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Seok Kim Sep 15. 2019

AOA '너나해' 무대를 보고 생각해봐야 할 것들

어쩌면 여자 아이돌 패러다임 변화의 신호탄


지난 9월 12일 방영된 퀸덤 3화에서 AOA가 커버한 너나 해(원곡 마마무) 무대가 화제였습니다. 너나 해 무대는 여러모로 흥미롭습니다. 나온지 1년 된 노래를 커버했을 뿐인데 화제가 된 것도 신기하고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은 더 신기합니다. AOA 너나해 무대를 두고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찬사를, 그리고 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측에서는 찬사를 보내는 반응에 대한 비아냥을 보냈습니다.

 누가 혹은 무엇이 옳고 그르다를 논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번 AOA 무대로 인해 우리 대중문화 수요자들 중에 이런 것들을 열광적으로 원하는 수요층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고, 이들의 취향과 욕망이 앞으로의 대중음악 판도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입니다.


I. 관심의 깊이가 중요한 시대


매출을 Price X Quantity로 표현하는 것과 유사하게 대중음악 아티스트의 상업적 성공은 대중의 관심의 넓이 x 깊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전의 시대에는 넓이가 중요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어내는지가 핵심이었고, 매스 미디어의 파워가 살아있던 시절이라 그야말로 대중의 관심을 얻어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BTS가 물론 덕질 끝판왕이기는 하지만... 입덕하는 순간 엄청나게 많은 콘텐츠에 질려버릴 정도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다릅니다. 취향은 다양화되었고 시장은 파편화되었습니다. 대신 그만큼 관심의 깊이가 깊어졌습니다. 이전에는 아티스트에 대해 대중들은 TV에서 방영하는 얕은 수준의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면 최근에는 얼마든지 검색을 통해 깊게 덕질을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돈을 적극적으로 쓰는 것은 관심이 깊은 층입니다. 이런 시장에서 돈을 벌기에는 넓고 얕은 시장보다는 좁고 깊은 시장이 훨씬 유리합니다.


* 물론 넓고 깊은 것이 최고이겠지만 그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요즘 시대에 처음부터 그것을 노려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하늘이 내린 슈퍼스타라면 또 모르지만요


II. 아이돌=결핍된 것들을 채워주는 대변자

 아이돌이라는 단어의 원래 뜻은 우상입니다. 그리고 우상에게 빠지게 되는 것은 내게 결핍된 무언가를 우상을 통해 채우려고 하기 때문(혹은 채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돌도 이러한 우상과 정확히 같은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10대의 주체성을 강조하던 메시지는 어쩌면 지금의 페미니즘의 메시지와도 닿아있습니다.

 본격적인 아이돌이라기보다는 아이돌스러운 아티스트였던 서태지와 그 이후 본격적으로 K-POP 아이돌의 시초가 된 HOT도 당시 10대들의 억압된고 짓눌린 상황을 대변하며 그야말로 십 대들의 우상에 등극했습니다. 원래 10대 시절에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성적 욕망도 가장 분출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90년대까지 교실은 이러한 욕망을 교복과 두발 규제 등 일관된 규격에 구겨 넣고 그 규격을 벗어나면 가차 없는 폭력으로 응징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시기에 이건 잘못된 것이라는 메시지를 뱉어되는 잘생기고, 폼나는 아이돌들에게 10대 들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오빠들에게 보고 싶었던 것은 왼쪽의 비쥬얼로 분노 하는 것이 아니라 오른쪽의 멋진 비쥬얼이었던 것이죠

 이러한 메커니즘은 30대 이상의 어른들이 본인들의 욕망을 정치인에 투영시키고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다만 아이돌들은 이데올로기적인 측면보다는 연애와 관련된 욕망을 더 노골적으로 판매한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HOT 이후 아이돌들은 이데올로기적인 측면보다는 연애와 관련된 욕망을 더 노골적으로 판매하는 데 집중해왔습니다. 왜냐면 그게 더 돈이 됐거든요. 2세대 아이돌의 탑인 동방신기는 HOT를 이어받아 오정반합, 라이징선과 같은 분노를 토해내는 곡들도 하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풋풋함, 섹시함을 부각할 수 있는 곡들이 더 폭넓은 공감을 얻어냈습니다. 그 시대에 동방신기 팬층의 핵심층이던 10대 여성들의 주관심사는 사회의 정반합 과정에 따른 발전이나 순수와 분노 같은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남자들은 물론이고요


페미니즘 수요층의 존재를 확인한 무대

AOA의 무대에 일부는 열광적인 찬사를 보내는 것 역시 위의 두 가지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공감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일부는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페미니즘을 이쁘고, 당당한 아이돌이 대변했기 때문에 화제를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무대를 통해 대중 음악계는 이들의 욕망의 크기&강렬함을 확인했습니다.

