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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7시

노비가 노비를 괴롭히는 현실에 대해

E는 엑셀을 밟았다. 이제 막 컬팡 물류센터를 나온 터였다. 새벽 2시, E는 운전석 옆의 에너지 드링크를 마셨다. 원래 컬팡 택배기사는 아무것도 먹거나 마셔서는 안 된다. 화장실을 가면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벽 배송 초기에는 괜찮았다. 아파트건 빌라건 새벽에는 사람이 없다. 마려우면 어디서건 싸면 그만이었다. 화장실을 찾지 않아도 괜찮다는 건 큰 메리트였다. 아 또 있다. 담배를 태우며 일할 수 있는 점도 좋았다. 금연구역이라고 뭐라 하는 경비들도 이 시간에는 없으니까. 


E는 자신이 이렇게 오래 컬팡 택배기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는 지방대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서 품질관리 업무를 맡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회사가 3년 만에 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무원 공부라도 했어야 했는데. 이력서를 여기저기 보내도 뽑아주는 곳은 없었다. 부모님께 손을 벌려 중고 1톤 트럭을 사서 컬팡 기사를 한 것도 취직 전 알바나 하자는 생각이었다. 1톤 트럭은 컬팡 덕분에 중고 판매도 잘 되니까 젊을 때 바짝 일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랬던 게 3년이나 계속될 줄은 몰랐다. E가 간과했던 것은 품질관리 업무 이후 3년간의 공백이었다. 컬팡 기사를 했던 기간은 이력서에 공백으로 남았고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넣기 점점 힘들어졌다. 


컬팡과 같은 새벽배송일은 고되지만 회사 다닐 때보다 벌이는 나았다. 또 사람 스트레스가 없는 점은 큰 장점이었다. 하지만 일에 치였다. 택배상자는 끝도 없었고 컬팡의 관리는 정교했다. 물건을 빠르고 정확하게 배송하지 않으면 어김없이 불이익이 있었다. 컬팡은 배송기사들이 아침 7시까지 배송을 완료하지 않으면 금전적인 불이익과 함께 배송지역을 바꾸는 벌을 주었다. 배송기사에게 배송지역은 가장 중요하다. 자신의 배송지역 정보를 잘 알고 있어야 시간단축이 가능하다. 이를 빼앗긴다면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7시 이전에 배송을 끝내야 했다.


E는 최근 어떤 집 한 곳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정확히 7시 0분에 배송하고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 콜센터와 앱으로 엄청난 민원폭탄을 제기한 것이다. 유치원 아이가 쓸 스케치북 1개 때문에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이 E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뒤로 그 집은 주소를 외우고 특별히 더 신경 쓰려한다. 하지만 E의 구역 루트 중 가장 마지막이었다. 중간에 물건이 많은 날은 늘 7시가 간당간당했다. 




경미는 새벽 6시면 잠에서 깨어났다. 옆에는 유치원생 아들이 곤히 자고 있다. 경미는 결혼 10년 만에 겨우 수도권에 17평 아파트 전세를 얻을 수 있었다. 남편은 중소기업을 다니다 그만두고 지금은 삼서전자의 평택 공장건설현장에서 막노동 중이었다. 주중에는 숙소에서 지내고 주말에만 오고 있었다. 그동안 아이를 돌보며 맞벌이를 하느라 경미도 정신없는 1주일을 보내고 있었다.


잠에서 깬 경미는 양치, 세면, 샤워를 동시에 하면서 아침밥을 하기 시작했다. 경미는 생생은행 콜센터에서 일했다. 일은 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었다. 생생은행은 콜센터 업무를 외주를 주고 있었다. 경미는 외주업체 직원으로 생생은행 콜센터에서 파견근로자 신분이었다. 파견인력은 최저임금에 가까운 임금을 받는데 그마저도 소속회사에 때이고 급여를 받았다. 적은 급여보다 경미가 두려워한 건 근태였다. 근무 시작시간은 9시인데 8시 30분까지 출근하지 않으면 평가가 깎였다. 소속회사에서는 평가가 낮으면 재계약을 해 주지 않았다. 그러니 근태는 목숨처럼 지켜야 했다. 다행히 경미는 몇 년간 우수한 평가를 받아왔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아이가 태어나고 점점 커가면서 경미는 슈퍼우먼이 되어야 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고된 몸을 끌고 다음날 아이 유치원 준비물을 챙겨야 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등원시키는 것도 선생님들 눈치가 보이는데, 준비물까지 펑크를 낼 순 없었다. 문제는 경미가 일을 마치고 집에 올 때는 마트나 문구점을 들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런 경미에게 컬팡은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 같은 존재였다. 정말 컬팡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경미는 컬팡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컬팡 배송원에게는 불만이 많았다. 아이를 깨우고 밥을 먹이고 양치를 시킨 후 가방을 메어서 나가야 하는 시간은 정확히 7시 5분이었다. 인구소멸로 근처 유치원은 모두 망해서 15분은 걸어야 유치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인데 새로 온 컬팡 배송원은 늘 7시 정각에 배송을 했다. 문을 열고 포장을 뜯고 가방에 넣는 시간을 생각하면 7시는 안 된다. 적어도 6시 55분에는 물건이 와야 했다. 


