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지금은 보이는 것들
선택#1 스타트업 창업
사회 생활을 시작할 때 내 1차 목표는 마케팅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었다. 자동차 마케터로서 3년 6개월 간 재미있게 일했고, 운이 좋게도 신입 사원 때부터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성취감도 느꼈다. 하지만 이대로 평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돌아보면 조직의 불합리함 이런 것들은 사실 부가적이었던 것 같다. 퇴사한 시기에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라는 프로그램이 화제였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이 공감하기는 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내 것"을 하고 싶고 하면 잘 할 수 있다고 생각이었던 것 같다. 죽는 날 눈 감았을 때 젊었을 때 '내 것'을 하려는 시도를 안하고 직장인으로서 평생을 보낸 것을 후회할 것 같았다.
마침 자동차 구매 과정에서 선택을 도와주는 아이템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변에 친구들이 스타트업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라고 못 할게 있나"라고 쉽게 생각을 했다.
그렇게 2016년 여름 회사를 나와 대학교 동기와 함께 자동차 콘텐츠 스타트업 '커스텀랩'을 시작했다.
선택 #2 포스트 시리즈A 스타트업 합류
2017년 상반기, 1년도 못채우고 도저히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둘이 시작했던 스타트업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몇 달간 파고들었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문제가 아니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했다. 지금의 경험이 있다면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보기라도 하고, 피벗이라도 했을 텐데 그때는 하려고 했던 것이 '이건 아니'라는 판단이 들자 그저 모든 것이 막막하고 무서웠다.
언제나 뒤돌아보면 어린 나이지만 당시에는 30이라는 숫자가 주는 괜한 부담감, 늘 안정적인 궤도에 있다가 이탈해서 방황하는 데서 오는 막막함과 압박감, 또 결혼을 생각하니 이대로 돈과 시간을 쓰는 것는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폼잡고 나왔는데, 이렇게 접는 게 한심하고 우스웠다.. 그래서 당시의 나는 움츠러들고 어두웠다. 내 인생의 흑역사 시기인데 이 시기에 대해 쓰는 것이 이 글의 핵심은 아니니 넘어간다.)
어쨌건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추스러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일을 해야할 지 도저히 막막했다. 원래 다니던 기아는 퇴사자는 다시 입사가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고, 현대차 그룹은 암묵적으로 계열사 퇴사자는 받지 않는다는 사실일지 모를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고 그럴듯한 곳에 경력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원하면서 생각한 우선 순위는 IT에 대해 배울 수 있는 IT 기업, 경영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컨설팅 업계였다. 거기다 부가적으로는 영어를 많이 쓸 수 있어서 자연스럽게 영어 실력을 늘릴 수 있고, 해외 출장을 다닐 수 있는 업계였다. 스타트업 업계를 겪어보니 IT를 모르고서는 안될 것 같았고, 컨설팅은 사업을 하기 위해 좋은 커리어로 학부 시절부터 직장 생활하는 동안 관심이 있던 영역이었으니까 자연스러웠다. 부가적인 것은 그냥 말 그대로 부가적이 요소였고.
하지만 IT 업계인 네이버, 카카오나, 컨설팅 업계도 인터뷰에서 떨어졌다. 생각해보면 경력직으로 해당 업계 경험도 없고, 위축되어 있는 내가 인터뷰어들에게 좋게 보였을 것 같지는 않다.
그 이후에는 취직은 안되겠다 판단하고 로스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스쿨을 준비하는 과정은 그저 괴로웠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리트 공부(?)를 하면서 이제 예전처럼 공부 체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러면서 다시 체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게 아니라 좌절하고 회피하는 어두운 과정이었다.
어찌어찌 리트까지 마무리하고 잠시 시간이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모빌리티 스타트업의 사업 기획 공고를 보고 지원했고 당시에는 멘탈이 그래도 많이 회복되어서 그런지 공격적으로 나를 어필했고 합격했다. 다른 것보다는 스타트업, 그것도 궤도에 오른 스타트업은 어떻게 일하는지, 어떻게 했길래 거기까지 왔을지가 궁금했다. 내가 그토록 궁금했던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 스타트업의 모습이고, 또 미래도 유망해보였다.
연봉은 이전에 비해 반토막이 났지만 그래도 다시 돈을 버는 것, 그리고 영 아니다 싶으면 몇 개월만 돈 벌고 로스쿨 진학하겠다는 마음으로 입사를 결정했다.
선택3 #스타트업 창업 멤버 조인
모빌리티 스타트업에서의 생활은 즐거웠다. 결혼도 했고, IT 업계의 일하는 방식도 스타트업의 공격적인 운영도 많이 친숙해졌다. 사람들도 좋았다. 그런데 회사가 망했다.
이 흥망성쇠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면 길고 세상에 알려진 것과 진실은 사뭇 다르지만 결론적으로 그 회사는 내가 신혼 여행 다녀온 일주일 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나는 회사에서 남아달라는 측이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모두가 떠나야 하는 상황으로 흘러갔다.
당시에는 그래도 운이 좋게도 여기저기서 오라고 하는 데가 많았다. 자동차 콘텐츠 업계, 블록체인 업계, 그리고 모빌리티 업계까지. 하지만 내 선택은 생뚱맞게도 CJ ENM과 빅히트가 만드는 엔터테인먼트 JV 의 1호 직원으로 합류하는 것이었다.
사임한 전 회사의 대표님이 그 회사의 대표로서 사업을 하게 되었고, 회사의 셋팅부터 함께하자고 오퍼를 주셨다. 돌아보면 크고 작은 회사를 거절하고 시작하는 회사에 합류한 가장 큰 원인은 대표님의 사업 셋팅부터 함께하면서 보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다. 풀러스는 내가 합류했을 때 이미 1년이 지나서 회사의 틀을 갖췄고, 회사의 틀을 갖추기 전의 히스토리와 즐거움에 대해서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저 짐작할 뿐이었다. 창업 과정에 함께해서 그런 즐거움을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나는 회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궁금했고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 내 생각을 녹일 수 있다면 전혀 새로운 인더스트리더라도 충분히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 커리어를 연결해온 모빌리티라는 키워드에서 벗어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전혀 새로운 사업을 시도할 거라는 말에 설레임을 가진채.
그리고 1년 후 나는 다시 한 번 이직했다.
내가 그 회사를 떠나게 된 결심의 이유는 길어서 다음 글에 쓸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 선택들과 같은 맥락이다. 나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업이란 고객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다. 무언가를 되게 만듦으로써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업"이었다. 그리고 선택을 해야했을 때 결국 그럴 수 있는 일에 매력을 느끼고 몰입했다.
그 과정에서 사업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감이 조금씩 키워져 갔고. 이번 선택도 그 흐름에 맞는 선택이다. 다만 이제는 좀 오랫동안 한 문제 해결에 매달려보고 싶다.
다시 모빌리티 업계로 돌아왔고 적응하고 있다. 이동의 문제 발견과 해결. 그 과정에 오랫동안 몰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