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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육아 여행의 시작

여행같은 육아는 즐겁다.

“자기야, 나 생리를 안 하는 것 같아”

“응? 몸이 안 좋나?”     


아내가 생리 이야기를 하면서 속으로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몸이 안 좋은가? 임신인가?’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고 혹시 모르니까 약국가서 테스터기 좀 사다죠”

“아, 그럴까?”     


남자가 약국에 임신 테스터기를 사러 가는 것이 사실 좀 창피하다. 하지만 몸이 안 좋다는데 가야지 어쩌겠나.

약국으로 가면서 속으로 생각을 했다. ‘진짜 임신이면 어떻게 하지? TV에서 보듯이 오버를 좀 해서 좋아해야 하나?’ 많은 생각 끝에 테스터기를 사다가 아내에게 주었다.     


“자기야, 나 임신이야. 두 줄 나왔어.”


아내가 조심스럽게 테스터기를 보여주었다. 정말 두 줄이다.


“어, 그래? 우와 축하해!”     


약국을 가면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나 생각을 했지만, 실제로 현실이 되니 “축하해”라고 이야기하는 반응이 살짝 느렸다. 아내는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고 믿어본다. 아니 아내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여자는 바로 몸이 달라지는 것을 알게 되니까 말이다.     


아내가 임신하면서 드디어 나에게도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아빠로서의 인생 말이다. 본격적으로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으로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배 속에 있는 우리 아이도 엄마 배 속을 탐험하며 세상을 여행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무슨 준비를 해야 할까? 아빠는 엄마에게 행복해하는 표현을 준비해야 한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공감 능력이 부족하기에 아내가 임신했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언제 실감이 났냐고? 산부인과에 가서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찔끔 났다. 산부인과에서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아, 내가 드디어 아빠가 되었구나. 감격스럽다.’ 하는 소리가 울려왔다.                       

    

<초음파 사진을 통해 콩알만 한 아기를 확인하고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빠의 감정을 느꼈기에 이제 나는 드디어 아이 맞이 준비를 시작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내가 고민해 보니 가장 큰 것이 두 가지였다. 아내 편하게 해주기와 태교를 하는 것이었다.


아내를 편하게 해주는 건 사실 실패했다. 왜냐면 맞벌이 부부다 보니 아내는 아이가 태어나는 날까지 일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안타깝다. 그때는 젊었었기에 그것이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우리는 ‘젊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야’하는 생각만을 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무던히 해준 아내가 너무 고맙다.     


아내 편하게 해주기는 어려우니 태교라도 열심히 해보고자 아내랑 많은 이야기를 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다.


먼저 클래식을 듣기 시작했다. 사실 아내랑 나는 대중가요도 아니고 그냥 라디오 듣는 게 모든 소리의 전부였다. 특히 운전을 많이 하는 아내는 차에서 라디오 듣는 게 낙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겼다고 갑자기 클래식을 들으니 그게 되겠는가? 처음 두 달 정도는 열심히 들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에는 클래식 CD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랐다.     


클래식에 실패했으니 영어 태교라도 해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인생 살면서 영어가 가장 큰 도움이 되었기에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만은 남겨주자고 마음이 있었다. 이건 정말 열심히 했다. 하루에 30분이라도 아이 배에 대고 영어를 읽어 주었다. 거의 10달은 끊임없이 했다. 가끔은 한글 동화도 읽어 주었다. 그때 당시는 정말 기대했다. 우리 아이가 영어 신동이 되기를 말이다.


지금 와서야 하는 이야기지만 다 부질없다. 우리 딸은 영어를 싫어한다. 우리 딸은 나를 닮았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유전자의 힘은 위대하다고 하나 보다.


엄마들 독서 모임에서 내가 물어본 적이 있다.     


“우리 딸이 영어를 싫어하는데, 영어공부를 어떻게 시키면 좋을까요?”


그때 한 엄마가 물어봤다.


“영어 태교 안 하셨어요?”

“아니 했지요.”

“근데 왜 그런데요?”     


그걸 몰라서 내가 물어본 건데 나한테 다시 물어보다니. 결국, 나는 부질없는 태교를 했다. 아니 나중에 우리 아이가 크면 혹시 달라질지 모르니 부질없다는 표현을 쓰지 말아야겠다. 언젠가는 빛을 발할 것이다. 그러길 바라본다.     


아이가 태어날 때쯤 되면 또 하나의 고민이 생긴다. 지금은 문화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인터넷에서 만삭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만삭 사진 무료로 찍어주는 곳들도 많았다. 만삭 사진을 찍고 100일 사진이나 돌사진 찍으러 오라는 미끼 상품이다. 우리도 속는 척하고 미끼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당연히 100일 사진이나 돌사진을 찍지 않았다. 우리는 만삭 사진 체리피커였다.     


<과거 사진을 보면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참 파릇파릇하다.>

둘째때는 첫째 키우느라 태교고 만삭사진이고 없었다. 둘째는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새벽에 아내가 나를 깨웠다. 아무래도 진통이 오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한다. 나는 임산부 교실에서 배운 대로 샤워하고 가볍게 식사를 하고 아내를 태워서 산부인과로 향했다.     

아내가 산부인과 가기 전에 두 손 꼭 잡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자연분만 하겠다고 의사에게 이야기해”

“알았어. 꼭 그럴게”     


우리 딸은 10시간의 진통 끝에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지금 우리 아내는 이야기한다. 그 당시 10시간 진통할 때 빨리 제왕절개를 선택하지 않은 나를 저주했다고. 어쩌겠나 나는 지시한 대로 행하는 남자인데 말이다.     


드디어 우리 딸이 엄마 배 속을 탐험하다가 세상을 탐험하게 되었다. 10시간 엄마를 고생시켰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 딸이 되었다. 우리 딸이 태어나면서 우리 딸이 세상을 향한 즐거운 탐험이 되도록 아빠가 그리고 엄마가 도와주리라 다짐했다. 지금도 그 다짐은 유효하다.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우리 딸도 드디어 즐거운 여행 그리고 새로운 탐험을 시작한다.


두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jinslovejin/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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