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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eok Kim Dec 31. 2017

2017년을 돌아보니

뒤늦게 온 사춘기 같았던 2017년이었다.

미래에 2017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꼬박 30년을 꽉 채우게 된 올 해에 나에게는 참 내,외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1


 2017년의 시작은 "스타트업"이라는 아주 매혹적이지만, 사실은 잔인한 바닥에서 였다. 돌이켜보면 나와 동료는 기본 템만 간신히 갖춘 채 고수들이 득실대는 무림에 출사한 것과 같았다. 아는 것도, 가진 것도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낸 후, 우리는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려고 하고 있다"는 생각에 합의를 했고, 각자의 길을 갔다. 물론 미래에는 이라는 기약 없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2

 그 이후 3월부터 7월까지의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혹독했던 시간들이었다. 매일 매일 '자살할까'라는 혼자말을 달고 살았다. 나는 대학도, 취업도 생각해보면 크게 고생없이 갔었다. 대학은 수능을 망쳤지만 2학기 수시라는 히든카드로 살아났고 그 때 망친 자존심은 1년 놀아도 서울대는 간다는 마음으로 친 다음해 수능이 다시 회복시켜줬다. 취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컨설팅 회사는 1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마케팅 잘할라면 꼭 가야한다고 생각했던 외국계 소비재 회사도 탈락한 것이 속 쓰렸지만, 돈도 많이 주고 가장 매력적인 재화라고 생각했던 자동차 회사에 인턴을 통해 정규직 전환된 것은 나름 괜찮은 스타트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 자동차 회사를 박차고 나와 야심차게 스타트업이란 것에 도전했지만 제대로 힘도 못 써보고 망하니, 시장에서 나의 가격은 내 상상 이상으로 낮아져 있었고 내 멘탈도 상상 이상으로 박살나 있었다.


 거기다가 제일 나를 절망에 빠지게 한 것은 이제는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뭘 잘하는 지도 모르겠고, 자신감은 바닥에 빠져서 다시 사업을 도전할 엄두는 안나고, 나이는 30이고 여자친구와의 데이트에서 돈 1만 원도 제대로 못 쓰는 초라한 모습의 나만 있었다. 


사업을 정리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린 2월 말이던가 3월 초든가 하는 날 나는 대학로의 조그만 타로집에서 점을 봤다. 점쟁이는 5월이면 취직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때 코웃음쳤다. 


 처음에는 1~2개월이면 다시 직장을 잡고, 몇 백만 원의 월급을 받으면 멘탈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뭘 해야할지 모르겠으니 일단은 괜찮아보이는 데를 쓰고, 들어가서 일하면서 생각해보자고 생각하고 면접을 봤다.  또한 면접이 잡히면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가서 보자고 생각했다. (물론 직장을 구하는 데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1)영어를 쓰는 회사. 2)해외로 출장을 가는 직무)


 당연히 그게 될 턱이 있나. 꽤나 다양한 회사들의 면접을 봤으나 번번이 최종 면접 즈음에서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회사에서 뭘 하겠다는 생각없이 나는 좋은 대학 나왔고, 좋은 직장에서 좋은 성과를 냈던 사람인데, 창업했다 망해서 취직하려고 하니 좀 받아주쇼라는 태도니 당연히 될리가 있나. 거기다가 연습이라는 명목으로 봤던 면접 역시도 떨어지면 멘탈이 나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건 악순환이었다. 내가 꼭 가고싶은 회사도 아니었으나 면접에서 떨어질때마다 간신히 부여잡은 멘탈은 더 박살이 났다. 


 돌아보니 경력직 면접은 신입 면접과 많이 달랐다. 신입 면접은 가능성과 태로를 본다면, 경력직 면접은 이 사람이 무엇을 해왔으며 그렇기에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본다. 그래서인지 커리어 백그라운드가 상당히 중요하다. 


 나는 자동차 마케팅 분야에서 일해온 사람이었으므로, 내게 키워드는 자동차와 마케팅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IT 분야에서 원하는 마케팅은 퍼포먼스 마케팅 중심이었다. 하지만 내 경험은 PR과 마케팅 전략에 가까웠다. 매니저를 하기에는 나이도, 경력도 짧았다. 자동차 분야에서 나는 성과를 내왔던 사람이지만, 이 분야에서 현대기아차를 빼면 얼마나 시장이 있을까? 그리고 수입차 업계와 국산차 업계는 인력풀이 어느정도 분리가 되어 있는 상태였고, 현대기아차는 수입차 출신을 안 뽑고, 수입차는 현대기아차 출신을 안 선호하는 그런 현상이 있는 듯했다. 이 모든 것을 뚫고 가기에는 내 영어 실력도 부족했고 인맥도 부족했다. 결국 운신의 폭이 좁았다.


#3

 그러면서 여러 회사의 PR  or 마케팅 면접을 봤다. 지금 돌아보면 아까운 곳은 거의 없었다. 인연이 아니었던 탓이었겠지. 다만 BTS는 아쉬웠다. BTS는 교육 시뮬레이션과 컨설팅이 종합된 스웨덴계 회사인데 한국에서는 몇년 간의 고생을 거쳐 이제 본격적으로 세를 키워나가는 단계인 듯했다.


 여기에 처음 면접을 볼 때 너무 나이브하게 접근한 것이 아쉬웠다. 그냥 컨설팅 회사라고 생각하고 면접에 들어갔으나 첫 면접부터 대표님이 나왔고, 나에게 질문을 하라고 하는 것이 신선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그리고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그리고 이 때의 실패는 결국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았다. 이때 대표님께 안 좋은 인상을 준 것은 끝까지 발목을 잡았다. 1차에서 떨어지고 피드백 메일을 받고, 한 달 후 다시 면접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2차를 통과해서 3차 최종에서 결국 떨어졌다. 이 기간이 상당히 길었는데.. 이 기간 동안 멘탈을 잡으면서 운동도 열심히하고 책도 많이 읽었던 기간이었다. 이 기간 동안 폼이 상당히 다시 올라왔는데.. 결국 길었던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고 다시 침울해졌다. 


대표님은 식사를 제안했고, 식사 자리에서 이런 저런 피드백을 들었는데 결국은 내 무너져 있던 멘탈이 문제였던 것 같다. 자신감이 부족했으며 약간의 뻔뻔함과 담대함이 부족했다. 왜냐면 그 당시 나는 바닥이었으니까.


 그 외에는 프로젝트 수행 후 홍콩행 티켓까지 거머졌던 Viagogo가 생각난다. 글로벌 + 스타트업이라는 점에서 끌렸다. 그 유명한 만다린 호텔에 간 것, 그리고 그들의 대표까지 날라와서 면접을 봤던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흐지부지된 걸 보니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그리고 갑자기 잡힌 LG 전자 퍼포먼스 마케팅 때문에 홍콩 관광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그 면접도 망한 것도 여러모로 꼬인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이 지금 여기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오바일까?


#4

 7월이 되고, BTS와 최종 클로징되니까 나는 막막했다. 이 모든 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해야할까? 내내 염두에 두었던 길을 마지못해 나섰다. 벽에 막힌 문과생들이 모두 간다는 로스쿨 입시를 시작했다. 


 사실 마음이 마음이 아니었고, 도서관에 다니는 내 모습이 참 한심하기만 했다. 로스쿨 문제집을 들고 공부를 한답시고 앉아서 딴 짓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문제를 푸는 동안은 뭔가를 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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