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추웠어..."

by 김지훈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랄 때, 나는 늘 조그만 달력을 손에 진 채 명절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손가락으로 세어보곤 했다. 당시 아빠를 제외하고 우리 가족은 아주 작은 시골로 이사를 갔는데, 부모님이 아는 사람에게 투자한 사업이 부도가 나 빛을 산더미처럼 쌓아둔 채 생활을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친척까지 우리 집에 같이 살게 되었는데, 한 집에 두 가족이 사니 서로의 감정이 요동쳐 싸우는 것도 자주 목격했다. 어린 꼬마가 그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 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 많이 힘들고 아프고, 또 아픈 일이었다.


집안의 우울함과 쌓이는 빚, 가끔 찾아오는 빚쟁이들과 마주할 때마다 이 삶이 전부인 것 같은 생각에 나는 자주 고독했다. 어릴 적 내 생활기록부의 태도는 10점 만점에 8점이 최고였는데, 이유는 '자주 고독을 씹음, 선생님을 안 보고 창문을 쳐다봄, 혹은 선생님은 보는데 멍함'으로 정의 내려졌다. 경험이 많으신 선생님들의 눈에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내가 정확히 걸린 것이었다. 당시 선생님들은 학생의 본분을 철저하게 강조하던 분들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학생의 본분은 '학생은 수업에 집중하고 공부를 열심히 함'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정의에 충족될 수 없었다. 나의 정의는 '그저 멍함'이었다.

하지만, 내가 왜 멍한지 그 어떤 선생님도 상담을 해주지 않으셨다. 집은 가난하고 우울하고, 학교는 나보고 공부를 하라고 하니 지옥 같고 싫었다. 그래서 더 외로웠다. 유일한 낙은 엄마, 그리고 형과 함께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내게 기차의 칙칙폭폭 소리는 지금을 벗어나게 해주는 소리 같았고, 밤이 찾아올 때 서울의 반짝거림은 내 모습을 반짝이게 하는 것 같았다. 엄마의 표정도 서울에서는 조금이나마 활기를 찾으셨다.


또 하나의 낙은 아빠가 시골에 내려오는 것이었다. 아빠는 일 년에 딱 한번 시골에 오셨는데 그나마 명절이 아빠를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날들이었다. 꾸준하게 돈을 버는 것도 아빠여서 부담 없이 먹고 싶은 거나 갖고 싶은 걸 얘기하기도 했고, 아빠를 보면 잠시나마 가난을 벗어난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아빠의 빈자리에 대한 결핍 때문에 잠이 들 시간이면 아빠의 옆에서 꼭 잘 수 있다는 것도 내가 아주 잠깐 꾸는 행복한 꿈처럼 좋았다.


언제나처럼 명절이 찾아왔고, 이번 명절은 무려 6일이나 되는 긴 날들이었다. 나는 한 달 전부터 달력을 들여다보며 아빠를 기다렸다. 그런데 명절 전부터 아빠는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아빠가 회사일이 많이 바쁜가.'

명절이 되고 나는 집 밖에서 아빠의 차가 들어오는지 시골 거리를 서성였다. 거리를 서성이다가 집에 들어오고, 차 소리가 들리면 '아빠구나!' 생각하고 다시 나갔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 또다시 하루가 지나도 아빠는 오지 않았다. 꼬마가 손꼽아 기다렸던 명절은 아빠를 기다리다가 끝이 났다. 내 가슴에 작은 구멍이 났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 구멍은 상처로 남았다.


그러다 내가 24살 즈음, 군대 휴가를 나와서 아빠랑 술 한잔 하며 처음으로 그 상처를 꺼냈다.

"아빠, 그때 명절 때 왜 안 왔어?"

'그때 명절'이라고만 얘기했는데, 아버지가 단번에 알아들으셨다.

내 질문에 바로 말을 꺼내지는 못하시다가, 나를 한번 쳐다보고 조금 뜸 들이다가 말씀을 꺼내셨다.

"아빠가 매년 시골에 가는데, 너희들을 두고 올 때마다 마음이 아프더라고. 너희들이 가난한 게 아빠 탓 같아서. 그래서 아빠도 무서웠어..."

'아빠도 그 시절이 무서웠구나'

버지도 그 시절이 상처였다고 생각하니, 서로가 힘든데도 함께 그 시간을 잘 버틴 것만 같아 내 상처가 조금은 괜찮아졌다. 나는 다시 아버지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랬구나... 그때 명절 길었는데 뭐했어?"

"아빠가 사실 돈 벌어서 시골로 거의 보내느라 보일로도 잘 안 되는 냉방에서 지냈거든... 명절 때도 집에 있었는데 명절에는 더 춥더라."

"그랬구나... 우리 아빠 바보네..."

"아빠한테 바보가 뭐냐. 이놈아."

"아빠도 그때 많이 추웠구나..."

"아빠도 추웠지. 늘 일하고 들어오면 집에 아빠밖에 없는데, 너희한테 번 돈을 보내도 삶이 나아지지도 않고 아빠 어깨가 많이 무거웠지."

"그래도 아빠는 진짜 젊을 때 결혼했는데 힘들다고 어디 안 도망가고 잘 버텼네... 고마워."

"아빠가 우리 아들 두고 어딜 도망가겠어. 아빠는 우리 아들밖에 없는데..."


어릴 때는 하루의 끝이 빨리 오길 기다렸다. 집 안에서 어른들의 말소리가 커지면, 싸우는 소리였고 그 소리에 늘 긴장했다. 그래서 다들 아무 말이 없는 밤이 좋았고, 아침이 되자마자 학교를 가면 학교를 가는 동안 혼자서 자전거를 타는 시간이 좋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고 밤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외로웠다. 그때는 기다리다 지쳐 이렇게 어른이 되는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니 추웠던 그 시절도 하나의 조각처럼 내 기억에 머물고 있다. 때로 그 기억은 누군가의 상처를 위로하고 공감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그렇게 버텼던 시간 때문에 아버지의 추웠던 시절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아들이 되었다. 이제는 어른으로 아버지와 술 한잔 하며 추웠던 그 시절에 자주 온기를 주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이렇게 지나고 보면 금방 스치는 순간들인데, 그 시절 좀 더 웃어볼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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