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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ㅉㅉ'의 의미

A과장님은 행복했을까요?

P과장과 C과장은 생생은행의 6년 차 동기이다. 생생은행은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금융회사로 연공서열을 철저히 중시하는 조직이었다. 공채로 입사하고 6년 만에 과장 승진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동기 20명 중 가장 빠른 승진을 한 P과장과 C과장은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30대 초반에 과장이라니 임원자리는 따 놓은 것 같았다. 출입 게이트를 지나면 사람들은 선망의 눈길로, 혹은 질투의 눈길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금융사에 입사해서 최연소 승진이라니. 엘리트라는 건 날 말하는 것 아닐까. P과장과 C과장 모두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P과장은 인사팀, C과장은 감사팀에 근무하고 있었다. 모두 회사 내에서 힘 있는 조직이고 일반직원들이 두려워하는 조직이다. 두 사람은 30대, 미혼, 남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덕에 동기들 중에서도 빨리 친해졌다. 


P과장은 종종 C과장에게 담배를 태우자며 회사 옆 공원으로 불러내곤 했다. 가을바람이 선선해진 어느 오후, 평소처럼 P과장과 C과장은 공원 근처 골목에서 전자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 죽겠다 정말. 전에 말한 그거, 위에서 지시가 왔어. 결국 하래”


P과장이 툴툴거리며 C과장을 바라보았다. C과장은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아 그 희퇴? 희망퇴직? 진짜 하래? 이야.. 요즘 어렵다 어렵다 하더니만 무슨 일이냐.  결국 희퇴까지 하는구먼 하 참”


“위에서는 이번에 부진인력들 싹 솎아내고 싶은 거지 뭐. 위에서 전략을 잘 짜서 실적을 올릴 생각을 해야지. 무식한 방법으로 비용을 줄이려고만 하니…”


P과장이 툴툴거렸다. 인사팀은 회사에 해가 될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단 회사 측 직원들끼리는 종종 회사 뒷담화를 했다. 인사, 노무, 감사 직원들도 결국 직원이었다.

C과장이 말했다.


“노조가 가만 안 있을 텐데.. 조건은 좀 어떻데? 괜찮아?”


“지금 인건비 시뮬레이션 돌리는 중인데 아마 퇴직금 + 2억 정도 줄 것 같아”


“뭐야, 우리 연봉 생각하면 별로인데?”


C과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생은행의 연봉은 은행권 중상위권 수준이었다. 그리고 자녀 대학등록금 지원제도를 생각하면 나이가 많은 직원들은 2억을 더 받는 것의 메리트가 크지 않았다. 악착같이 붙어있는 편이 더 좋았다.


“맞아 이번 희퇴는 타깃들이 정해져 있어”


P과장이 전자담배를 하나 더 끼우며 말했다. C과장은 대번에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졸 형님들이 대상이구나?” 


P과장은 가볍게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회사에서는 이 형님들을 비용으로 보니까…”


P과장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공원에서 바라보는 가을하늘은 참 예뻤다. P과장은 A과장을 생각했다. P과장이 신입사원 시절, 같은 팀에 있던 A과장이 있었다. 40대 후반의 A과장은 회사를 30년 넘게 다니고 있는 화석 같은 사람이었다. 아직까지 과장인 것이 처음에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는데 나중에 동기에게 탕비실에서 듣고 알았다. A과장은 고졸 출신 사원이라고. 처음에 계약직으로 들어왔다가 일을 잘해서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과장까지 된 사람이라고. 그마저도 호칭만 과장일 뿐 급여는 훨씬 적다는 소문도 있었다. P과장은 인사팀에 오고 난 후 A과장의 연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같은 나이대의 대졸사원대비 연봉이 작았다. 

P가 신입사원으로 배치받고 팀장과 회의실에서 미팅하던 날, 팀장은 P에게 이렇게 말했다. 


“P 사원, 우리 팀에 A과장님이라고 있어. 아까 인사했지? 이분 아는 것도 많고 정말 열정적인 분이시니 잘해드려. 많이 물어보고. 아마 팀장인 나보다 업무 잘 알 거야. 허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사하여 30년 넘게 한 회사에 있었으니 A과장은 은행의 거의 모든 업무를 꿰고 있었다. 입사와 퇴사가 반복되며 사람이 계속 바뀌는 은행이기에 장기근속자의 업무 히스토리는 곳곳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P과장은 일도 열심히 하고 아는 것도 많은 A과장이 왜 호칭과장인지 궁금했다. 


“고졸이니까.” 


술자리에서 선배에게 물어봤을 때 대답은 명료했다.


“음.. 선배님 그래도 회사는 업무를 잘하는 게 중요하지 않나요? 이게 직원들 사기에도…”


선배는 이상하다는 듯 P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봐 P군아. 너도 명문대 힘들게 공부해서 갔잖아? 노력한 만큼 대우받아야지. 안 그러면 불공평한 거잖아? 그리고 명문대 경영학과 나와서 법이랑 재무를 공부한 너랑 고졸 과장님이랑은 같을 수가 없지. 임원들도 그렇게 볼 거야”


신입사원 P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시 A과장은 40대 후반임에도 엄청난 열정으로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했다. 은행 계좌 모집 할당이 내려오면 혼자서 500좌씩 만들어오곤 했다. 모집 계좌수로 줄을 세우면 A과장의 활약으로 P의 팀은 늘 1위였다. 팀장은 A과장에게 늘 고맙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승진 명단에 A과장의 이름은 늘 없었다.


