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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을 인도하는 목동의 회의

양은 자신이 양임을 알까요?

“김실장, 지난번 부탁한 자료 나한테 메일로 보내줘. 시간 되면 설명해 주고!”


박전무는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김실장에게 말했다. ‘50대 중반에 붉은 염색에 긴 머리라니 박상무도 보통 여자는 아니다.’ 김실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김실장은 패션업계에 들어온 지 15년 차였다. 굴지의 패션대기업 js그룹에서 미친 듯이 일했고 이례적인 승진을 경험하며 실장까지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워킹맘으로서, 같은 여자로서 김실장은 박전무를 존경하고 따랐다. 하지만 두 가지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는 패션센스. 패션업계 일하는 사람이 저런 그로테스크한 감각이라니. 그리고 또 하나는 매년 있는 비밀회의였다. 매년 11월이 되면 열리는 그들만의 그 회의.


이 회의의 존재를 알게 된 건 김실장이 입사한 지 10년째 되던 해였다. 박전무는 김실장의 성실함을 좋게 보고 여러 가지 일을 맡겼다. 김실장은 박전무를 믿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박전무는 ‘11월의 회의’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맡기지 않았다. 매년 11월이 되면 박전무는 직접 그룹 내부의 내년 계획과 전 세계 패션 트렌드를 정리했다. 회사 고위직이 직접 이런 작업을 한다는 게 김실장은 의아했지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11월 말 박전무는 서울시내 모 호텔의 스위트룸을 예약하고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지출결의서에는 11월 워크숍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예약한 당일, 박전무는 금요일이니 다들 일찍 퇴근하라는 말을 남기고 오후에 사무실을 나갔다. JS패션그룹 경영전략실은 야근이 많기로 유명했다. 전략실 전무의 칼퇴하라는 말에 직원들은 화색이 되어 약속을 잡기 바빴다. 18시 이후 전 직원이 퇴근하자 김실장도 노트북을 덮었다. 짐을 챙겨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무렵 김실장의 전화가 울렸다. 박전무였다. 


“자기야. 퇴근했어? 미안. 내입으로 칼퇴하라고 하고는 전화를 하네”


김실장은 늘 그랬듯 전화를 고쳐 잡으며 하이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전무님. 뭐 놓고 가신 게 있으세요?”


“역시 김실장이야. 내가 왜 전화하는지 바로 알아채네? 내 서랍 2번째 칸에 외장하드가 있어. 그것 좀 호텔까지 가지고 와 줄래? 중요자료다 보니 퀵 시키기 좀 그래서 말이야. 자기한테 말할 것도 있고.”


오랜만에 일찍 가나 했는데 역시.. 김실장은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직원들 시키기도 뭐 할 정도의 자료면 대체 뭘까. 알겠다고 하며 김실장은 외장하드를 챙겼다. 목적지인 호텔은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금요일 서울시내의 교통체증을 체험하며 김실장은 호텔 로비에 도착해서 전화를 걸었다. 박전무는 김실장에게 들고 스위트룸으로 올라오라고 했다. 그 ‘11월의 회의’에 이렇게 가까이 가는 것은 김실장도 처음이었다.


스위트룸에 들어서자 박전무가 김실장의 손을 잡고 안으로 이끌었다. 고급호텔의 스위트룸은 가격만큼이나 인테리어도 멋있었다. 회의실에서는 사람이 몇이 있는지 대화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자기, 내가 매년 여기서 워크숍 하는 거 알지? 이번 회의 때는 자기도 들어와. 의견을 낼 필요는 없고, 참관을 해 봐.”


“전무님, 갑작스럽네요. 그런데 이 회의 비밀회의 아닌가요. 제가 들어가도 될까요?”


박전무는 김실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 오늘 오신 분들 다들 다음 세대를 위해서 후임예정자를 데리고 오셨거든. 난 JS패션그룹에서 내 다음 자리로 자기를 추천하려고 해. 그러니까 올해부터 잘 지켜봐. 공부가 많이 될 거야.”


김실장은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박전무는 JS패션그룹 회장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이변이 없다면 사장을 거쳐 부회장까지도 가능해 보였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한 것이다. 김실장은 귓불이 빨개짐을 느끼며, 열심히 듣겠다고 답했다.


“아 자기야, 회의실에는 스마트폰은 들고 가면 안 돼. 여기 놓고 들어가. 집에는 미리 연락해 두고. 오늘은 많이 늦을 테니.”


