했다. 내가 좀 더 강하게 개혁을 했어야 했다. 그때 그 결정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각하, 각하! 괜찮으십니까 각하”


백현승은 눈을 떴다. 자신이 대통령실 소파 위에서 잠든 모양이었다. 옆에는 비서실장 정민석이 자신을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백현승은 몸을 일으켰다. 와이셔츠는 속옷까지 땀으로 젖어있었다. 얼굴에서도 식은땀이 가득했다.


“정실장.. 오늘이 며칠이지?”

“각하, 취임하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어제 취임식 때문에 피곤하셨던 모양입니다. 30분 뒤 미 대사 접견이 예정되어 있고요”


백현승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정말이다. 2042년 5월 11일. 잊을 수 없는 취임식 다음날이었다. 백현승은 천장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임기말까지의 꿈을 꾼 것이다. 몇 시간 뒤면 사형이 결정되는 순간까지의 꿈. 땀을 너무 흘린 탓인지 5월의 낮기온이 차갑게 느껴졌다. 백현승은 몸을 일으켰다. 


“정실장, 셔츠를 갈아입어야겠어. 그리고, 대통령 인수위원회 보고서 다시 봐야겠어. 장관 인선안도 다시 가져와요. 당에서 뭐라고 하든 간에. 좀 수정할 테니”


정실장은 당황했다.


“각하, 어제 다 확인하신 사안입니다. 갑자기 왜…”


백현승 대통령은 정실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살아야겠어요. 앞으로 5년은 목숨을 걸어야 할 것 같아요.”


대한민국 24대 대통령은 세수를 하러 화장실로 향했다. 좋은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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