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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Jan 30. 2022

채색의 즐거움

민화 초급반, 호작도 모란도 연화도



민화 첫 작품으로 호작도그렸다. 

호작도는 까치와 호랑이가 주인공이다. 호랑이는 탐관오리와 같이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을 상징하고 까치는 민초를 대표한. 이때 호랑이는 바보스럽게 그려지고 까치는 당당하게 묘사되면서 호랑이가 까치에게 쩔쩔매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풍자적 도상이 조선시대 신분 사회를 해학적으로 비판한다고 보는 설명이 있다.


내가 그린 호작도는 크기도 작고 채색도 단순해 초자 용으로 딱 알맞. 랑이가 등장하니 전통 민화를 그린다는 느낌 . 나는 수업 첫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호작도 도안받아 들고, 그림 크기에 여분을 두고 커다란 순지를 잘랐다. 순지는 우리나라의 전통 한지 닥나무 껍질로 는데, 보존성이 뛰어나 질겨서 민화를 그릴 때 이용다.


나는  접시에 먹물을 따르고 물을 섞어 농도를 맞춘  후, 아래에 도안을 놓고 세붓으로 윤곽선을 따라 그렸다. 선이 어긋날까 봐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결국 화실에서 그린 먹선이 맘에 들지 않아 집에 와서 서너 번을 더 그렸다. 다행히 그릴수록 수가 줄어들었다. 음 주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에 아교 반수를 했다. 민화는 채색을 많이 하기 때문에 번짐을 방지하기 위해 순지에 아교를 입히는 것이다. 물이 담긴 넓은 접시에 아교를 적당한 비율 넣 섞은 후 커다란 평붓으로 순지 바르고 말리면 된다.


옛날 종이 느낌이 나도록 고화 처리 해야 한다. 화실의 배접실 냉장고엔 노란 치자 물과 갈색의 커피 물이 페트병에 담겨 있다. 이것 물에 당히 고 황토나 대자(고동) 색 물감을 조금 짜넣어 원하는 색을 만든 후 순지에 하면 된다. 전통 기법 따라 붓질로 화지를 만들어 나가는 동안, 배접실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 돌아간 묘한 느낌이 다.


나는 호작도에 처음 색을 넣을 때가 잊히지 않는다. 먹으로만 까맣게 그리다가  물감을 개어서 호랑이 눈을 칠하는데 전율이 일었다. 뭐랄까, 꽃봉오리가 일시에 활짝 터지듯한 환희를 맛보았다고나 할까. 채색의 즐거움이 밀물처럼 야금야금 밀려들었다. 그러자 그림 그리는 재미가 단숨에 쑤욱 커지는 게 아닌가. 소나무 잎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림은 결국 흡족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민화 속으로 나는 이미  빨려 들고 있었다.




두 번째 작품은 괴석 모란도였다. 

모란꽃이 크고 탐스러우면서 색이 화려하고 기품이 있어 예로부터 찬탄을 받았다. 부귀영화와 아름다운 여자를 상징해서 민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주제다. 도안받아 들고 나는 갑자기 커진 크기 복잡한 도안에 망연자실해졌다. 진도가 너무 빠른 거 아냐? 이걸 초보가 어떻게 그린단 말 인감? 속으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만만하게 등산을 하다가 갑자기 깔딱 고개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조심조심 과 잎의 외곽선을 따내려 갔다. 휴우, 겨우겨우 끝내 놓고 붓을 내려놓으니 어깨가 어찌나 뻐근하던지.


다음 주 아교 반수와 고화처리를 마치고 채색에 들어갔다. 모란 꽃잎에 호반(흰색)으로 기본을 깔고 본 색을 입며 바림이란 것을 배웠다. 바림은 민화의 채색 기법이다. 먼저 물감을 입히고 물 조묻은 바림붓으로 물감을 쓸어내며 데이션 처리를 하는 것이다. 다양한 색깔로 꽃잎을 칠하고 바림하면서, 나는 민화만이 가지고 있는 채색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꽃을 완성하고 난 후엔 초록으로 세세하게 잎을 칠하며 바림다.


드디어 바위를 칠할 차례가 왔다. 그림 면적이 넓어서 큰 붓이 필요했다. 붓이 작으면 얼룩이 지기 때문이다. 나는 큰 붓을 구해 와 이미 얼룩 진 바위를 덧칠했다. 그러자 색이 어둡고 진해지며 윤곽선이 보이질 않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어쩌랴. 그림을 살려야 하니 도안을 옆에 두고 눈으로 어림잡아 직접 그려나가는 수밖에. 장님이 지팡이 두드리며 걸음을 떼 듯 조심조심. 바탕이 진하니 바은 더욱 어두워졌고 마음도 달아 어두워졌다.


선생님으로부터 마지막 미션이 주어졌다. 바위 외곽을 따라 금색 선을 그리는 것이었다. 다행히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바위가 어두운 만큼 금색이 더 또렷하고 화려하게 대비되며, 정했던 바위가 오히려 더 단단하고 듬직해졌다. 심폐소생술을 가한 것처럼 그림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휴우,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도의 숨을 크게 쉬었다.




세 번째 작품 연화도이다.

연꽃은 불교의 자비와 유교의 군자를 상징한다. 북송대의 유학자 주돈이는 “내가 오직 연꽃을 사랑하는 것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물들지 않았고 맑은 물결에서 씻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소통하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기 때문이다.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으며 깨끗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은 멀리서 볼 것이요 다붓하여 구경하지 않을 것이니 연은 꽃 중에서 군자라 하겠다."라며 연꽃을 칭송하였다.


과연 연화도는 모란도와매우 다른 느낌을 주었다. 모란을 그리는 동안 화려함의 극치를 맛보 한껏 들떠 있었다면, 연꽃을 그리는 시간은 고요한 선정의 세계에 머무는 구도의 시간 같았다. 마음 한결 차분하고 그윽해졌다. 넓은 연잎을 칠할 때는 오랜 시간 온 마음을 다해 그려야 했고, 꽃봉오리를 칠할 때는 욕심을 내려놓고 색을 절제해야만 했다. 화룡점정으로 고추잠자리 한 마리 그려 넣고 마지막으로 연잎 가장자리의 시든 부분까지 처리하자, 물속 깊은 연꽃의 뿌리에 다다른 듯 마음이 크게 해졌다. 큰 그림을 완성했다는 성취감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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