박전무는 회의실 문 앞 금고를 가리켰다. 무슨 회의를 하길래 금고까지 두고 회의를 하나 싶었지만 김실장은 순순히 휴대폰을 넣었다. 박전무는 김실장을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 앞쪽에 앉아있던 남자가 공항 검색대에서나 보던 탐지기로 김실장의 몸과 가방을 스캔했다. 중앙의 회의탁자에는 중년의 남성 5명이 앉아있었다. 뒷열의 의자에는 역시 같은 수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분위기가 무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격정적인 토의 중임을 표정으로 읽을 수 있었다. 박전무가 김실장을 가볍게 소개했다. 김실장은 중앙의 회의 탁자에 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명함을 주며 인사했다. 이어 뒷열의 아마도 보좌관들에게도 명함을 건넸다. 구석의 자리로 가서 명함을 하나씩 다이어리 뒤쪽에 넣으며 김실장은 회의를 들을 준비를 했다. 명함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았다. 국내 최대 방송국 예능국장, 유수의 OTT 임원, 유명 연예기획사 임원, 국내 최대 미디어 그룹 임원, 그리고 해외 명품그룹의 임원까지. 평소에는 한 명도 제대로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6명의 말을 하는 사람들과 6명의 듣고 있는 보좌관들. 총 12명이 모인 호텔 스위트룸에서의 회의. 김실장은 대체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갈지 궁금했다. 


“여러분 매년 이맘때 우리가 모인 지도 벌써 십수 년이네요. 그렇죠? 올해도 재미있게 ‘인도’해봐요.”


박전무가 말하자 다들 미소를 띠었다. 김실장은 유독 ‘인도’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이어서 벽의 대형 TV에 자료화면을 띄우면서 회의가 시작되었다. 김실장은 회의 내용에 집중했다. 아니,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김실장이 어렴풋이 의심했던 일들이 실제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전무는 내년도에 유행할 패션 트렌드를 구체적으로 하나씩 정하고 있었다. 매년 말이면 온갖 트렌드 강의와 서적이 범람한다. 그것과 이 회의의 차이점은 ‘예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정’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박전무는 내년 상반기에 유행해야 할 남성과 여성의 패션 트렌드와 아이템을 지정하고 있었다. 박전무가 띄우는 내용에 맞춰 OTT 측 임원은 자사의 드라마/예능 라인업에서 어떤 스타일을 노출시킬 것인지 답했다. 기획사 임원도 연예인 코디에서 어떻게 할 계획인지 공유했다. PPL과 협찬의 방식도 논의되었다. 미디어 측에서는 어떤 기사와 뉴스로 ‘패션’을 확대 재생산할지 답했다. 


김실장은 유능한 여성이었다. 또한 예민한 감을 가지고 있었다. 김실장은 신입사원 시절 JS 패션그룹 재무팀에 배치되었다. JS는 다른 패션업체와 비교할 때 놀라울 수준의 재고율을 보이고 있었다. 많은 패션업체들이 잘못된 수요예측으로 인한 악성재고가 골칫거리였는데 JS는 재고가 제로에 가까웠다. 생산한 옷은 늦어도 다음분기까지는 전부 처리했다. 업계에서는 트렌드를 기가 막히게 쫓아가는 JS 패션이라고 칭송했다. 처음 한두 번이야 그럴 수 있지만 매년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김실장은 궁금했다. 이렇게 하려면 트렌드를 쫓아가는  게 아니라 트렌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김실장이 스스로 낸 답이었다. 박전무가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고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지만. 


회의 참석자들의 의견이 오고 가면서 내년도에 유행할 주요 패션이 구체적으로 정해지기 시작했다. 20대, 30대, 40대. 여성과 남성, 각 세그먼트에 대한 콘셉트와 라인업이 공유되었다. 정하는 건 좋지만 실제로 이렇게 된다는 게 김실장은 믿기지 않았다. 열띤 회의 중간, 10분간 쉬기로 했을 때 김실장은 박전무에게 물었다.


출처 : 인공지능 Dall E


“전무님, 회의가 흥미롭네요. 그런데.. 정말 이게 이렇게 되나요? 유행을 만든다는 게 이 정도로 되나요?”


박전무는 웃으며 답했다.


“자기야, 여기서 회의하는  건 뼈대일 뿐이야. 오늘 참석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내려주는 계획에 맞춰 움직이거든. 대한민국의 유행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말이지.”


“음.. 전무님 그래도 사람들이 그렇게 딱딱 움직여진다는 게…”


“자기야. 내가 패션업계에 30년 넘게 일하고 있잖아? 우리 업계를 도와주는 최고의 조력자가 누구 같아? 정치권? 언론계? 연예계?”


김실장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대답 대신 박전무의 설명을 기다렸다.


“바로 교육계야. 교육계. 우리 패션업계도 그렇고 저기와 있는 명품업계, 언론계 등등이 다 신세 지고 있는 게 사실은 교육이라고. 대한민국의 교육시스템 말이지.”


박전무는 핑거푸드가 있는 테이블로 가서 스파클링 와인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요즘 애들, 아니지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 자기 머리로 자기 패션을 정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아? 다들 OTT에서, 미디어에서, 정해주는 유행을 따라간다? 어릴 때부터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교육을 배우지 못하잖아. 정답을 맞히는 것만 훈련하잖아. 정답은 문제를 낸 사람이 정하는 거고. 그렇지? 

