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잘 긁으면 돈이 된다.

가려운 데를 긁는다면요.

H는 10년 차 작가이자 30대 무직 남성 백수였다. 작가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자격은 누가 가지고 있을까. 웹소설도 작가고, 책을 써도 작가고, 웹툰을 올려도 작가였다. H는 브런치라는 어느 온라인 플랫폼에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조회수는 늘 낮았고 구독자도 쉽사리 늘지 않았다. 실제로 뭔가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그는 그저 허울 좋은 작가였다.  낮에는 편의점 알바를 했고 밤에는 브런치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었다. 지방의 원룸에 혼자 살면서 온라인에 글을 쓰는 비정규직의 삶이라니. H는 자신의 삶도 소설 같다고 생각했다. 다만 반전이 없을 뿐이다.


세상에 영감을 주고 좋은 글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옛말은 틀린 게 없었다. 가난한 작가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브런치는 작가로 등단을 시켜주는 플랫폼으로 알려졌지만 광고가 없어 돈이 되는 플랫폼은 아니었다. 응원하기라는 이름으로 기부를 유도했지만 H와 같은 무명의 작가에게 돈을 보내는 독자는 없었다. H는 돈을 벌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H는 자신이 예쁜 여자였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했다. 아프리카 BJ를 하거나 온리팬스를 했으면 떼돈을 벌었을 것이고 그러면 안락한 삶을 누리며 글도 잘 썼을 텐데. 늘 이런 망상과 현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그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늘어나지 않는 구독자와 조회수에 지친 그는 무의미하게 인터넷 커뮤니티 글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본인 또한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지만 커뮤니티를 보고 있으면 다들 만만치 않았다. 쓸데없는 이슈로 늘 끊임없이 논쟁하고 싸우고 있었다. 당장 눈앞에 상대가 없다는 사실 때문인지 그들은 상대에 대한 배려도 존중도 없었다. 몇 개월간 커뮤니티를 관찰하며 H는 이게 돈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H는 고등학교 때 친했던 Y에게 전화를 걸고 찾아갔다. 고등학교 때 친했던 Y는 H와 달리 공부를 제법 잘했다. 서울 상위권 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쿨을 나와 중견 법무법인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H는 Y에게 악플에 대한 명예훼손을 상세히 물었다. 또한 악플 대량 수임 업무가 가능한지 확인했다. Y 입장에서도 대량의 고소라면 돈이 되니 좋았다. 


H는 가능한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주제를 고민했다.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엄청나게 많은 갈등요소들이 이미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H는 이중 페미니즘과 성평등을 택했다. 늘 뜨겁고 핫한 주제였고, 늘 논쟁이 되는 주제였다. H는 관련된 글을 써서 브런치에 올렸다. 논쟁적인 주제에 기름을 부은 글로 인해 조회수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소설 : 정상적인 페미니즘이 뿌리내린 사회를 상상해 봅니다.>


“오빠 그게 말이 돼? 아니 왜 오빠가 집값을 더 내? 결혼은 같이 하는 거잖아. 말이 되냐고. 날 뭘로 보는 거야?”


“아니 지연아 그게 아니고.. 우리 부모님이 여유가 있어서 도와주시겠다는 거잖아.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으면 안 될까?”


지연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오빠, 나 페미니스트인 거 알아 몰라? 나 이런 거 엄청 싫어하는 거 알지? 사회 속에서 이런 식으로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거.. 나 너무 별로야. 그것 때문에 대학에서도 여성학 공부하고 대학원에서도 페미니즘 공부하고 있는 거 몰라? 그런데 나한테 어떻게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어?”


“알지, 지연아 알지.. 평소에 네가 하는 말 나도 다 존중해. 다 맞는 말이고. 그런데 서울 집값 미친 거 너도 알잖아. 나 중소기업이고 너 이제 겨우 교양강의 몇 개 뛰는데 그걸로 어떻게 집을 구해. 월세 내기도 힘들어.”


승민은 한숨을 쉬며 아메리카노 잔을 만졌다. 얼굴에는 어두운 감정이 짙게 드리워져있었다.


“월세라는 게 결국 남 주는 돈이야. 목돈 있으면 전세라도 구할 수 있고 그러면 돈 모을 준비가 되잖아. 우리 부모님도 그런 의미에서 말씀하시는 거야. 넘 기분 나빠하지 말고 받으면 안 될까?"


지연은 승민을 바라보았다. 승민은 지연의 눈빛을 보고 설득이 쉽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오빠, 정 그러면 나도 우리 부모님께 오빠 부모님 만큼 지원해 주실 수 있는지 물어볼게. 만약 우리 집 형편이 안돼서 어려우면, 그냥 안 받고 원래 계획대로 똑같이 내고 결혼생활 하는 거야. 알겠지?”