주문 요청사항에 몇 번이나 적었지만 이것만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경미는 반복적으로 VOC (고객의 소리)를 넣는 블랙 컨수머가 되었다. 자신도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면서 수없이 많은 진상 고객을 접하고 있기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하지만 컬팡 배송원이 계속 7시에 물건을 놓으면 내 근태 점수가 깎인다. 물러설 수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6시 40분이 되자 경미는 컬팡 상담원에게 톡을 남겼다. 물건이 잘 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상담원은 걱정 말라고 했다. 이어서 상담원은 E에게 앱 메시지로 빠른 배송을 독촉했다. 




E는 미친 듯이 달리고 물건을 던지며 트럭을 운전했다. 이 속도라면 6시 53분에는 문제의 그 집까지 배송을 완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파트 앞에 차를 세운 그는 엘리베이터까지 돌진했다. 문제의 그 집은 3층이었다. 물건을 들고 기다리는데 엘리베이터는 더디게 내려왔다. 정지하는 층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다른 택배회사 기사가 물건을 놓고 있음이 분명했다. E는 시계를 보았다. 6시 52분이었다. 그는 계단을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E도 마음속으로 이를 갈고 있었다. 오늘은 보란 듯이 배송완료해 주겠다고. 


낡은 복도식 아파트에서 새벽에 누군가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소리는 생각보다 크다. 경미는 아이 밥을 먹이던 중 계단에서 발소리를 들었다. 택배 뜯는 시간도 아까웠다. 경미는 서둘러 현관으로 갔다. 문을 열자 상품을 문 앞에 두고 사진을 찍고 있던 E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E는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 경미는 자기 때문에 E가 뛰어왔음을 직감했다. 그동안 컬팡 앱에 남겼던 수많은 배송 민원이 생각나 얼굴이 달아올랐다. 한편 경미는 생각했다. ‘아니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 원래 7시가 배송 마지노선인걸 뭐’ 



경미는 다소 사무적인 미소를 띠며 E에게 말했다.


“… 감.. 감사합니다”


E는 경미와 눈이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다. VOC에 뭐라고 또 적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배송기사가 인상을 쓰고 바라봐서 두렵다’ 

이런 식으로 쓰면 난리가 날 터였다. 최대한 눈을 내리깐 체 E는 물러나려 했다. 그때 열린 문 틈 사이로 가족사진이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사진이었다. 


“아.. 혹시 영준이? 그러면 민성 형님 집인가요?”


경미는 갑자기 들리는 아이 이름과 남편이름에 깜짝 놀랐다. 


“아니 저희 애 아빠를 아세요?”


E는 고개를 들어 경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맞네요. 민성형님 핸드폰에서 사진 봤어요. 형수님이랑 아들 사진 폰 배경화면으로 해 둬서..”


경미는 머릿속이 하얘짐을 느꼈다. 


“형님 지금 평택 계시죠? 지난주에도 통화했어요. 고생 많으시던데.. 형수님도 고생 많으시다고 걱정하고요..”


“네… 남편 지인이셨구나.. 몰랐어요. 죄송해요 여러 가지로”


E는 괜찮다고 웃으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더 빨리 가져다 드리겠다고 말하고 서둘러 계단을 내려왔다.  E는 그동안의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민성 형님은 자기가 못나서 와이프 고생시킨다며 늘 미안해했다. 맞벌이하며 아들 키우면 컬팡 시간에 민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형수도 콜센터 근무한다던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E는 트럭에 올랐다. 엊그제 전화가 잘 안 터진다고 통신사에 전화해서 화를 냈던 자신이 생각났다. 지하 주차장에 들어갈 때마다 데이터가 종종 끊어졌는데, E 입장에서는 생업이 걸린 일이었다. 상담원은 연신 죄송하다고 했었다. 모르긴 해도 상담원이 해결해 줄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전화를 받았기에 그 사람도 죄송하다고 한 것이겠지. 


E는 가진 것 없는 자신이 화를 냈던 수화기 너머 상대방이 경미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서로 살겠다고 상대방을 괴롭히고 있었다. 다음부턴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E는 트럭의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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