P가 신입사원에서 과장이 되는 동안 A과장은 50대 중반이 되었다. 곧 임금피크제가 적용될 터였다. 가뜩이나 작은 월급인데 매년 10%씩 깎인다니, A과장은 괜찮을까. P는 걱정이 되었다. 인사업무에 감정은 배제하라는 말을 인사팀에 오고 수천번은 들었다. P는 스스로를 다잡았다. ‘이건 일이다.. 이건 일이야..’ 


며칠 뒤 전사 게시판에는 희망퇴직 공고가 떴다. P과장은 내심 원치 않았지만 이번 희망퇴직 담당자로 공고에 기재되었다. P과장의 예상대로 희망퇴직 신청은 저조했다. 노조에서는 희퇴를 할 거면 더 좋은 조건을 내라는 성명서를 냈다. P과장은 인사담당 임원에게 매일 퇴직 신청 실적을 보고했다. 임원은 조건을 더 좋게 할 수는 없지만 퇴직률을 올려보라고 P과장을 다그쳤다. 바쁘게 살아오며 많은 일을 해 온 P과장이지만 이 일은 속된 말로 현타가 몰려왔다. 내가 뭐라고 남에게 나가라 마라 말을 한단 말인가. P과장은 집에서 술을 먹어야 잠을 잘 수 있는 날이 많아졌다. 


퇴직 신청율이 저조하자 결국 인사팀장은 P과장에게 고연차 직원들을 대상으로 개별 면담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P과장은 정말 하기 싫었지만 리스트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리스트 높은 곳에 A과장도 있었다. P과장은 회사가 결제해 준 은행본점 밖 공유오피스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대상직원들을 불렀다. 인사팀에는 관련업무에 대한 가이드가 있었다. 회사에 그동안 큰 공헌을 해 준 것에 감사를 표한다, 회사 사정이 어려움을 설명한다, 지금 조건은 다시 오기 어려운 좋은 조건임을 설득한다 따위의 것이었다. 


그러나 가이드는 가이드일 뿐 한 명씩 면담을 해 보면 고성이 오가거나 눈물바다가 되었다. P과장은 사업부서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을 마구 느꼈지만 참았다. 인사팀은 고속승진의 보증수표인 곳이다. 주어진 일만 잘하면 승승장구할 수 있다. 내가 승진하려면 지금은 어떻게든 이분들을 나가게 해야 한다. P과장은 이를 악 물었다.

그러던 차에 A과장의 차례가 되었다. P과장은 평소보다 더 긴장했다. 한때 같은 팀이었던 사람이다.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 


“P과장, 오랜만입니다. 어려운 일 하느라 고생이 많네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A과장은 나지막이 인사를 건넸다. 표정은 밝게 웃고 있었지만 P과장에게는 A과장이 무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A과장님, 잘 지내셨어요? 연락드리게 되어 송구합니다.”


“아닙니다. 이해해요. 인사 일이 참 힘들죠. 이런 일은 특히…”


P과장은 아니라고 답하며 앵무새처럼 설명을 해 나가려 했다. 그때 A과장이 먼저 말했다.


“저는 이번에 희망퇴직을 신청하려고요. 하하. 서류는 뭘 쓰면 될까요?”


“아… 과장님. 쓰신다고요?”


“네 P과장. 그동안 고마웠어요. 마지막까지 신세를 지내요 하하”


잠시동안 P는 멍해졌다. A과장은 아이가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임금피크가 시작되더라도 대학등록금을 받는 게 유리하다. 대체 왜? P과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괜찮으시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기계적으로 P과장은 서류를 내밀었다. A과장은 힐끔 읽어보더니 사인을 해 나갔다. 


“A과장님, 감사합니다…”


“어허 감사라니요 무슨 말이에요. 회사가 마지막까지 위로금도 주고 하니 제가 감사하죠”


“그.. 그래도…” 


A과장은 밝게 웃으며 괜찮다고 계속 말했다. P과장은 전혀 괜찮지 않다고 느꼈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희망퇴직자가 정해졌다. 정해지자 은행은 빠른 속도로 이들을 정리했다. 잔여휴가를 소진시키고 바로 퇴사 처리가 진행되었다.

감상에 젖어있던 것도 잠시, P과장은 일에 파묻혀 지내느라 A과장 걱정은 금세 잊었다. A과장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앗 A과장님, 휴가 중에 어쩐 일이세요. 퇴사 처리는 더 하실 것 없습니다. 챙겨드릴 것 있으실까요?”


