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의 붉은 숲 6
2009년 강은 창간된 지 얼마 안 되는 고려일보라는 신문사 국제부에 취업을 했다. 들어가자마자 강은 세계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지역에 대한 기사들을 맡게 되었다. 소말리아, 팔레스타인, 위구르, 코소보, 체첸 심지어 아프가니스탄 등 신문 지상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분쟁관련 기사들은 모두 강의 손을 거쳐 신문에 올라갔다. 모가디슈, 가자지구, 프리슈티나 등 다른 이들에겐 무척 생소한 지역들이 마치 강에겐 매 주말마다 술을 마시러 가는 동네인양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다룬 기사의 양에 비해 가본 나라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게다가 분쟁 지역에는 단 한 번도 발을 디딘 적이 없다. 사실 요즘처럼 국가 간 소통이 잘 발달된 시절에 일일이 현지에 찾아가 사진을 찍고 보도문을 작성하는 것은 여러모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다보니 기자 자신도 자기가 다루는 나라의 사정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기사를 제공받는 외부통신사의 정치적 성향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 다반사다.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여자들은 어떤 옷을 입고 사는지 아이들은 학교에 잘 다니고 있는지 등의 사안에는 관심조차 두지 못하고, 손가락에서 키보드를 통해 모니터로 전달된 단편적인 정보만 종이 위에 인쇄되어 세상에 뿌려진다.
사진 하나가 사건의 전말을 말해주어야 하고, 중요한 이야기는 모두 강렬한 인상을 주는 몇 마디 문장으로 간추려야 한다. 그 인상적인 표현의 문장들 사이로 어떤 사연과 이야기들이 숨어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문장은 짧아지고 선정적인 사진은 더 커진다. 새내기 신문사인 고려일보는 기자정신과 그런 상업주의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중이다.
몇 주 전 집안 문제로 기분이 꿀꿀하던 차, 강은 회사 국제부의 러시아 정보통인 김 선배와 술을 먹을 일이 있었다. 모스크바에 있는 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 박사과정을 받을 때 현지에 만난 빅토리아라는 이름의 아리따운 러시아 아가씨와 결혼해서 살고 있는 김 선배는,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 라트비아라는 나라 이야기를 꺼냈다. 세계 여러 작은 나라들을 비교적 빠삭하게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강의 귀에도 낯선 나라 이름이었다.
김 선배는 얼핏 들어서는 쉽게 믿겨지지 않을 만한 일을 들려주었다. 불과 몇 주 후인 3월 16일 나치들을 기리는 행사가 라트비아에서 열린다는 말이었다. 독일에 점령당한 유럽을 구원한 해방자로 발트해에 진격을 해왔던 러시아인들에게 이 날은 절대 기념을 해서는 안 될 날이다. 소련 시절에는 이 날에 대해서 말조차 꺼낼 수 없었으나 독립을 이룬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날이 되면 당시 독일군의 편에서 전투에 참가했던 라트비아 무장친위대 대원들을 추모하기 위한 가족들과 후손들, 그들을 나치라고 규정하며 욕을 해대는 러시아인들이 한데 섞여 물리적인 대치가 벌어진다.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충돌이 있어 왔고,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올해도 또 이어질 것이다. 나치들과 러시아인들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라……. 멋진 사진과 르포가 나올 것 같다.
마침 여러 가지 집안일들로 인해 우울했던 강은 김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 날 국제부 박 국장에게 찾아가 라트비아로 취재를 나가겠으니 출장비를 지원해 달라고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물론 박 국장도 라트비아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는 눈치였으나, 평소에 강이 일을 잘 해오던 터였는지라 박 국장은 기안서를 한번 훑어보더니 출장비 지원을 흔쾌히 약속했고, 강은 일주일 후 라트비아로 가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공항에서 만난 알료샤는 김 선배의 부인을 통해서 소개 받았다. 라트비아 내 러시아인들의 인권보장을 위해 결성된 한 단체에서 대표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고려일보에서 그 일을 취재하겠다는 의사를 보내오자 현지 교통과 안내 등 여러 가지를 맡아 도와주겠다며 호의를 베풀었던 것이다.
호텔에 들어가니 밤 1시가 넘어있었지만, 나타샤가 먼저 다음 날 일정을 논의하자고 제안한다. 알료샤는 하얀 톤으로 정갈하게 꾸며진 호텔 로비에 앉아 피곤한 기색도 없이 잘 정리된 일정표를 꺼내며 일정을 정리해준다. 공항을 나온 후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다. 나이가 한 50 정도 들어 보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젊은 활력이 느껴진다. 그나저나 오른팔은 어쩌다 저리 되었을까.
그들과 헤어지고 방에 돌아와 잠시 정신을 차린 후 커튼을 열어본다. 야경이 밝혀진 강 건너편 구시가지. 독일식 뾰족지붕과 러시아식 둥근 지붕이 자신들과 전혀 상관 없는 동네에 와서 서로의 위력을 자랑하며 서있다.
창가 옆 탁자 위에 놓인 전화를 보니 문득 어머니에게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샤워를 마치고 나와 침대에 눕자마자 정신이 몽롱해진다. 전화는 내일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사실 어머니와 나누는 이야기는 지극히 한정적이다. 아픈 곳은 없는지, 식사는 했는지, 편지 온 것은 없는지. 이번에도 지극히 사무적인 일상대화를 몇 마디 나누다가 전화를 끊을 것이다.
어머니를 평생 괴롭히던 고모는 지난달 세상을 떠났다. 고모에게 한번 제대로 말대꾸를 해보지 못한 후회 때문인가?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어머니는 며칠간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어댔다. 괴롭히는 이들에 맞서 싸울 배짱을 아들에게 키워주지 못한 바보 어머니. 강은 어머니에게 위로도 격려도 해드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