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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4호선과 서울의 신(神)

4호선을 타는 모든 분들에게 바칩니다. 

매일 아침, 평화롭게 자고 있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집을 나서려는 K차장. 방문을 조용히 닫고 나가려다 그는 매번 잠시 뒤돌아 가족들을 바라본다. 특히 초등학생인 첫째와 둘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 한편이 저릿해진다. 가족을 위해 버티고 견뎌야 할 무거운 책임감이 늘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K차장은 20년째 평촌역에서 출발해 서울 중심가로 향하는 4호선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 지하철역에 도착해 열차를 기다리면서 K차장은 가방을 앞으로 메고 귀에는 이어폰을 끼운다. 주변 사람들 모두 비슷하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긴 시간을 버텨 줄 도파민이 필요하다. 


지하철이 도착하면 몸을 꼭꼭 접어 지하철로 몸을 밀어 넣는다. 4호선은 오이도에서 안산을 지나 서울로 간다. 평촌역에 올 때쯤이면 이미 산본, 금정, 범계에서 사람을 가득 실은 뒤였다. 차가 도착할 때 차 안의 사람들 표정이 유리창에 보인다. 그들도 이미 숨 쉴 틈조차 없다. 스크린 도어 넘어 그들의 표정은 ‘제발 더 타지 마’라고 하는 듯하다. ‘안다고, 나도 타기 싫다고!’를 속으로 외치며 K차장은 가방을 방패 삼아 밀어붙인다. 일하러 가는 노예를 또 다른 노예가 찍어 누른다. 미안함이 올라오지만 지각했을 때 팀장의 얼굴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나도 살아야 한다. 


어렵게 차에 몸을 넣고 나면 K차장은 가방을 선반에 올릴 수 있을지 살펴본다. 서울 지하철 대부분이 미관을 해치고 사용율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지하철의 선반을 없애버렸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선반을 보며 K차장은 정말 미친 행정이라고 생각했다. 경기도에서 한 시간을 지하철을 타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 선반은 어깨를 잠시나마 쉴 수 있게 해 주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미관? 지하철을 타면서 미관을 생각할 수 있다니 누군지 참 부러웠다. K차장과 같은 사람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자 지하철공사는 마지못해 몇몇 칸에 한정해서 선반을 다시 놔주었다.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선반이 있는 칸에 몰렸고 그 칸의 혼잡도는 눈에 띄게 늘었다. 지하철 공사는 그래서 무엇을 얻은 걸까? K차장은 궁금했지만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서 알아보기를 포기했다. 지하철 공사 사장과 임원들은 출퇴근 시간에 미어터지는 4호선 지하철을 타 보았을까? 기사 딸린 차로 출퇴근하면서 탁상행정을 펼친 게 분명했다. 이후 K차장은 선반만 보면 감사하게 여기는 버릇이 생겼다. 역시 사람은 무언가 없어 봐야 소중함을 알게 된다. 




다른 지하철과 달리 4호선은 특별한 비밀이 있었다. 전동차는 전기로 간다. 당연히 항상 전기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선바위역을 지나 남태령역으로 들어설 때 4호선은 전기가 끊어졌다. 아주 잠깐이지만 이 잠깐이 소중한 계절이 있다. 미칠듯한 한여름, 만원 지하철 속에 콩나물처럼 끼어서 가고 있자면 서로의 온기와 따스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겨울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여름이다. 불쾌지수가 급상승하는데 버티게 해 주는 건 에어컨이다. 이게 잠깐이지만 끊어지는 것이다. K차장은 다른 지하철에서는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없다. 경기도민이 서울을 들어가고 나올 때만 겪는 일이다. 가끔 K차장은 근엄하고 엄격한 ‘서울의 신(神)’이 미천한 경기도민이 서울에 들어오려 하는 것을 막으려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남태령역에 도착했다고 끝이 아니다. 출근 시간 4호선 상행선 최대의 고난이 하나 더 남아있다. 4호선은 하나의 라인이지만 출발지와 종착지가 다 달랐다. 서울 안에서 움직이는 열차와 경기도로 나가는 열차가 구분되기 때문이다. 오이도를 출발해서 서울을 관통하고 당고개까지 가는 열차는 남태령역에서 무조건 정차해야 한다. 사당에서 출발하는 4호선 지하철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신’이 경기도민에게 내리는 두 번째 심판이다. 


한참을 기다려서 남태령역을 출발한 열차는, 2호선으로 환승할 수 있는 사당역에 들어선다. K차장은 주변사람들을 살핀다. 재미있는 현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사당이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당역에서 내렸다. 2호선을 타러 가는 사람도 있지만, 내려서 입구에 다시 줄을 서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방금 남태령에서 한참을 기다리게 만든 장본인인 ‘사당에서 출발하는 상행선’을 타기 위해 내리는 것이다. 앞줄에만 잘 서면 앉아서 갈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쉽지 않다. 미리 와서 줄을 서 있는 ‘사당에 사는 서울시민들’이 항상 앞이다. 그래도 혼잡도는 훨씬 덜하기 때문에 많은 경기도민들이 내려서 새로 줄을 서곤 했다. 


사당을 출발한 열차는 총신대입구역을 지나 동작역에 들어선다. 4호선은 기본적으로 지하철이지만 몇몇 구간에서는 지상철이 된다. 동작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면 K차장은 늘 창밖을 응시했다. 왼쪽 창가에 섰을 때는 여의도와 일대의 아파트단지가 웅장한 위엄을 드러냈다. 오른쪽 창가에 섰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반포의 초고급 아파트단지를 멀리서나마 볼 수 있다. 뜻도 잘 모를 영어이름의 거대한 아파트들. K차장은 아까 날 괴롭히던 서울의 신은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경기도의 집을 나와 여기까지 오는데 1시간이 걸렸다. 저 웅장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1시간을 나보다 더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난 하루가 24시간이지만 저 사람들은 25시간인 것이다. 저기서 출근하면 30분이면 회사에 도착할 텐데. 여유 있게 아침을 먹고, 한강변에서 아침운동도 하고 출근할 수 있을 텐데. 심지어 아침밥도 아파트 단지에서 준다던데. 아니다, 회사 출근을 안 하겠지? 

