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도 다치니까요.
[주의] 본 편에는 욕설과 비속어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야야 너 그 소식 들었어? 그거?”
아 또 영철이다. 개새끼 존나 시끄럽네.. 학원 숙제 하느라 어제 새벽 두 시에 잔 G는 속으로 제발 꺼져 달라고 생각했다. 영철 이 새끼는 늘 이런 식이 었다. 세상 큰일은 다 난 듯, 혼자 뛰어와서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다. 이럴 시간에 공부나 쳐하지.
“옆반에 민수 있잖냐. 민수. 걔가 영도를 존나 깠데. 우리 학교 짱 자리 놓고 한판 뜰 모양임ㅋㅋ 개꿀잼 아님? 우리 평민들은 결제하고 봐도 될 각인 듯?”
헐 G도 눈이 커졌다. 와 민수가 영도를 패다니. 민수는 학교 일진이었다. 민수가 싸움을 잘하냐고? 아니다. 싸움 실력은 사실 형편없었다. 덩치가 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일진인 이유는 민수의 아버지가 여당 유력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강남 한복판의 명문고인 생생 고등학교. 이 명문 우리 학교에도 일진놀이 하는 꼴통들은 있었다. 대한당 당대표의 아들인 민수는 아버지의 이름을 팔며 친구들을 괴롭혔다. 덩치 크고 싸움 좀 하는 애들은 민수와 싸웠고 대부분 이겼지만, 민수의 무서움은 그다음부터였다. 민수는 늘 변호사를 대동하고 학교에 와서 교장을 윽박질렀다. 변호사 전화를 받은 상대측 학부모는 늘 학교에 와서 빌고 또 빌었다. 민수는 이런 모습을 즐겼다.
생생고에 다닌다는 건 대한민국에서 중상류층 이상은 된다는 증명이었다. 생생고 주변 집값은 아무리 못해도 20억은 넘었다. 물론 그것도 없는 빈민들은 조용히 전세로 살면서 생생고에 전학을 왔다. 등기부 때 보면 다 나오는데 참.. 몇 년 전에는 이게 너무 쪽팔린다고 자살한 선배도 있었다. 그 선배 때문에 학교 옥상이 출입금지가 되었다. 시발. 해지는 거 보면서 피우는 담배가 존맛이었는데.
존나 웃긴 게, 사실 생생고가 강남 한복판에 있긴 해도 주변 A고교, B고교 대비 진학률이 좋은 건 아니다. 그런데 기를 쓰고 여기 이사 오는 건 엄마들의 이상한 치맛바람 때문이었다. 명문가 자제들과의 아름다운 우정? 뭐 이런 걸 바라고 학교를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또 그걸 무시 못하는 게.. 주변 친구들 보면 거진 다 준재벌급이니 고등학교 때 이런 친구 사귀게 해 주려는 부모 마음이 이해도 갔다. 흙수저라도 재벌 친구들 있으면 인생 좀 필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 친구를 두지 못한 부모들의 욕망.
민수가 그렇게 행패를 부리고 다니는 게 새로운 건 아닌데, 오늘 영철이 새끼가 가져온 뉴스는 좀 특별하다. 영도를 팼다는 것 때문이다. 영도는 민수의 옆반 짱을 먹고 있는 놈이다. 일반 학교였으면 이놈도 딱 찐따에 빵셔틀인데, 여기도 아버지 후광으로 손쉽게 일진놀이를 하고 있었다. 영도 아버지는 병원장이다. 그냥 병원도 아니고 국내 최대의 대학병원. 거기의 원장. 특히 심장, 뇌 쪽은 이 병원이 제일 맛집이라고 했다. 허구한 날 술 처먹고 비싼 고기 처묵처묵하는 꼰대 아재들 대부분이 이 병원 신세를 진다고 했다. 영도도 그 덕에 목에 힘 좀 주고 애들을 괴롭혔다. 문제가 생기면 법무법인이 학교까지 찾아온다는 점에서 민수와 영도는 비슷한 놈들이었다. 그런 그 둘이 싸운다고? 보통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야 근데 걔들은 서로 싸울 일 없는 애들 아님? 사자랑 호랑이가 서로 싸우면 피곤할 텐데 왜 싸우는 거임?”
“ㅋㅋ 쉐끼 궁금하지? 형님 해봐라 형님 그럼 알려줄게”
“지랄 롤 티어나 올리고 형님소리 하던가. 개 웃기네. 너 말고 다른 데서 들으면 그만임”
영철은 재미없다는 얼굴을 하며 내 팔을 잡았다.
