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까 Nov 22. 2019

멀미, 트림, 방귀 그리고 여행

시차가 있어줘서 고마워요. 

열살 무렵이었을 거에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길치이신 어머니를 따라 안성 시내에 있는 기도원에 다녀올 때였는데, 침을 놓는 공포스러운 기도원 원장의 카리스마 때문인지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머리가 아팠어요. 버스는 타지도 않았는데 이미 휘발유 냄새 진동하는 고물 버스에 앉아서 태백산맥 산길을 달리는 느낌이었죠. 


멀리서 버스가 오는 것이 보이자 내 머릿속의 진동은 더 심해졌고, 버스가 도착해서 문이 열리자마자 저는 보란 듯이 버스 입구에 구토를 해버렸어요. 화난 안내양이 그랬지요. 구토를 하려면 버스가 오기 전에 하던가, 아니면 고개를 돌려서 바깥쪽에 하고 버스를 타던가 할 것이지 왜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입구에 구토를 해놓았느냐고요. 글쎄, 저는 별로 할 말이 없었어요.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트림이나 방귀는 잠시 참거나 사람들이 안보이는 쪽으로 돌려 뀔 수 있어도 뱃속에서 게워내야 하는 구토는 그게 안 되는 걸요. 


어린 시절엔 시내버스만 타고 차멀미를 심하게 하던 터라, 부모님들과 제 주변에 살던 소시민 아저씨 아줌마들도 나를 보면 저 약한 아이는 자라서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 수 있으려나 하는 뭔가 미래적인 예측을 서슴지 않게 하는, 그들의 예측대로라면 평생 병치레 속에 살다가 우울증으로 고생할 것 같은 꼬마였더랬지요 


그런데 예측이 맞지 않아서 즐거운 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 멀미를 다 쏟아낸 때문인지 지금은 파도가 치는 핀란드만 위에서 언젠가 한번 배멀미를 한 것 말고는 멀미라는 것은 거의 모르고 살아요. 그리고 어쩌다 보니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 되어 살게 되었죠. 이제 제 삶에서 멀미가 없어진 것은 참 다행이에요..... 아니면 여전히 그토록 멀미를 심하게 한다면, 지금 저를 지배하는 역마살을 제어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었을 텐데 말이에요. 


사실 아프리카로, 유럽으로, 미국으로 자주 여행을 하다 보면 요즘엔 멀미보다 저를 더 괴롭히는 게 바로 시차예요. 멀미는 제 몸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게워내는 행동이라서 하고 나면 약간의 자유로움과 안도감이 생기지만 시차는 반대로 새로운 곳의 주변 환경이 제 작은 몸속으로 들어오는 과정인 것 같아서 불안감과 초조함이 더 큽니다. 나이가 젋었을 때는 시차 정도야 너끈히 이긴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전 시차를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냥 시차가 적절히 타협을 해줬을 뿐. 


그런 차원에서 시차는 단지 숫자들이 움직여서 만드는 정보의 변화만이 아니라, 충분히 물리적으로 영향력 있는 실질적인 에너지 같은 거예요. 그래요, 그런 차원에서 트림이나 방귀나 멀미를 하면서 느끼는 것과 별반 차이 없는 신체적 감정과 변화를 유발하죠. 




전... 다시 워싱턴 디씨에 왔어요. 


멀미처럼 시차의 에너지를 느끼는 때는, 바로 새벽이에요, 리가, 나이로비, 워싱턴 디씨 어디든 새로운 곳에서는  그 시차의 에너지 때문에 엉뚱한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깨게 돼요. 그러면. 문득 누군가가 그리워져요 


그 그리운 대상이 명확한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막상 내가 누구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릅니다. 원래부터 나는 없었고 또 조만간 내 존재가 호텔리어의 청소기로 흡수되어버릴 호텔방에서 시차 때문에 일찍 잠에서 깨게 되면 마음이 뻥 뚫린 것 같은 공허함마저 느껴요. 


완전히 제3의 공간과 시간에서 눈을 뜨는 것만큼 저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해보게 되는 때는 더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남겼던 글들을 헤집어 보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새벽 어스름을 보며 쓴 글들이 많더군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는 몸뚱아리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런 아침에 일어나 망연히 앉아있으면 자질구레한 상념들과 생각들이 모래처럼 서걱대고 버스럭거리고 있는 게 내 귀에 들릴 정도예요. 


내가 좀 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면 그 상념의 모래알들을 모으고 세공을 해서 내가 그리워하는 누구에게 선물처럼 보낼 수도 있으련만, 지금은 멀미처럼 게워내고 싶은 음식물처럼 형태조차 알 수 없게 섞여있을 뿐이지요. 


내가 그리워하는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간 그 나름대로의 멋진 선물을 선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2015년 일기장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