K차장은 지난주 읽은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국민평수의 반포 어느 아파트가 1주일 만에 55억에서 60억으로 거래되었다는 기사였다. 1주일 만에 5억이 오르는 아파트가 있는데, 굳이 출근할 필요가 있을까. K차장은 자신의 연봉을 얼마나 모아야 저 아파트를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역시 ‘서울의 신’님이시다. 하찮은 내가 어찌 감히 불경하게 넘볼 수 있을까. 돈이 없으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지하철을 타야지. 


장엄한 서울의 신은 우러러보는 것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동작대교를 지나 이촌역에 들어설 때 즈음이면 4호선은 다시 지하철이 되기 때문이다. K차장은 차라리 이게 마음이 편했다. 한강변 아파트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열차가 지하로 내려가면 창 밖에는 검은색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더 이상 초라하지 않아도 된다. 안 보고 안 듣고 살면 편해진다. 이제 목적지까지 지상철 구간은 없다. 서울을 보지 않고, 어두운 지하만을 보며 마음이 편하다니, K차장은 자신이 웃프게 느껴졌다.


혼자만의 연민에 젖어있는 사이, 지하철은 환승역인 삼각지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K차장은 삼각지역을 지날 때면 늘 작년이 생각났다. 작년 여름, 어느 장애인 단체에서는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하며 시위를 했다. K차장은 어려운 사람들이 권리를 찾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그러나 장애인단체는 늘 삼각지역에서 시위를 했다. 다른 라인에서 얼마나 시위를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4호선에서 시위가 유독 많았다. 열차를 느리게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4호선 열차 전체를 지연시키는 방식이었다. 처음 시위 소식을 듣고 K차장은 불편함은 감수해야겠거니 생각했다. 10분, 20분 지연은 생경했지만 참을 만했다. 그러나 아주 무더웠던 여름날, 지하철 4호선 전체가 1시간이 넘도록 멈춰 서자 K차장도 더는 버티기 어려웠다. 경마공원 역에서 전동차는 문을 열어둔 채 한 시간이 넘도록 서 있었다. 화장실 때문에 열차를 내렸다가 같은 열차를 다시 타는 것은 K차장도 처음 해 보는 경험이었다. 


팀장에게 장애인 단체 시위 기사 링크를 카카오톡으로 보내고 스마트폰 배터리를 걱정하다가 K차장은 옆자리 아주머니 두 분이 울상을 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분들은 KTX 표를 어렵게 구했는데 버리게 생겼다고 어떡하냐고 당황해하고 있었다. 4호선에는 신용산역과 서울역이 있다. KTX를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4호선을 이용했다. 경마공원역에서 지하철 외에 서울로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출근시간에 택시를 불러도 잘 오지도 않을 뿐 아니라 남태령고개를 넘어가는 순간 살인적인 서울의 교통체증을 만난다.


장애인 단체를 응원하고 이해하고 싶었지만 K차장은 눈앞의 아주머니 두 분은 무슨 죄일까 생각했다. 서울의 신은 멀리서 오는 노예들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았고, 돈과 힘이 없는 노예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다른 노예를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4호선은 안산 반월공단을 지나 대표적인 수도권 베드타운인 1기 신도시 산본과 평촌을 지난다. 장애인 정책을 고칠 수 있는 권력자가 살 것 같은 노선은 결코 아닌데 저분들은 왜 4호선에서 이러는 것인지, K차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국회의사당은 9호선에 있다. 9호선은 주로 강남의 부촌을 지난다. 힘 있는 분들이 느끼게 하려면 이만한 데가 없을 텐데 대체 왜 4호선에서 이러는 것인지 K차장은 답답했다. 


그가 타는 4호선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사회적 풍경이었다. 안산공단 때문인지 4호선에는 공단에서 일하는 중국, 베트남, 필리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비교적 얌전히 지하철을 이용했지만 K차장은 몰려다니는 그들을 보며 종종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곤 했다. 3호선, 9호선을 탈 때와는 분명 무엇인가 달랐다. 문득 K차장은 인터넷에서 지하철 빌런을 논할 때 1호선과 4호선이 계속 언급되는 것과 같은 이유일 거라 생각했다. 슬픈 이야기지만 지역별로 차이는 있는 것 같았다. 


지하철이 목적지인 서울 중심가에 도착하자 K차장은 한숨을 내쉬며 지하철에서 내렸다. 언제쯤 이 고단한 출근길이 끝날까 싶었지만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 출근길이 지금 끝나선 큰일이다. 앞으로 10년.. 아니 가능하면 20년은 더 콩나물시루에 몸을 실어야 한다. 한강변 아파트를 20년만 더 보면 이제 이 근엄한 서울에 다시 오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은퇴하면 한적한 바다나 산을 보며 살고 싶다. 그때까지는 계속 이 열차를 타야만 한다. 


지하철은 다시 출발했다. 4호선 상행선의 종점은 노원, 상계, 창동이다. K차장은 거기까지 가본 적이 없다. 서울 마지막 영끌 아파트로서 여러 차례 소개된 지역. 거기 사는 사람들은 지금 행복할까? 이 열차에 탈 누군가는 자신과는 다른 풍경, 다른 생각을 하길 바라며 K차장은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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