“야야 시발 너는 공부만 하고 여유가 없어 여유가. 농담도 못하냐. 내 말 잘 들어봐ㅋㅋ”
영철이 읊어주는 전후사정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치했기 때문이다. 민수는 아이돌 A그룹의 팬이었고 영도는 B그룹의 팬이었다. 누가 더 잘 나가느냐를 두고 쉬는 시간에 다투다가 싸움이 났다고 했다. 미친 새끼들.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나 G는 속으로 생각했다. 영철은 신이 나서 계속 떠들었다.
“야 근데 애들 클라스가 오지긴 하더라. 지들 아버지 빽으로 서로 아이돌이랑 밥도 먹었더라고. 서로 인증 까고 난리였다야. 지금 한판 더 뜰 모양이던데 직관 고고?”
G는 벌떡 일어섰다. G에게는 이런 이벤트는 놓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영철은 자신의 낚시에 G가 낚인 것이 못내 기뻤던 모양이다. 둘은 급식실 뒤편 공터로 향했다. 소문을 들은 몇몇 애들도 모여들고 있었다. 민수와 영도는 신나게 서로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석훈이 말리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민수와 영도의 위세에 밀려서 가만히 있었지만 석훈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석훈은 그럴만했다. 아버지가 중견그룹 사장이라고 했다. 석훈도 겜값.. 아니 변호사비 감당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석훈은 일진놀이보다는 조용히 공부만 하는 타입이었다.
민수는 평소에 영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며 욕설을 하며 발길질을 했다. 석훈이 중간에 막고 있어서 발이 영도에 닿지 않았다. 영도는 이 모습을 조롱하기 바빴다. 민수는 이를 보며 더 약이 올라 소리를 치고 있었다. 그때 영도와 G의 눈이 마주쳤다. G는 속으로 시발 좆됐다고 생각했다.
“야 G! 너 이리 와봐. 시발~ 친구야~”
좆같은 새끼. 지가 언제부터 내 친구였다고 저러나. G는 쭈뼛쭈뼛하며 머뭇거렸다. 앞줄에 있던 친구들이 옆으로 비켜서는 통에 모두의 이목이 G에게 집중되었다.
“어 나..? 나 왜? “
“하 이 새끼 또 모르는 체 하네. 야 니네 아부지 그 존나 연예인 가십 다루는 쓰레기 회사.... 아니 그 언론사 아냐 맞지? 선데이 서울?”
G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아니야 세러데이 코리아.. 잡지사…”
“야 시발 뭔 차이야. 그게 그거지 시발. 이리 와봐 시발아”
영도는 G의 손을 잡아끌었다.
“야 연애뉴스는 니네 아버지가 잘 알 거 아냐. 찌라시도 존나 알고. 맞지? 시발 오늘 시원하게 까 보자 개새끼야. A그룹 애들 썰 좀 풀어봐. 걔들 다 걸레지?”
히죽거리는 영도의 얼굴을 보며 민수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말리던 석훈이 잡은 손의 힘을 뺀 사이 쏜살같이 튀어 나간 민수는 영도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키 작고 배 나온 둘의 주먹질은 공원에서 술 취한 영감님들의 싸움 같았다. 여전히 석훈은 뒤에서 말리려 하고 있었다. 사고는 바로 그때 일어났다. 민수를 노린 영도의 주먹이 그만 말리던 석훈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석훈의 안경이 날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공부 좀 한다는 애들만 쓴다는 100만 원짜리 라운드버그 안경이었다. 알까지 하면 200은 할 텐데.. G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며 깨진 안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석훈의 표정을 보았다. 평소에 조용히 공부만 하던 석훈이었지만 표정이 심각해졌다.
“야이 시발 새끼들아!!”
그날 그 자리에 모인 학생들은 석훈의 진정한 모습을 보았다. 공부만 하는 샛님인 줄 알았던 석훈은 민수와 영도 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싸움을 잘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석훈의 아버지는 심각한 가정 폭력범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돈이 많으니 가족들이 아무 소리 못하고 맞고만 살았다고 했다. 이후 석훈은 아버지에게 하도 맞아서 복수하려고 혼자 복싱 체육관을 다녔다고 했다.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선생님이 달려왔을 때는 민수와 영도는 실컷 두들겨 맞은 뒤였다.