“아 P과장 그건 아니고.. 제가 부탁이 있어서요. 좀 특이하지만”


A과장의 말대로 그의 요청은 특이했다. A과장은 자신의 마지막 출근일에 은행 본점 로비에서 전 직원에게 스타벅스 케이터링 커피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P과장은 순간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았다. 아메리카노가 4,100원인데 은행 직원이 대충 2천 명은 될 텐데.. 800만 원 이상 회사에 쓰고 가겠다는 의미였다. 아니 뭘 그렇게까지 하시느냐, 친한 분들에게 감사인사나 하고 가시면 되지 않겠느냐는 P과장의 물음에 A과장은 허허 웃을 뿐이었다. P과장은 이 내용을 인사팀장과 총무팀장에게 알렸다. 회사에 오래 다닌 두 사람도 A과장과 인연이 있었다. 그렇게 초유의 ‘퇴직감사 커피 돌리기’가 A과장의 퇴사일에 은행로비 구석에서 준비되었다.


생생은행의 로비는 넓어서, 사실 테이블 하나 가져다 놓고 커피를 주는 것 정도는 티가 안 날 것 같았다. 인사팀장이나 총무팀장도 그런 측면에서 인가한 것으로 보였다. 시간이 흘러 A과장의 퇴사 당일이 되었고, 근처 스타벅스 직원들 몇이 나와서 아메리카노 보틀을 테이블 위에 설치했다. 출근하던 직원들은 호기심에 줄을 섰고 영문을 모른 체 신이 나서 커피를 받아 올라갔다. P과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후 사정을 아는 P과장은 커피를 받으면서도 과연 이 큰돈을 이렇게 쓰시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 헷갈렸다.


자리에 앉은 P과장이 회사 전산망에 접속하자 자신에게 온 메일이 보였다. A과장의 메일이었다. 수신인이 표기되지 않은 것을 보아 숨은 참조로 지인들에게 메일을 보낸 모양이었다. 원래 퇴사하는 분들이 이렇게 메일을 보내곤 했다. P과장은 본문을 읽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30년 넘게 이 은행에 있었던 것은 제 인생에 큰 행운이었습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생생은행에 입사하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을 줄 몰랐는데 도와주신 덕분에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의 의미로 스타벅스 이동 매장을 로비에 두었습니다. 사원증을 보여주면 커피를 드릴 겁니다. 맛있게 드세요.

혹시 저희 집 근처를 지나게 된다면 연락 주시면 반갑게 뵙겠습니다. 반포 히드라울트라 뮤탈디바우러 1단지 근처 오시면 연락 주세요. 청약이 되어서 이번에 이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은행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공헌해 주시기 바랍니다. ㅉㅉ 

20xx 년 0월 0일 영원한 생생은행 과장 A올림"


P과장은 A과장의 퇴직서류를 기억했다. 분명 집 주소는 상계 어딘가였다. 반포 히드라 1단지는 국민평형이 70억을 넘었다고 신문기사가 나오고 있는 강남 대장주 아파트였다. 거기가 되었다고? 분양가 20억인데 매매가가 70억이라 건국 이래 최대 로또라던 그 아파트를? 

P과장은 멍했지만 한편으로 800만 원 걱정을 하고 있던 자신이 겸연쩍게 느껴졌다. A과장님 잘 되었네요 행복하세요.. P과장은 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나 잠시 후 인사부 임원은 인사팀장과 P과장을 호출했다. 대단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그는 A과장의 메일 내용을 가지고 P과장에게 따져 물었다. 상고출신임을 쓰고, 영원한 생생은행 과장이라고 적은 건 승진누락에 대해 회사에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불철주야 공헌하라며 ‘ㅉㅉ’를 적는 건 혀를 차는 것 아니냐고 분노했다. 인사팀장과 P과장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퇴사자가 퇴사 메일에 뭐라고 적을지 인사팀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임원의 분노는 그 뒤로 30분은 더 이어졌다. P과장은 임원의 집이 어디쯤이었는지 생각했다. 경기도 어디 비인기 지역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그의 분노가 이해가 되었다.


A과장의 퇴사 메일은 회사 전체에 크게 이슈가 되었다. P과장의 동기 C과장은 설마 이런 일로 감사팀이 움직이게 될 줄은 몰랐다고 나중에 말했다. 감사팀에서는 임원들의 성화로 퇴사자에게 할 수 있는 제재를 검토했다고 한다. C과장도 야근을 하면서 관련 법규를 찾아보았다. 


‘’상고’ 출신임을 표기한 것은 법적 이슈가 없다. ‘영원한 생생은행 과장’이라는 표기도 사회적으로 일반화된 표현이다. 만약 ‘생생은행의 영원한 과장’이라고 썼다면 다툼의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 중략 ~ 또한 ‘ㅉㅉ’를 쓴 것은 혀를 차는 비웃음으로 해석될 여지는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오타라고 하면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며 이는 은행의 평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는 법무법인의 검토결과를 받고 나서야 감사팀은 물러났다. 


P과장은 C과장과 담배를 태우면서 가끔 A과장을 생각한다. 그의 회사생활은 무엇이었을까. 생생은행의 30년은 반포 히드라로 보상받은 것일까 따위의 생각이다. A과장을 만나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기로 한 P과장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LH 청약홈 앱을 조용히 켜 보며 P과장은 사무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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