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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Aug 05. 2020

한국인은 얼마나 정직할까?

잃어버린 지갑, 로스트 112에 있어요~


앗, 지갑이 없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럴 리가.. 어떻게 된 거지? 겉옷의 주머니를 다 뒤집어봐도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산책 길에 떨어뜨린 것 같았다. 이미 어두워진 골목길을 더듬거리며 내려갔다. 30여 분을 다시 돌았지만 어디에도 내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건망증으로 인해 집에 두고 나온지도 모를 일이었다. 부리나케 계단을 뛰어올랐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순간, 한 줄기 희망마저 무너져 내렸다. 지갑을 잃어버린 분명했다. 힘이 쭉 빠졌다. 이제 어쩐다??





그날은 우연히도 13일의 금요일이었다.

코로나가 한창 극성을 부릴 때라 여분의 마스크가 필요했다. 낮에 동네 약국에서 저녁 6시부터 마스크 판매를 다는 안내문을 본 터라, 서둘러 저녁을 먹고 6시 반쯤 집을 나섰다. 지금쯤은 어느 정도 줄이 빠졌으리라 기대를 하였지만, 마스크를 사려는 사람들의 행렬은 약국 뒤 골목까지 이어지며 끝이 보이질 않았다. 큰길을 건너가 줄의 끝을 확인했다. 도저히 그 줄에 서서 기다릴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다시 길을 건너와 마스크를 사려는 사람들 긴 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미 서울에선 길게 줄을 서지 않고도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다고 들었기에, 마치 무슨 특종을 얻은 양 의기양양하였다. 나는 저토록 긴 줄에는 결코 합류하지 않겠다는 배짱을 부리며 그 시간에 차라리 산책이나 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걸으면서 영어 공부를 할 요량으로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들었다. 아마도 그때였지 싶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했고, 나는 방역을 위해 비닐장갑을 끼고 있었다. 손의 감각이 둔해져 이어폰과 함께 작은 카드지갑이 딸려 나온 줄도 모르고 자리를 뜬 것이다.  


지갑을 산지 정확히 일주일이 되는 날이었다.

아는 동생이랑 올레 7코스를 걷고 법환에서 제주 기념품 샵에 들렀다가 동백꽃이 화사하게 프린트된 천으로 만든  너무 앙증맞아 산 었다. 나는 몇 개의 카드와 면허증, 비상금을 넣어 지난 일주일간 애지중지 들고 다녔다. 그런데 이렇게나 빨리 내 곁을 떠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카드 해지보다 더욱 귀찮은 은 유일한 신분증인 면허증 사진을 찍고 재발급받으러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급작스레 나를 떠나자, 나는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그깟 것 다시 사면되고, 재발급받으면 된다고 아무리 이성이 타일러도 마음은 도통 들어먹지를 않았다. 상심한 나는 차라리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카드 취소도 하지 않았다. 대신 하나씩 마음에서 떠나보냈다. 요즘 세상에 길에서 주운 카드는 무용지물일 테니 카드부터 버리고, 현금과 지갑은 주운 사람에게 선물로 주기로 하였다. 인연이 옮겨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면허증은 내게 다시 돌아올 확률이 반반은 되어 보였다. 일말의 기대를 갖고 기다리기로 하였다.



서귀포의 일출(위)과 일몰(아래)



한국인은 얼마나 정직할까?


주말을 보내는 동안 나는 한국인의 정직성이 궁금해졌다.

친정아버지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내가 어릴 적, 유난히 부지런 아버지는 매일 새벽 집 앞 골목길을 쓸었다. 찬바람이 쌩쌩 불던 그날 아침에도 청소하러 나갔다가 골목에 만원 권 지폐가 널려있는 걸 보셨는데, 빗자루로 모두 쓸어서 모아 놓고는 주인을 수소문해 찾아주었단다. 엄마는 그날 아침밥을 먹으며 자식들에게 자랑스레 그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앞집에 사는 어르신이 동대문 포목 장사를 하시며 번 돈을 주머니에 넣은 채 이른 아침 목욕탕을 가시다가 흘렸던 돈다발이었다. 그때 나는 세상에서 우리 아버지가 제일 정직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일전에 남편은 나와 함께 마트를 다녀오다 길에서 가방을 주웠다. 나는 가방을 주인에게 직접 찾아주는 것이 번거로워 그냥 가까운 마트에 맡기자고 하였다. 하지만 남편은 부득불 가방 안에 있던 핸드폰을 찾아 가족에게 연락했고, 길거리에서 한참을 기다려서 주인에게 전해주었다. 작년엔 동네 중학교에서 전교생 피자 파티가 있었다. 이유인즉슨 한 학생이 현금 다발을 주워 경찰에 신고해서 주인을 찾아주었는데, 주인이 마침 그 학교 출신이었고, 후배가 너무 기특한 주인은 사례로 후배들에게 피자를 쏜 것이었다.