설현의 엔딩장면을 보고 뭔가를 이뤄낸 뿌듯한 표정이라고 감정 이입하는 반응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무대에 화력이 붙었던 것은 대중적으로 폭넓게 관심을 얻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페미니즘에 깊게 몰입하는 층이 강력하게 반응한 덕분입니다. 그리고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가진 층이 이에 비아냥되면서 더 버즈가 커졌고요.


설현과 함께 지민은 AOA의 맥락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원곡자인 마마무때가 아닌 AOA의 커버 무대에 이렇게 강력하게 반응한 것은 맥락의 차이입니다. 마마무는 주체적인 여성을 얘기하기는 했지만 노골적으로 페미니즘을 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AOA의 인터뷰는 꾸준히 페미니즘에 대한 추구를 보여줬습니다. 언프리티랩스타에서 지민이 치타에게 꽃이라고 무시당한 것까지 서사가 한땀한땀 쌓이기도 했고요. 한마디로 얘기해 꾸준히 "나는 니네와 같은 니네 편이야"를 깔아놨고 그 맥락이 이번 무대에서 곡, 의상, 안무 등의 요소와 만나 폭발한 것입니다.

남자 댄서들의 Voguing Dance가 그들이 바라는 서사의 절정을 찍었습니다.


어쩌면 새로운 패러다임의 신호탄


AOA의 이번 무대는 페미니즘에 열광하는 수요층이 있고 이들은 강력한 결핍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습니다. 어떤 아이돌이 이들을 대변할 수 있다면 이들은 열광적인 지지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산업 관점에서 진짜 중요한 문제는 이들이 얼마나 되며, 이들의 관심을 어떻게, 얼마나 돈으로 바꿔낼 수 있을지입니다. 이들만으로 충분히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망설임 없이 노골적으로 이들을 대변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입니다. 얼굴은 굉장히 이쁜데, 노출이 많은 옷과 하이힐을 신지 않은 '탈코르셋'을 하며 남자들을 압도하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얘기하는 여자 아이돌을 만들어낸다면 대박 보증인 거죠.

하지만 이들의 숫자가 충분한 수익을 만들어내기에 너무 적거나, 이들이 그저 관심에 그치고 돈을 쓰지 않는 수요층이라면 문제는 복잡해집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이들의 관심과 지지를 기반으로 일단 생존 기간을 늘리더라도 더 넓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메시지, 컨셉을 통해 수요층 확대가 필요합니다. 거기다 혹여라도 이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만큼 다른 수요층의 반감도 비례해서 커진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집니다. AOA를 매니징 하는 전략 기획자 입장에서는 당장의 열광에 취하기보다는 신중한 상황 판단이 필요합니다. (물론 엄청 어려운 일입니다)

소녀시대도 활동 후반기로 갈 수록 남자보다는 여자를 타겟팅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번 일로 인해 여자 아이돌의 핵심 수요층으로 다시 한번 여자들이 주목받게 된 것도 재밌는 현상입니다. 원래 여자 아이돌 역시 핵심 수요 기반은 여자들이었는데(남자들은 여자 아이돌에 관심은 가져도 돈은 잘 안 씁니다. 물론 돈 잘 쓰는 남자팬들도 있지만 그 숫자는 남자 아이돌에 대한 여성 팬에 비하면 한 줌...), 이번 일을 계기로 노골적으로 여성 수요자를 타깃 하는 여자 아이돌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HOT 전성기 시절에도 남자들도 그들의 메시지에 열광하며 주 수요층의 한 축을 이뤘으니까요. 여자들의 어떤 결핍된 무언가를 여자 아이돌이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까요? 페미니즘 말고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 고민에 대한 적확한 답을 내놓는다면 그들이 넥스트 소녀시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여자 아이돌 역시 단순히 청순, 섹시로 나뉘는 게 아니라 어떤 생각들을 대표하는지, 어떤 다양한 결핍을 채워주는지가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트랑 퓨전 리조트에서 아무것도 안하기 후기+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