승민의 얼굴을 바라보며 지연은 말을 이어갔다.


“돈으로 신세를 지기 시작하면 결코 평등하지 않게 돼. 난 그게 싫어. 여자도 얼마든지 능력을 펼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는 시대야. 페미니스트라면 결코 이런 데서 타협하면 안 돼. 뷔페미니즘 이야기가 왜 나오는데! 암튼 이건 이걸로 정리하는 거다? 알았지?”


승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2030년, 시대는 이렇게 변했다. 뭐든 빠른 한국 답게 페미니즘에 있어서도 급격히 남녀 평등주의가 자리를 잡았다. 여성과 남성의 의무와 권리는 완벽히 동일하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하자는 것이었다.

이 운동은 급격히 사회를 변화시켰다. 혜화역에서 여성들은 다양한 시위를 펼쳤다. 언론을 뜨겁게 달군 첫 시위는 바로 여성의 군 입대 법제화였다. 일부 과격한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혜화역과 국회의사당 앞에서 삭발 투쟁을 펼쳤다. 그들의 주장은 왜 남성들에게만 병역을 부과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라를 지키는 중요한 일에 여성이라고 차별하지 말자는 주장이었다. 병역자원도 부족하니 비전투병과와 후방지원업무는 여성들이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 여성들은 열광했다. 


소방관, 경찰관을 뽑는 시험에서도 체력검정은 동일하게 해 달라는 여성들의 요구도 이어졌다. 여성이라고 남자들의 보호를 받고 싶지 않다. 불 끄고 범인 잡을 때 필요한 체력은 남성 여성을 구분해선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한 현직 경찰서장은 여성의 체력이 약하니 기준을 달리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여대 페미니즘 동호회 회원들의 계란 세례를 받기도 했다.


출산, 낙태의 권리는 온건히 여성들이 가지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모든 면에서 동등하게 살아가겠다는 것이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었다. 유리천장도, 유리바닥도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직장에서는 그 사람의 성과와 투입시간만을 보고 평가하게 되었다. 과거 남성만의 직종이라 여겨졌던 건설, 국방, 제조 등의 영역에 근력이 강한 여성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육체노동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기존에 문제가 되었던 낮은 여성임금 이슈가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단가가 높은 일을 여성들이 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임금격차는 자연스럽게 줄어든 것이다.


물론 이에 동조하지 않는 여성들이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강경했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성적으로 평등한 국가가 되었다. 

<후략>




여기까지 쓴 후 H는 몇 번이고 자신의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 이런 글을 쓰면 난리가 날 것 같았다. 그게 H가 바라는 바였다. H는 자신의 브런치에 이 글을 올렸다. 


H가 쓴 글은 곧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특정 성별을 제대로 ‘긁은’ 것이다. 이게 진정한 남녀평등이 아니냐에 대한 격론이 시작되었다. H의 브런치는 구독자와 조회수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작가를 지향하는 이들의 플랫폼이었다.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실명인증을 하고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 그래서 H는 네이버 블로그 등 경쟁 플랫폼보다는 악플이 달리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돈을 벌려면 악플이 달려야 하지만 작가로서 악플이 두려운 것도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H의 걱정은 기우였다. 온라인 악플러들은 브런치에 신규 회원으로 등록하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하고 악플을 도배했다. 완전한 남녀평등은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어려운 주제였다. 그래서 악플러들은 H의 남성성을 철저하게 공격했다. 얼마나 ‘한남’이고 ‘도태남’이면 이런 글을 쓰냐는 식이었다. 



H는 Y와 연락하며 고소에 필요한 증거를 착실하게 수집했다. Y는 H를 대리해 악플러들 개개인에게 소송을 걸었다. 연예인도 아니니 안심하고 악플을 남발하던 악플러들은 크게 당황했다. H와 Y는 건당 100~300만 원의 합의금을 받았다. 간혹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 가차 없이 소송을 진행했다.


H는 젠더,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한국사회를 강렬하게 비판하는 글을 썼고 그때마다 수백 개의 악플을 받았다. 그러나 악플로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과거의 H는 더 이상 없었다. 오히려 그물에 가득 걸린 물고기를 바라보는 어부의 심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자 H는 강남에 꼬마빌딩을 매입할 수 있었다. 1층은 세를 주고 2층은 Y가 대표인 법무법인이 입주했다. 3층은 자신의 집무실로 쓰는 중이다. H는 오늘도 악플러들에게 감사한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더 ‘긁을 수 있을지’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이전 08화 양들을 인도하는 목동의 회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