그날 오후 민수와 영도, 석훈 세명은 모두 조퇴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긴급회의를 하느라 오후 내내 자습이었다. G는 며칠 뒤면 변호사 군단이 몰려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변호사 군단은 그날 오후에 경찰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누가 보면 살인사건이라도 난 것 마냥, 경찰과 변호사들은 사진을 찍고 CCTV를 확보했다. 대체 누가 누구 쪽 변호사인지 알 수 없었지만 G가 볼 때는 민수와 영도가 가장 많은 변호사를 불렀을 것 같았다. G와 영철 등 현장에 있던 학생들 모두가 조사를 받았다. G는 이 사건은 적어도 1년은 가겠다 싶었다. 여당의 유력 정치인의 아들과, 대형 병원장의 아들이 중견기업 사장 아들과 싸웠다. 아니지 일방적으로 맞았다.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고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G는 생각했다. 사실 법리고 나발이고 누가 미친 새끼인지는 바로 지목할 수 있었지만 G를 비롯한 친구들은 아무것도 못 봤고 못 들었다고 대답했다. 다들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누구 편을 들었다가는 고등학교.. 아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러나 G의 예상과는 달리 이 사건은 매우 빠르게 끝났다. 영철의 말에 따르면 민수, 영도, 석훈 본인들과 부모들은 학교에 한 번도 오지 않았고 변호사들만 교장실에서 계속 합의를 했다고 한다. 이어서 석훈은 며칠 뒤 학교에 나타났다. 다만 아버지에게 엄청나게 맞아서 두꺼운 뿔테 안경과 마스크로 퉁퉁 부은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석훈의 아버지는 가정폭력으로 이미 이혼한 상태라고 했다. 민수는 미국의 사립학교로 전학 간다고 들었다. 사실 원래 갈 예정이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좀 빨리 가게 되었다고 한다. 영도는 지방의 대안학교로 전학을 갔다. 말이 대안학교지 최상층을 위해 설계된 엘리트 학교였다. 각 의대의 지역인재 선발비중이 확대될 예정이라 어중간한 성적의 강남 학생들이 많이 이동하고 있었다. 영도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던 문제아였지만 아버지의 돈의 힘으로 어떻게든 의사를 만들 모양이었다.
그렇게 사건 당사자들이 떠났다. G는 집에 와서 조용히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 교복 상의 포켓의 만년필을 꺼냈다. 만년필을 돌리자 USB포트가 나왔다. 노트북에 연결하고 녹화된 영상과 음성을 하드디스크에 저장하기 시작했다. 그때 문을 노크하고 G의 아버지가 방에 들어왔다.
“아들, 지난번에 말했던 그 일은 잘 끝났니?”
“어 아빠. 아빠가 예상한 대로 마무리됨. 민수는 미국, 영도는 지방의 대안학교, 석훈은 계속 다녀.”
“그래, 자료는 잘 모았고?”
G는 대답대신 노트북의 폴더를 아버지에게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학교에서 부모 위세를 등에 업고 일진놀이를 했던 친구들의 이름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각 폴더에는 메신저 캡처, 사진, 영상, 녹취 파일들이 가득했다. G는 담담한 얼굴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 회사가 연예인 가십 다루는 쓰레기라고 욕을 하더라고. 어차피 내가 물려받을 건데, 쓰레기 회사 맛도 좀 봐야지.”
아버지는 역시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아빠가 신문사 오래 하면서 이 꼴 저 꼴 많이 봤는데.. 예언을 하자면 말이야. 저 애들은 부모 위세를 등에 업고 비슷한 자리에 갈 거야. 대한민국 상류층들은 다 그래. 지 새끼들을 어떻게든 남들 위에 올리거든. “
아버지는 G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이 파일들이 나중에 너의 동아줄이 될 거야. 아빠가 써도 되지만, 그거보다는 네가 잘 가지고 있으렴. 그걸 위해선 좀 욕먹어도 돼. 대한민국 사회가 원래 그래 하하”
G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는 아마도 미국 어느 대학 잔디 깔아주고 나중에 돌아와서 지역구를 물려받을 것이다. 영도는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지방대 어디 들어가서 의사가 되고 아버지 병원을 받겠지. 석훈은 좀 애매한데 공부 열심히 하면 한자리할 것이다.
‘열심히 해라 친구들아.’ G는 속으로 응원했다.
친구들에 대한 유일한 G의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