아주 가끔 이런 미담을 접하기는 하였지만, 나는 살면서 많이 잃어버렸고 그때마다 크게 속상했다. 집에 강도가 들은 적도 있고(지금 생각해도 파출부의 소행 같지만), 사람이 많은 남대문 시장이나 플리마켓에서 소매치기도 여러 번 당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는 자연스레 한국인은 부정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은 식당의 좌식 테이블로 들어갈 때면 아직도 신발을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한다. 남을 잘 믿지 못했고, 길에서 어쩌다 돈을 주우면 그냥 주운 사람이 임자라고 생각하였다. 어쩌면 그런 내가 지금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몰랐다.






다시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면허증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약국과 관리사무소에 신고된 분실물이 있는지 전화를 해보았다. 역시나 없었다. 경찰서에도 전화를 걸었는데 '로스트 112'를 검색해보라는 답변을 받았다.


로스트 112가 뭔가요?



'로스트 112'는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분실물 사이트였 전국망이었다. 혹시나 하며 떨리는 가슴으로 제주도를 클릭했다. 지난 주말 동안 신고된 물품이 수십 건 등록되어 있었다. 물건의 종류와 분실 장소, 날짜가 적혀 있었고, 어떤 것은 사진이 함께 올라와 있기도 하였다. 대부분은 지갑과 핸드폰이었지만 가끔 자동차 키나 번호판, 노트북, 심지어 살아있는 앵무새 5마리가 신고되어 있다. 분실 장소는 제주 공항이 가장 많았다. 이렇게 분실한 사람들이 자기 물건을 찾아갈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나부터도 잃어버리면 끝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계속 페이지를 넘기던 나는 오 마이 갓,,!!

나는 내 지갑의 분실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비록 사진은 없었지만 선명한 꽃무늬의 지갑이라는 설명만으로도 내 것임을 알아챘다. 면허증으로부터 추출했을 성씨가 맞으니 내 것이 확실했다. 처음엔 믿기지가 않았고 나중엔 날아갈 듯이 기뻤다. 당장 보관 중인 서귀포 경찰서로 찾아갔다. 지갑 안엔 내가 잃어버린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의 지갑을 주운 사람은 우리 아파트 옆 단지의 복지관에 근무하는 아가씨였다. 나는 케이크를 사들고 그녀의 직장을 찾아갔다. 놀란 그녀에게 감사해요, 못 찾을 줄 알았는데 너무너무 감사해요,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잃어버린 사람의 애타는 심정을 읽고 정직을 실천한 그녀가 천사로 보였다.






그날 저녁, 한국인의 양심을 보여주는 유튜브 영상이 우연히 눈에 띄었다. 한 외국 방송이 우리나라에서 실시한 실험이었는데, 하루 동안 쇼핑백 100개에 포장 물품과 꽃다발을 담고 GPS를 함께 넣어 100대의 지하철 안에 두고 회수율을 추적했다. 그러나 그대로 돌아온 쇼핑백은 6개밖에 되지 않았고, 실험자들은 예상과 다른 결과에 실망이 컸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많은 수의 GPS가 시청역 근처에 머무르고 있는 게 아닌가. 이상해서 찾아가 보니 다름 아닌 지하철 유실물 센터였다. 거기에는 81개의 쇼핑백이 놓여 있었다. 아온 6개를 포함해 총 87개의 정직이 돌아온 것이다.


다른 유튜브도 따라 올라왔다. 주로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여행하며 찍은 영상들이었는데, 한국인은 카페에서 노트북을 사용하다 그대로 둔 채 화장실을 다녀온다던가, 아파트 현관문이나 집 앞에 택배 물건을 그대로 두고 간다는 등의 영상을 올리며 감탄했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방인의 눈에는 크게 놀라운 장면이었나 보다. 코로나 19 방역으로 높아진 국격과 더불어 한국인의 정직성으로 나는 자부심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에 달라진 대한민국의 품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혹시,
소지품을 잃어버리셨나요?


그렇다면 걱정 마세요. 

대한민국에는 '로스트 112'가 있답니다. 

우리는 지금 물건을 잃어버리면 되찾을 확률 87%의 나라에 살고 있답니다.



P.S. 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들려줬지만, 주변에 '로스트 112'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안타까웠다. 언젠가는 이 고마움을 글로 써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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