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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eok Kim Nov 22. 2016

이사, 책들을 정리하며.

버리는 것은 항상 아쉽다.

지난 11월 25일 이사를 했다.


짐을 모두 뺀 상태의 내가 살던 방. 침대 하나를 놓으면 움직일 공간조차 애매했다.

내가 전에 4년 간 살던 방은 고작 4평 남짓한 아주 작은 방이었다. 회사에 들어가면서 회사와 가까운 곳이고, 신축 원룸이라는 점 때문에 작은 걸 감수하고 들어갔다. 처음에는 2년만 살 생각이었으나, 계약 만료 시점 회사 업무가 너무 바쁘던 때라 이사는 엄두도 못 내고 연장 계약을 했다. 그 결과 어쩌다 보니 그 작은 공간에서 4년이나 거주했었다. 사실 회사를 다닐 때는 좁다는 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극히 제한적이었고, 왕십리 역과 가까운 입지는 항상 5분만 더.. 를 외치며 간신히 일어나는 나에게 출퇴근에 있어의 장점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나의 새로운 집이자 사무 공간

 하지만 회사를 나온 뒤, 집에서 일하다 보니 갑갑하고 답답한 점이 너무 많았다. 책상을 하나 놓고 개방감이 좋아 답답하지 않은 곳을 찾아 헤맨 끝에 기존 왕십리에서 크게 멀지 않은 신당에 자리 잡게 됐다.


 이사를 하면서 새삼 느낀 것은 작은 방에 책이 참 많았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 책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아도 된다는 아버지 말씀이 큰 인상이 남았던지라 대학 때부터 보고 싶은 책들을 사서 보는 것은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자 작은 사치였다. 이는 취직해서 주머니 사정이 더 넉넉해진부터는 더 심해졌는데, 책 읽는 시간은 줄었지만 책을 사는 것은 더 늘었다. 아무래도 도서관이 멀기 때문에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주로 사서 봤기 때문인데, 그러다 보니 작은 방에 책이 100권도 넘게 쌓인 것이다.


 방은 작았지만 빌트인으로 책장과 수납장이 잘되어 있는 편이라 미처 실감을 하지 못했는데, 쌓여 있던 책들을 다 꺼내니 꽤나 많았다. 아직 짐 정리가 안된 방에 앉아 쌓여있는 책들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한번 보고, 만 책들도 있었고 아껴서 여러번 본 책들도 있었다. 사실 그 책들을 그대로 두고 이 책들을 수납하기 위한 책장을 설치할까를 고민 안 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 서재가 있는 넓은 집으로 이사하게 되면, 그 서재에 여태껏 샀던 책들을 다 정리하는 것이 하나의 목표였기 때문에, 책들을 버리는 것은 사실 그동안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득 여러 짐들을 버리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들을 산 것도, 한 번 읽고 가지고 있기만 하는 것도 어쩌면 그냥 내 지적 허영이자 욕심이고 미련 아닐까? 그 책들 중에는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도, 그냥 시간 때우기였던 것들도 있었다. 내용이 생생하게 생각나거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책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더 많았다.  언제 다시 그 책들을 펼쳐볼지 몰랐다. 그 책들을 살면서 다시 찾을지, 새로운 책들을 보게 될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 필요할 때 다시 빌려볼 수 있는 책들은 과감히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분명한 건 모든 책들은 다 가치가 있었다. 이미 구매한 이상 가치가 마이너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책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냥 내 지적 허영에 대한 집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들을 내 방에서 떠나보내는 것은 어쩌면 바쁘게 쫓기면서,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나 자신에 대한 위로로 책을 샀던 시절에 대한 이별일지도 모른다. 나는 과감히 80권의 책을 알라딘에 판매했다. 몇 개는 매입이 되고, 몇 개는 폐기 되거나 기부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 이별이라는 것은 늘 어렵다. 아 그 책은 남겨둘 걸, 그 돈 밖에 못 받을 걸 괜히 팔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별의 아픔은 아픔대로 느끼더라도 떠나보낸 것들을 너무 오래 돌아보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제는 앞으로 나가야 하니까.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자. 그리고 새롭게 채워 넣자.


 앞으로는 책에 대한 개인적인 정책도 바꾸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구매해서 본다가 첫 번째였지만 앞으로는 빌려서 보고, 두고두고 두 번 세 번 볼 책들만 살 것이다. 언젠가는 서재가 있는 방이 생긴다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내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책들만 가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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