패션이라는 문제의 정답도 누가 정해주는 줄 아는 거야. 멍청하게 말이야. 자기 패션의 답은 자기가 정하면 되는데, 자기가 결정할 줄 몰라. 호호호. 이러니 견돈 견돈 하는 거야, 개 돼지들이지.”


박전무는 스파클링 와인을 김실장에게 따라주며 말을 이었다.


“이런 훌륭한 교육 덕에 저 밖의 개돼지들은 자기 결정에 자신감이 없어. 연예인 누가 공항에서 입은 옷을 지가 왜 따라 입는데? 열심히 고민해서 옷 사놓고 왜 맨날 커뮤니티에 착장샷 올리면서 괜찮냐 물어보냐고. 다들 정답을 찾으려고 하거든. 정답이 없는 문제에 말이야. 자기가 하면 그냥 그게 정답인데. 스스로 생각하고 자존감을 찾는 훈련이 전혀 안되어 있으니 저런 거야. 이러면 우리는 땡큐지. 우리가 답을 정하고 개돼지들에게 알려주면 되니까 말이야. ‘멍멍아, 저쪽으로 가야지? 야옹아 이리 와 이리 와’ 해 주면 돼. “


박전무는 스파클링 와인잔을 비웠다. 손에 반지가 반짝거렸다. 


“정답을 정해주고, 남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야 안심하는 게 한국사람들이야. 아니지, 정답을 정해주면 오히려 감사해한다니깐? 올해 유행은 이거다~ 를 알려주면 자기 머리로 생각할 필요 없잖아. 얼마나 편해? 서로 비슷비슷한 옷을 입고 와서 서로 유행을 잘 따른다고 칭찬해 주는 거지. 그들은 안도하고, 우리는 돈을 벌고 말이야.

우리 JS패션은 유행을 정하고, 다른 참석자들은 유행을 알려. 우리는 고마진인 패션으로 돈을 벌고 이 돈으로 저들에게 재투자를 하지. 얼마나 아름다운 시스템인지. 이게 지난 30년간 JS패션이 국내 정상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야.”


김실장은 웃으며 듣고 싶었지만 표정이 굳어졌다. 박전무의 웃음이 멈췄기 때문이다.


“우리 그룹이 해외 진출에 번번이 실패한 것도 이걸로 설명이 돼. 우리와 비슷한 나라들.. 그러니까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받고 남의눈을 잔뜩 의식하는 나라라면 우리 전략이 먹혀. K POP 스타를 동원하고 K드라마를 통해서 정답을 던져주면 돼. 반면 안 되는 건 서구권 교육을 받은 자들이야. 개성을 존중하고, 남이 뭘 입었든 신경 쓰지 않는 문화라면 유행의 선도는 매우 어렵지. ”


박전무는 김실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뭐 이게 우리 패션업계에서만 있는 일이겠어? 튀는 거 못 참고 남 뭐하는지 늘 살펴보는 문화를 정착시킨 우리 조상 때부터의 업보지 뭐. 그러니 우리는 저들을 잘 인도하도록 하자. 김실장 자기도 자부심을 가져. 어린양을 이끄는 목자가 되자고.”


다음부터 11월의 회의가 아니라 목자들의 회의라고 해야 하나, 김실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날 회의는 큰 뼈대와 1차적인 세부안건들을 공유하며 끝났다.


이후 6개월간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은 하나씩 구현되어 나갔다. 연예인들은 그날 논의된 그 색상과 그 디자인의 옷을 너나 할 것 없이 입고 드라마에 출연했다. 미디어는 이를 받아쓰면서 ‘올해 거대한 유행이 밀려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출처는 없다. 대중들도 출처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저 유행이라는 것이 있고 자신이 그걸 알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JS패션그룹의 주요 생산라인은 쉴 새 없이 유행에 맞춘 상품들을 만들어냈다. 김실장은 수익금의 일부를 ‘발전기금’ 명목으로 ‘목자들’에게 지원했다. JS패션은 돈을 벌었다. 회의에 참석한 회사들은 어차피 할 일을 하며 돈을 벌었으니 아쉬울 것이 없었다. 옷을 사는 고객들은 자신들이 유행에 늦지 않음에 안도했다. 완벽한 사이클이었다. 김실장은 박전무의 수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이클이 깨지는 순간이 올까? 대중들이 ‘유행’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의심하는 순간이 올까? 아니지, 유행보다는 스스로 입고 싶은 것만 입는 순간이 올까? 언젠가는 이 사이클도 무너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적어도 김실장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는 그런 날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실장 생각 속의 한국인은 그런 존재였다. 김실장은 남편을 다그쳐서 올해부터 아이를 미국의 친척에게 보냈다. 소중한 딸을 ‘어린양’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돈은 많이 들겠지만 역시 한국에서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독수리 여권이었다. 

김실장은 회의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리석은 양 떼를 잘 ‘인도’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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