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까 Nov 30. 2019

7.8초의 행복

똥을 싸질러줘서 고마워....

막상 할 일이 없는 첫 주말 아침. 약속도 없고, 밀린 일도 없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만날 사람도 없는.... 아주 평범한 토요일 아침. 


아주 지루하고 재미없는 하루가 될 것이 뻔해 어제는 잠자리에 들기가 괜히 싫을 정도였다. 아, 내일은 뭐하지..


그냥 멀거니 일어나 아침을 먹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고양이들이 밤새 어질러 놓은 바닥이 눈에 들어와 아무 생각 없이 빗자루와 마대를 들고 청소를 시작한다.


고양이 두 마리가 싸질러 놓은 똥들이 여기저기 처박혀 있는 금 따는 콩밭에서 감자를 두 가마니 캐어 잘 매어놓고, 고양이 털과 먼지들이 켜켜이 쌓인 카펫도 밖으로 가지고 나가 추운 손 호호 불면서 탁탁 털고, '청소가 아닌 즐거움'이라는 CM송이 인상적인 아약스(Ajax) 세제로 바닥을 뽀닥 뽀닥 문지르고 나자, 대략 점심때가 되었다. 


그렇게 한바탕 청소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Pink Martini의 Hang on Little Tomato를 틀어놓는다. 클라리넷 소리가 노곤하다. 그 소리를 머리에 가득 담아둘 수 있으니, 차라리 머릿속이 텅 비어있는 게 다행이다.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가 창문가에 앉아 집 주변을 날아다니는 새들을 따라 고개를 내저으며 나름대로 평온한 주말을 느끼고 있다. 참새가 날아가면 두 마리 참새를 따라 고개를 끄덕끄덕, 까마귀가 지나가면 물먹는 병아리처럼 하늘 향해 끄덕끄덕. 그렇게 고양이 두 마리와 인간 한 마리가 느끼는 포근한 안락함. 


'아, 이게 행복이로구나' 하는 구성진 느낌이 대략 7.8초 정도 내 허벅지 위에 머물다가 휙 사라져 버렸다. 그 7.8초의 행복감이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폭발적으로 증가해 36000초를 가득 채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고양이가 하마였으면 좋겠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